이장님 이장님 우리이장님
칠량면 연곡마을 손치형(73)이장
“옛날 부자마을 일수록 사람들 떠나 더욱 어렵죠”
한폭이 동양화처럼 소담한 농촌마을
연곡마을은 칠량면 소재지에서 동북쪽으로 2km 지점에 위치한 중산간 마을이다. 동쪽으로는 송정리 영계마을, 서쪽으로는 면소재지의 주산인 호암봉이 자리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같은 영동리에 속한 운산, 북쪽으로는 산을 넘어 동백리가 있다. 면소지에서 두 갈래 길이 있는데 하나는 칠량초등학교 앞을 거쳐 웃영동-운산을 지나는 간선도로를 따라 2km지점이고, 또 다른 길은 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837호선을 따라 1km를 가면 운산진입로가 나오고 이 진입로를 따라 북쪽으로 다시 1km를 올라가면 나온다. 3면(동·서·북)이 산으로 둘러져 있고 남쪽으로는 확 트인 논이 펼쳐져 있다. 연곡마을은 나지막한 산이 뒤를 에워싸고 있는 산골 안쪽 마을로 한폭의 동양화처럼 소담한 농촌의 정취를 실감케 하는 마을이다.
옛날 ‘의식동衣食洞’ 이라 불린 부자마을
지난 6월 5일 토요일 오후 연곡마을 손치형 이장은 막 논을 한 바퀴 둘러보고 들어오는 길이었다. 밀짚모자에 작업복차림 차림인 손이장의 모습은 숨 가쁜 농사의 현장을 보는 듯 했다. 35년가량 이장을 해왔다는 손이장은 마을 지형만큼이나 온화한 품성이 드러난다. “오래 하다 보니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많이 알아봅디다. 지금은 할 사람이 없어서 또 하고 있어요.” 손이장에 따르면 연곡마을은 옛 지명이 ‘의식동衣食洞’이라고 불릴 만큼 부자 마을이었다. 그만큼 옷과 밥이 풍부한 마을이었다고 한다. 물이 풍부한 지역으로 농사를 짓기 편리한 이점이 있었기에 산 너머 연화동 주민이 이주해오면서 ‘옷밥골’이라 불리다가 연곡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정 반대로 폐촌의 위기에 와 있다는 거였다. 농촌마을들을 돌아다니다 느낀 공통점 하나가 그것이었다. 옛날에 부자였던 마을이 더 가난하게 된 이유는 잘 사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 중 많은 주민이 도시로 이주했기 때문이었다. 연곡마을은 현재 24세대가 살고 있으며, 9세대가 밀양손씨 이다. 나이층은 80대가 70%를 이루며 50~60대가 30%이고 논농사에 전념한다. 손이장에 따르면 15년에는 결명자를 심어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인력부족으로 할 수 없다며 고령화 되어 있는 마을을 걱정했다.
4년 전 ‘범죄 없는 마을’ 지정
연곡마을은 4년 전 ‘범죄 없는 마을’로 지정되어 몇 천만 원의 지원을 받아 회관과 창고를 새로 지어 깨끗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95년도에 지었다는 정각 ‘연화정’은 오래전에 마을사람들이 심었다는 사장나무 옆에 널찍하게 지어져 있어서 누구든 한번쯤 쉬었다 가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마을주민 및 서울 향우들의 도움으로 지어져서 주위에 표석을 세워 향우들의 이름을 기념하고 있었다. 마을에 있는 오래된 고가들은 예전 연화동에서 이주한 주민들이 그대로 집을 뜯어다 옮겨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상대대로 살아온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마을이다. 서당터가 있었던 서재골, 서재골 위의 골짜기인 장골, 장골 옆에 위치한 웃골, 옛 절터로 탑이 있었다는 탑골과 붓당골, 사찰의 논이었다는 사중논 등이다. 사람이 거주했던 지명이 현재까지 구전으로 전해 내려온 점으로 보아 땔감과 식량이 풍부하여 자급자족이 충분했던 마을임을 알 수 있다. 손치형 이장은 부인 이동초(68)여사와 평생 농사를 지으며 3남1녀를 키워 출가시켰다. 산간마을이지만 이웃 간에 정이 돈독하여 인화한 마을임을 강조하는 손이장은 35년 이장을 하다 보니 이장일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웃는다. 옛날에는 67세대나 살았고, 성주골 웃골로 나뉘어 반장을 따로 두고 이장 일을 봤을 정도로 큰 마을이었다. “이장세를 보릿대나 나락 등 현물로 받아서 반장에게 나눠주고, 농지세도 현물로 받아서 싣고 나가야해서 무척 힘들었지만, 그때 비하면 지금은 참 편해졌지라. 또 옛날에는 왜 그리 도깨비도 많았는지 몰라라.” 인정 많아 보이는 손이장은 잠깐 기다리더니 집에 들어가서 음료수를 내왔다. (이현숙 기자)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