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 : 송하훈
추사는 대성읍성 안동네 송계순의 집에 귀양살이집을 마련한 후 즉시 아내 예안 이씨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정 유배소에 오니 집은 넉넉히 용신(容身)할 만한 데를 얻어 한 칸 방에 머루가 있고 집이 깨끗하여 도배를 할 것 없이 들었으니 오히려 과한 듯하오. 먹음새는 아직 가지고 온 반찬이 있으니 어찌어찌 견뎌갈 것이오. '
추사는 동생에게도 편지를 보냈는데 가시울타리를 두른 후였다.
'그리고 가시울타리를 둘러치는 일은 이 가옥 터의 모양에 따라서 하였다네. 마당과 뜨락 사이에서 또한 걸어다니고 밥 먹고 할 수 있으니 거처하는 곳은 내 분수에 지나치다 하겠네.'
편지 내용은 과하고 분수에 지나치다고 표현하고 있지만 추사의 유배생활은 말할 수 없이 곤궁한 처지였다. 탱자나무 가시울타리를 쳐놓고 울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처지에서 특히 낯선 풍토와 입에 맞지 않은 음식 등으로 고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추사의 유배는 가장 가혹한 형벌이었다는 점에서 추사가 극심한 고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추사는 죄인이 기거하는 방 둘레에 탱자나무 가시를 둘러치는 천극안치(荐棘安置)와 집 둘레에 탱자나무 가시를 둘러치는 위리안치(圍籬安置) 둘 다 겸한 유배생활이었다. 일정한 지역을 정해놓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지낼 수 있는 주군안치(州郡安置)의 형벌을 받은 다산과는 그 차이가 클 수밖에 없었다. 또한 주군안치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절해고도로 보내는 절도안치(絶島安置) 보다도 훨씬 나은 것이어서 다산이 500여 권의 저서를 쓸 수 있었던 것도 유배의 형벌 중 가장 낫다는 주군안치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다산은 그 덕택으로 강진의 산하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고, 그런 과정에서 백성들의 참상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이러한 현장 체험은 목민심서 등 명작을 쓸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
추사는 극한적인 상황에서 오직 달랠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은 가족이나 친구, 제자와 지인들에게 날아오는 편지를 읽는 일이었다. 그래서 편지가 날아오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읽고 또 읽었다. 편지를 보내고 받는 일만이 추사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일이었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추사는 음식에 대한 남다른 욕심을 부렸다. 그도 그럴 것이 바다와 인접한 궁벽한 바닷가 마을에서 입맛에 맞는 음식이 있을 까닭이 없었다.
'민어를 연하고 무름한 것으로 가려 사서 보내게 하십시오, 내려온 것은 살이 썩어 먹을 길이 없습니다. 겨자는 맛난 것이 있을 것이니 넉넉히 보내십시오. 가을 뒤의 좋은 것으로 사오 접이 되든 못 되든 선편에 부치고 어란도 거기서 먹을 만한 것을 구하여 보내십시오.'
제주도 귀양지에서 민어를 보내라, 어란을 보내라, 하는 추사의 모습은 호사스럽기까지 하지만 음식 재료를 맘대로 구할 수도 없는 처자였다,
이렇듯 어려움을 겪고 있는 추사에게 뜻밖에도 행운이 찾아왔다. 뱃사람인 양봉신이라는 사람은 추사를 도와주겠다고 나섰는데, 그는 귀양살이 내내 보필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소치가 제주도를 찾았다. 추사는 무작정 찾아온 소치와 함께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 쓰는 일로 한 계절을 보냈으나 중부(仲父)의 별세 소식에 제주도를 떠나야만 했다.
추사에게는 양아들이 있었는데, 김현주의 증손자이자 13촌이 되는 상무였다. 1841년 유배를 온 이듬해 양자로 들였기 때문에 그의 교육은 동생 명희가 맡았다. 추사는 양아들 상무에게 가훈이 무엇이다는 것을 일러주며 각별히 도리를 다할 것을 당부했다.
'천륜(天倫)이 크게 정해져서 조상을 모시는 사당을 의탁할 데가 있게 되었구나. (중략) 나는 기왕 이곳에 있으므로 너를 직접 면대해서 가르칠 수 없으니 너는 오직 너의 병든 모친을 잘 봉양하고 네 중부의 훈계를 삼가 신중히 받들어 선영을 모시고 어른을 섬기는 도리에 힘써 신중하기 바란다. 우리 집에 전해오는 오래된 규범은 바로 직도(直道)로써 행하는 것이니, 삼가 이를 굳게 지켜 혹시라도 실추시키지 않기를 조석으로 축수하는 바이다.'
그러나 추사의 귀양살이를 뒷바라지 해주던 아내 예안 이씨가 끝내 세상을 떠나게 되자 부음을 들은 추사는 고향을 향해 엎드려 통곡을 했다. 그리고 아내 예안 이씨를 위해 애서문을 지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인 예안 이씨 애서문
'임인년 11월 을사삭(乙巳朔) 13일 정사(丁巳)에 부인이 예산의 집에서 일생을 마쳤으나 다음 달 을해삭 15일 기축의 저녁에야 비로소 부고가 해상에 전해 왔다. 그래서 지아비 김정희는 위패를 세워 곡음하고 생리의 사별을 비참히 여긴다. 영영 가서 돌이킬 수 없음을 느끼면서 두어 줄의 글을 엮어 본가에 부치어 이 글이 당도하는 날 제물을 차리고 영궤 앞에 고하게 하는 바이다.'
아내를 잃은 추사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유배생활을 할 때 누구보다도 의지하던 이내였다. 그래서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를 짓기도 했다.
'어떻게 월로께 호소를 하여
서로가 내세에 바꿔 태어나
천 리 밖에서 내가 죽고 그대는 살아서
이 마음 이 설움 알게 했으면.'
추사는 아내의 죽음을 슬퍼한 나머지 이렇게 심정을 털어놓았다.
'어허! 어허! 나는 형틀이 앞에 있고 큰 고개와 큰 바다가 뒤를 따를 적에도 내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는데 지금 부인의 상을 당해서는 놀라고 울렁거리고 얼이 빠지고 혼이 달아나서 아무리 마음을 붙어들매자 해도 길이 없으니 이는 어인 까닭인지요.
어허! 어허! 무릇 사람이 다 죽어갈망정 유독 부인만은 죽어서는 안 될 처지가 아니겠소. 죽어서는 안 될 처지인데도 죽었기 때문에 죽어서도 지극한 슬픔을 머금고 더없는 원한을 품어서 장차 뿜으면 무지개가 되고 맺히면 우박이 되어 족히 남편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었기에 형틀보다도, 큰 고개와 큰 바다보다도 더욱 더 심했던 게 아니겠소.
지금 끝내 부인이 먼저 죽고 말았으니 먼저 죽어가는 것이 무엇이 유쾌하고 만족스러워서 나로 하여금 두 눈만 빤히 뜨고 홀로 살게 한단 말이오. 푸른 바다와 같이 긴 하늘과 같이 나의 한은 다함이 없을 따름이외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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