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숙 기자의 2박3일 일본여행기
11월 첫 주말을 이용해 일본의 사가현과 구마모토현을 다녀왔다. 일본은 크게 훗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 등 네 개의 큰 섬과 그 주위를 둘러싼 약 6,9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사가현은 규슈지역 7개의 현 중 하나로 인구 83만 정도의 소도시다. 인천공항에서 오후 2시 50분 비행기를 탔다. 사가공항을 빠져나오니 불덩이 같은 둥근 해가 덩그러니 가까운 곳에서 반갑게 맞아준다. 시내로 빠져나가는 도로는 우리나라 시골 도로와 별반 다르지 않다. 도로 양 옆으로 가을걷이를 끝낸 벼 그루터기와 콩밭들이 펼쳐지고, 공룡 알처럼 생긴 커다란 하얀 볏짚둥치들이 층층이 쌓여져 우리나라의 들과 비슷하다. 들판의 끝 즈음에 일본의 2층 회색기화집들이 우리나라 시골 풍경처럼 옹기종기 정답다. 하지만 우리나라 평야지대와 조금 다르다면 들판 멀리에도 산이 보이지 않는 점이다.
5시가 넘어서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더니 어느덧 자취를 감추었다. 사가현 서부에 있는 다케시에 있는 다케오도서관에 도착했을 때는 사위가 이미 어두워졌다. 다케오도서관은 밖에서도 도서관에 비치된 어마어마한 도서가 한눈에 훤히 들어온다. 그 자체가 놀라움이고 감탄이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고소하고 그윽한 커피향과 그 많은 도서에 그저 심취할 수밖에 없다. 입구에 위치한 스타벅스의 커피향을 맡으며 이리저리 책 골목을 누비다가 길을 잃을까 싶다. 그 많은 도서들이 2층 3층까지 탁 트인 곳에 꽂혀서 장관을 이루고, 학생들이 곳곳에 놓인 탁자에서 조용히 공부를 하는 풍경이 아름답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이 금지 되었다지만, 사진을 찍지 않으면 영영 후회될 듯하다.
인구 5만에 불과한 이 시골지역에 이처럼 큰 도서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했다. 이곳 지자체장은 2006년 취임한 히와타시 게이스케 시장으로 이곳에 도서관과 서점, 커피점을 결합시켜 큰 호평을 얻어 3선을 했다고 한다. 오만 인구밖에 안 되는 다케오시의 이 어마어마한 도서관의 이용객을 카운터에 물어보니 2014년 지금까지 다녀간 수만 92만3천명이라고 말해준다. 연중무휴로 저녁 9시까지 문을 열고 있는 이 도서관은 열람실과 서고를 구분하는 벽이 없이 자유롭게 이용하게 되어 있다. 이용자들은 책을 열람하고,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일부 책은 구입해 갈수 있다. 현재는 행정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되어 민관 위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도서관 주차장 차량의 40% 정도가 외지 번호판일 정도로 외부 방문객이 많다고 한다.
밤에 멋진 관광을 한다는 일이 그리 흔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곳은 가을 홍엽을 밤에 구경하는 곳이라니, 가보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다케오시의 사계절이 꽃이 피고 지는 정원이라 불리는 미후네야마라쿠엔이다. 캄캄한 산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지만, 올라가면 주차장이 있고, 야간 어둡지만 두 명의 안내원이 서서 입구를 안내해주었다. 입장권을 끊으려다보니 내일인 11월 8일부터 단풍축제 기간이다. 밤에 울긋불긋한 화려한 단풍구경을 한다는 것이 의아스럽지만 한발 한발 산길을 내딛으며 놀라게 된다. 밤에 걷는 산속 길, 이 길에서 만끽하는 가을 정취에서는 정말이지 극과극은 통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산속 중심부에 맑은 호수가 자리 잡고 있는데, 물이 어찌나 맑은지 처음엔 호수라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단풍나무가 우거진 곳이라 착각하게 된다. 아직 단풍이 완전히 들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 맑은 호수에 내비친 광대한 홍엽의 그림자와 멀리 찻집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조차도 호수에 그대로 비춰져 거울을 보는 듯 자꾸만 착각 속에 빠져든다. 170여년 된 거대한 단풍고목들과 어우러진 산속의 미로 같은 길들을 밤새 걸으면 환상의 또다른 멋진 계절이 나타날까.
구마모토현에 있는 수전사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3,776m의 후지산을 그대로 본뜬 미니 후지산과 인공정원 및 연못이 일품이다. 일본인들에게는 신령스런 산으로 불리는 후지산을 등에 지고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연못에 잉어 밥을 던져주자 입을 떡 떡 벌리며 모여드는 잉어들이 사랑스럽다. 이곳은 큐슈지방의 영주였던 호소가와 가문이 17세기 초에 3대에 걸쳐 만들었다고 하는 작지만 일본 3대 정원 중에 하나로 알려진 아름다운 정원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수전사 도리이가 있다. 일본의 신사에는 어디에나 도리이가 있다. 두 개의 기둥을 연결하여 도리이 바깥쪽은 일반세상이고 안쪽은 신성한 곳으로 구분 짓는다. 이곳에는 물의 신을 모시는데, 맑은 지하수를 통해 좋은 차를 마시는 것을 장수의 비결로 여겨 장수를 비는 사람들이 부적을 붙이기도 한다. 들어갈 때는 먼저 손을 씻고 물을 마신 후, 신사로 가서 정해진 대로 절을 하면 된다. 구마모토현의 캐릭터는 곰이다. 그래서 관광지마다 곰이 그려진 상품이 즐비해 있는데 구마가 바로 곰이라는 뜻이라 한다. 이곳에서 특이한 인형을 보았다. 2,000엔 정도면 구입할 수 있는 말하는 곰인형인다. 사람이 말하는 대로 따라서 말하는 이 곰인형이 참 신기하기만 하다.
이곳 구마모토에 있는 구마모토성은 일본 3대 성 중의 하나다. 대천수각과 소천수각으로 이루어진 이 성은 전체를 둘러보는 데만도 두 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1877년 세난 전쟁 때 신 혼마루의 대부분이 소실되었고, 1960년에 대천수각과 소천수각이 재건된 상태다. 일본무사들의 하늘을 뚫고 올라가려는 권력의 의지가 엿보이는 거대한 성이었다.
일본여행 중 뺄 수 없는 것이 온천이다. 세계 최대의 칼데라를 가지는 복식화산으로 아소국립공원이 주요부를 형성하고 있는 화산지역인 그 화구 구경이 아소산 관광의 중심이며 그곳에 아소팜랜드빌리지가 있다. 2년 전에 왔을 때도 그랬듯이 이날도 아소산 분화구에서는 계속해서 하얗고 뿌연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어 분화구까지는 관광할 수 없었다. 화산박물관을 구경하고, 자연이 보여주는 최대한의 극한 상황을 느끼면서 즐겁게 주변에 있는 음식점에서 점심을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관광지다. 이곳의 널따란 등선에는 온통 작은 갈대가 넘실거렸다. 멀리서 보면 마치 양털이 몽실몽실 굼실거리는 듯, 아직도 활화산인 아소산 분화구의 뿌연 연기를 바라보면서도 위험을 느끼지 않고 갈대 등선을 즐겁게 올라 거니는 한가로운 사람들의 모습에서 다시한번 극과극이 통하는 것을 느낀다.
아소산이 있어 이곳에서는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어마어마한 돔 형태의 숙박 빌리지를 보고 입이 떡 벌어진다. 2012년도에 이곳에서 온천과 숙박을 했었다.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또 오고 싶은 곳이 이곳 아소팜랜드다. 아소팜 온천은 노천에서 다양한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일본여행에서 매번 느끼는 것은 작고 조용함이다. 길에서 흔히 보이는 것은 헬멧을 눌러 쓰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과 학생들의 모습, 작은 자동차들이다. 그리고 식당에서 보는 것은 작은 그릇들과 작은 생활용품들 거기에 예쁜 도자기 그릇들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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