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객열전(1)
--춘추전국시대에 활약한 다섯의 자객들은 <사기>에서 명편으로 꼽히고 있다. 사기의 백미인 것이다. 역사 속에 찰나처럼 사라져간 칼잡이들의 희로애락이 눈앞에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생생히 펼쳐진다. 사마천은 명분과 도리를 지키기 위해 혼탁한 세상과 맞서 제 한 몸 던졌던 협객들의 용기와 의기를 높이 평가하면서 냉혹한 현실 속에서 바르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 주고 있다.
조말
비수로 잃었던 땅을 되찾는다
조말은 노나라 사람이다. 그는 뛰어난 용력으로 노나라 장공을 섬겼다. 장공은 용기 있는 자를 좋아했는데 조말이 노나라 장수가 되어 제나라와 싸웠지만 세 차례나 실패했다. 이에 장공은 겁을 먹고 수읍땅을 바쳐 제나라와 화친을 하고자 했다. 그러나 여전히 조말을 장수의 자리에 두었다.
제나라 환공은 화친을 허락하고 노나라 장공과 기 땅에서 만나 맹약하기로 했다. 환공과 장공이 단상에서 맹약을 논의하고 있을 때 갑자기 조말이 비수를 가지고 단으로 뛰어올라 환공을 협박했다. 환공의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감히 대항하지 못하고 이렇게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바라고 이러하는 것이오?”
조말이 대답했다.
“제나라는 강하고 노나라는 약합니다. 그런데 대국인 제나라가 노나라를 침략하는 것은 지나칩니다. 지금 노나라의 성들은 다 허물어지고 제나라의 국경선은 조나라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이를 고려하셨으면 합니다.”
환공은 겁을 먹고 점령한 노나라 땅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조말은 비수를 내던지고 단에서 내려와 북쪽에 있는 뭇 신하들의 자리로 가 머리를 조아렸는데,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으며 말하는 품새는 평소와 똑 같았다. 잠시 후 환공이 노하여 약속한 바를 거두어들이려 하자 관중이 말했다.
“그러시면 안 됩니다. 작은 이익을 탐하여 스스로 흡족해하시면 제후들의 신망이 떨어지고 전하의 지지를 잃게 됩니다. 약속대로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마침내 환공은 점령한 땅을 돌려주었다. 이로써 노나라는 조말이 세 번 싸워 빼앗긴 땅을 모조리 되찾았다. 그후 167년이 지나 오나라에 전제의 사건이 일어났다.
전제
혈육을 죽이고 왕이 된다
전제는 오나라 당읍 사람이다. 초나라에서 오나라로 도망쳐 온 오자서는 전제를 보고 재능을 알아보았다. 오자서가 오나라 왕 요를 알현하고 초나라를 공격하게 되면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대해 말하자 공자광이 이렇게 말했다.
“오자서의 아버지와 형은 모두 초나라 왕에 의해 죽었습니다. 오자서가 초나라를 치자고 하는 것은 자기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것이지 오나라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에 오나라 왕이 초나라 공격을 포기하자 오자서는 광이 왕권을 노리고 있음을 간파하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공자 광은 내란을 일으키려는 야심이 있으니 아직 다른 나라를 치는 일에 대해서 말해서는 안되겠다.’
그러고는 공자 광에게 전제를 추천했다.
공자 광의 아버지는 오나라 왕 제번이다. 제번에게는 세 명의 동생이 있었는데 바로 밑의 동생이 여제이고, 그 아래가 여말이며, 막내가 계찰이다. 제번은 계찰의 현명함을 알아보고 자기 아들인 공자 광 대신 계찰을 태자로 책봉하려 했다. 이에 그는 동생들에게 왕위를 잇게 함으로써 결국 계찰에게 나라를 맡기려고 했다. 제번이 죽자 그의 뜻대로 왕위는 여제에게 이어졌고 여제가 죽자 여말이 왕위를 이어받았다. 여말이 죽자 왕위는 당연히 계찰에게 이어져야만 했으나 계찰은 극구 사양하고 달아났다. 오나라 사람들은 하는 수 없이 아들 요를 왕으로 세웠다. 그러자 공자 광이 이렇게 말했다.
“형제 순서대로 한다면 당연히 계찰이 왕위에 올라야 하겠지만 아들을 세워야 한다면 내가 진정한 후사일 것이다.”
그는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남몰래 모신들을 기르며 기회를 엿보았다. 한편 오자서의 추천으로 전제를 얻은 공자 광은 그를 빈객으로 잘 대해 주었다.
9년 후에 초나라 평왕이 죽었다. 오나라 왕 요는 초나라가 상중임을 틈타 동생인 공자 개요와 촉용을 장수로 삼아 초나라 첨을 포위하게 했다. 또한 연릉에 머물고 있던 계찰을 진나라에 보내 제후국의 동정을 살피게 했다. 그때 초나라가 출병하여 오나라 장수인 개여와 촉용의 퇴로를 끊어버리자 오나라 군사는 오도가도 못 하게 되었다. 이때 공자 광이 전제에게 말했다.
“이때를 놓쳐서는 안 되오. 지금 왕위를 얻지 못한다면 언제 하겠소. 게다가 나야말로 진정한 후사이니 마땅히 내가 즉위해야 하오. 계찰이 돌아온다 해도 나의 왕위를 폐하지는 못할 것이오.”
전제가 말했다.
“오나라 왕 요는 죽일 수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늙었고 아들은 어리며, 두 동생은 군사를 거느리고 나갔다가 초나라 군사에 의해 발이 묶였습니다. 지금 오나라는 밖으로는 초나라로 인해 곤란을 겪고 있고, 안으로는 텅 비어 있는데다가 믿을 만한 신하가 없으니 우리를 어쩌지 못할 것입니다.”
공자 광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내 몸은 곧 그대의 몸이오.”
오나라 왕 요 12년 4월, 마침내 광은 무장한 군사를 지하실에 매복시킨 후 술자리를 마련하고 왕을 초대했다. 왕은 자신의 호위병을 궁전에서부터 광의 집까지 늘어세웠다. 문과 계단 좌우에 늘어선 자들도 모두 왕의 친척들이었으며, 왕 양편에 서 있는 자들은 모두 긴 창을 들고 있었다.
연회가 시작되고 자리가 무르익자 공자 광이 일어나다가 일부러 넘어졌다. 광은 발을 다쳤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지하실로 내려가 전제에게 뱃속에 비수를 감춘 구운 생선을 들고 오라고 했다. 구운 생선을 들고 왕 앞에 이른 전제는 생선의 배를 가르고 비수를 꺼내 왕 요를 찔렀다. 왕은 그 자리에서 죽었고 전제 또한 왕의 좌우에 서 있던 사람들에게 죽었다. 왕의 수행원들이 크게 소동을 일으켰으나 광이 매복시켰던 군사를 풀어 그들을 모조리 살육했다.
이로써 광이 스스로 왕위에 오르니 그가 곧 합려다. 합려는 전제의 아들을 상경에 봉했다. 그후 70여 년이 지나 진나라에서 예양의 사건이 일어났다.
예양
충신은 지조를 위해 죽는다
예양은 진나라 사람으로 일찍이 범씨와 중황씨를 섬겼으나 이름을 날리지 못하게 되자 그들을 떠나 지백을 섬겼다. 지백은 그를 존중하고 신임했다. 그러나 지백이 조양자를 치자 조양자는 한나라·위나라와 연합하여 자백을 멸망시키고 땅을 셋으로 나누었다. 지백을 뼛속 깊이 증오했던 조양자는 지백의 두개골에 옻칠을 하여 그릇으로 사람을 만들었다. 예양은 산속으로 달아나면서 다짐했다.
“아! 사나이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꾸민다고 했다. 지백은 나를 알아주었다. 내 기어코 목숨을 바쳐 지백의 원수를 갚으리라. 그렇게 보답해야만 내 영혼이 그에게 부끄럽지 않으리라.”
그때부터 예양은 이름을 바꾸고 죄인으로 가장하여 궁에 들어가 변소 벽을 바르는 일을 했다. 그는 항상 몸에 비수를 지니고 다니며 조양을 찔러 죽일 기회만 노렸다. 조양자는 변소에 들어가기만 하면 가슴이 떨려 이상히 여겼다. 이에 변소 벽을 칠하는 죄인을 심문해 보니 그가 곧 예양이었다. 그는 몸에 비수를 감추고 있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백의 원수를 갚고자 함이오.”
조양자의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예양을 죽이려고 하자 조양자가 말했다.
“그는 의리가 있는 자다. 내가 조심하고 피해 다니면 되지 않느냐. 지백은 죽고 그 자손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럼에도 한때 신하된 자로서 주인을 위해 복수하려 하니 이야말로 천하의 현인이다.”
그러고는 그를 놓아주었다. 얼마 후 예양은 다시 온 몸에 옻칠을 하여 문둥이로 가장한 후 숯을 삼켜 목소리를 거칠게 하여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했다. 그러고는 거리로 나가 걸식을 했다. 그러자 그의 아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길을 가다가 한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만은 그를 알아보고 말했다.
“자네 예양이 아닌가?”
“그렇다네.”
친구는 탄식하며 말했다.
“자네의 재능으로 조양자에게 몸을 바쳐 그의 신하가 된다면 조양자도 필시 자네를 가까이 할 것이네. 그런 연후에 하고자 하는 바를 하면 오히려 더 쉬울 게 아닌가? 왜 하필 몸을 헤치고 흉하게 모습을 바꾸면서까지 복수를 하려고 하는가? 그건 더 어려운 일이네.”
예양이 말했다.
“이미 몸을 바쳐 신하가 된 자가 그 주인을 죽이려 한다면, 그것은 두 마음을 품고 주인을 섬기는 것일세.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매우 어렵네. 그럼에도 이렇게 하는 것은 후세에 남의 신하가 된 자로서 두 마음을 품고 그 주인을 섬기는 자를 부끄럽게 하기 위함일세.”
얼마 후 조양자가 외출을 하려고 하자 예양은 그가 지나가게 될 다리 밑에 숨었다. 드디어 조양자가 다리에 이르자 말이 놀라 뛰어올랐다. 조양자가 말했다.
“이는 분명 예양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는 일대를 수색하게 했는데 과연 예양이 숨어 있었다. 조양자가 예양을 꾸짖었다.
“너는 일찍이 범씨와 종항씨를 섬기지 않았느냐? 지백이 그들을 다 멸망시켰지만 너는 그들을 위해 복수하는 대신 오히려 지백에게 몸을 바쳐 그의 신하가 되었다. 지백은 이미 죽었는데 너는 어찌하여 유독 그를 위해 그토록 복수하려고 그러는 것이냐?”
예양이 말했다.
“나는 범씨와 중항씨를 섬기기는 했으나 그들은 나를 보통 사람으로 대했기에 나도 그들을 보통 사람으로 대한 것이다. 그러나 지백은 나를 국사(國士)로 대했기에 나도 그에게 국가로서 보답을 하려는 것이다.”
이에 조양자는 장탄식을 하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 예자여! 네가 지백에게 충성하고자 하는 뜻은 이미 다 이루었다. 너에 대한 나의 용서 또한 더없이 관대했다. 너는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니 나는 너를 다시 놓아둘 수 없다.”
그러고는 군사를 시켜 그를 둘러싸게 했다. 예양이 말했다.
“현명한 군왕은 타인의 미덕을 덮어 감추지 않고, 충직한 신하는 절의를 위해 죽는 의리가 있다 들었다. 지난번에 그대는 나를 관대하게 놓아주었다. 덕분에 천하에 그대의 현명함을 칭송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오늘 일은 내가 마땅히 죽어야 한다. 그러나 그대의 옷을 얻어 찔러서라도 복수하려는 뜻을 이룬다면 죽어도 원이 없겠다. 바라서 될 일은 아니지만 그저 마음속의 말을 했을 뿐이다.”
조양자는 그의 의로움에 감동하여 자신의 옷을 그에게 갖다 주었다. 예양은 칼을 뽑아 세 번을 뛰어 올라 그 옷을 내리찍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것으로 나는 지백에게 보답하게 되었구나.”
그러고는 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죽는 날, 조나라의 지사들은 그 소식을 듣고 모두 눈물을 흘렸다. 그후 40년여 년이 지나 지 땅에서 섭정의 사건이 일어났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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