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우리는 부모인가? 학부모인가?
김 윤 석
공군사관학교 교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참 넓고도 복잡하다. 그 세상에는 또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역할을 해가며 살아가고 있다. 온통 사람으로 가득 채워진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 노릇하면서,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냥 사람으로서 살아간다는 것만도 쉽지 않을 터에 각기 주어진 역할에 맞춰 살아간다는 것, 자식을 둔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 거기에 좀 더해 학부모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을 터이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라디오 방송을 통해 마주 하게 된, 조금은 낯설었지만 그냥 무심결에 지나쳐 버릴 수는 없었던 공익광고를 접하면서 부모로서, 학부모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 나름의 굉장한 인고의 세월이 배경이 된 내공을 필요로 하지 않을까 싶었다. 특별히 우리의 교육환경과 제도하에서의 부모와 학부모의 역할이라면 그 무엇보다도 우선할 가치와 덕목이었기에.
요즘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공익광고 중에 “부모와 학부모”에 관한 것이 있다. 그 내용을 간추리자면 대략 이렇다.
“부모는 멀리보라 하고, 학부모는 앞만보라 한다”
“부모는 함께가라 하고, 학부모는 앞서가라 한다”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학부모는 꿈꿀 시간을 주지 않는다”
“당신은 부모인가? 학부모인가?”
“부모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길, 참된 교육의 시작입니다”
이 광고 카피를 처음 대했을 때의 느낌은 한마디로 요즘 우리 교육현장에 대한 서글픔을 참으로 실감나고 적절하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와 학부모, 따로따로 갈라 놓을 수도 없고 또한 분리시켜 생각해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동일체이지만 두 단어가 의미하는 대조적인 차이는 극명하게 갈라져 있음을 본다. 광고 카피의 원문만을 그대로 본다면, 자식의 행복과 안녕을 바라는 매우 원초적이면서도 근원적인 부모 입장에서의 마음과 자식의 미래와 출세를 바라는 학부모의 입장에서 바라본 양자간의 모순과 갈등을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광고가 주는 메시지의 효과는 분명하면서도 확실하다. 누구에게 그리고 무엇을 전달하려는지가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식들이 학교라는 배움의 공간에서 성적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바르게 성장하는 것, 또한 그런 사람이 성공적인 삶을 얻는 사회에서 키우고 싶은 게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의 한결같은 바람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순수하게 부모의 입장으로만 살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자식을 낳아 기르는 부모 입장에 서있는 우리는, 우리가 원하던 원치 않던 그것에 관계없이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학부모의 입장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학부모가 된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학부모의 세계에 속해지는 우리의 자식들이 문제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각 개인의 존엄한 존재가치와는 무관하게 오로지 학력으로 1등만 알아주는 천박한 사회의 의식구조와 너무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청소년들)의 학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DC) 30여개국은 물론 세계 어느 선진국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최고 수준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우리의 교육정책과 교육체계가 완벽하다는 얘기를 하려함은 물론 아니다. 그 이유는 바로 부모(학부모)의 교육열에 기인한 바 크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들의 행복지수는 거의 꼴찌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말은 곧, 학력의 성취도는 어느 곳에 비할 바 없이 높은데 반해,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생활공간으로서의 학교는 늘 불행이 일상화된 공간이라는 것이다. 이는 틀림없이 무한경쟁 의식에 기반한 서열 매기기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물일 것이라는데 백퍼센트 동의함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다만 이 광고의 경우에서는 다행히도 참된 교육을 지향하는 부모의 모습을 어쩔 수 없이 현실에서 부딪치는 학부모의 모습과 대비되는 모습으로 결론을 유도하고 있지만, 결국은 “함께 함”의 명확한 의미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일찍이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아리스토 텔레스가 제창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혼자서는 즉, 앞서만 가서도, 앞만 보고만 가서도 안 되는 일임을, 그리하여 너와 나, 그리고 우리라고 하는 관계 속에서 이기적인 자아를 배척해야 함과 동시에, 더 나아가 이타적인 삶의 지혜를 배우며 살아가야 함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또한 이와 유사한 뜻으로 이해될 수 있는 아프리카 격언의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라는 말도 “혼자 감”을 강조하기 보다는 “함께 감”에 핵심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결국은 우리 인간이 항해하게 되는 “인생여정”이라는 그 먼 여행길을 혼자서 빨리 가야 함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한다는데 그 방점이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고상하게 설명한다 치더라도 내심 불편한 진실은 몇 가지 남는다. 그 첫 번째는 어떻게 “함께 할”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가 없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함께 함”의 의미는 먼 곳에서 찾기보다 차라리 지근거리에 있는 우리들의 삶의 공간에서 서로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역지사지의 정신을 바탕으로 나 이외의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아닐까 하는데도 말이다. 그 두 번째로는 “함께 감”이라는 것이 배움의 과정 속에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만 꼭 해당되는가 하는 점이다. 즉 기성세대는 이런 문제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묻고자 하는 것이다. 공직선거는 물론 고위 공직자 임명 같은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기성세대가 안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셀 수도 없이 많은 이 시대의 문제들은 과연 “함께 함”의 의미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논의의 초점이 되어 있는 “함께 함”이라는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또 그 대상과 용례를 보다 더 넓혀서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시민운동 내지는 문화운동으로 승화시켜보는 것은 어떨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기에, 이런 광고카피를 접하면서 더욱더 아쉽고 유감인 것은, 우리의 교육현장에서 회자되는 그 숱한 말들 중에 참 옳은 말인데도 불구하고, “멀리보라 하고, 함께 가라하고, 꿈을 꾸라”고 말하고 싶은 매우 심성 착한(?) 부모를 “앞 만보라 하고, 앞서가라 하고, 꿈꿀 시간을 주지 않는”모진(?) 학부모로 만든 장본인은 과연 누구였고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온통 사람들로 가득찬 이 세상에 존재하는 우리는 과연 부모인지, 학부모인지, 아니면 부모이면서 학부모인지를 차분하게 되새겨 볼 일이다.
********************* 김윤석 교수 프로필 *****************
강진읍 출생/강진중학교, 장흥고등학교, 공군사관학교 졸업/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미국 Oregon State University 졸업(공학박사)/미국 University of Kentucky 교환교수 역임/공군사관학교 공대학장 역임/전자공학 관련 국내외 40여편 연구논문 발표/현 재경 강진읍 향우회 사무총장/현 공군사관학교 전자공학과 학과장 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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