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에서>
그 남자의 보따리
이 윤(전남지방경찰청 경무과장)
곧 새해다. 새 해가 시작된 지 언제인데 이제야 새해라고 하느냐고 의아해 할 지 모르지만, 음력을 사용해오던 우리의 옛 풍습대로라면 설날은 새해의 첫 날을 기리는 명절이다. 설날에는 떡국을 먹는 것으로 나이 한 살을 더 얻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나처럼 나이 한 살이 귀중한 시기에는 떡국 한 그릇이 조심스러워 숟가락이 멈칫멈칫 해진다. 나이 먹기 싫으면 떡국을 먹지 말라는 우스개 소리도 하지만 안 먹으면 서운하니 국물이라도 후루룩 마실 생각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연초부터 나누었지만, 설날에도 새해인사를 하게 된다. 이번엔 ‘복 한 보따리 받으십시오.’라고 하면 어떨까. 몇 주 전 보따리 하나 달랑 들고 전남청으로 왔다. 짐을 늘리고 싶지 않지만, 막상 보따리를 싸다보면 한두 가지가 불어나 있다. 그렇지만 늘어날수록 기분 좋은 보따리가 있다. 그 보따리를 지금 풀어볼까 싶다. 지난해 광주북부경찰서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이다. 일 년도 채 안 되는 기간이었지만 최대한 보따리를 채우기 위해 노력했던 추억이 담겨져 있다. 그 추억들을 CD에 담아준 북부서 직원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2010년 북부경찰을 빛낸 10대뉴스’ 첫 번째는 3월 24일 제23대 북부경찰서장으로 취임한 나의 모습이었다. 서로가 좋은 추억을 갖자. 내부고객인 직원들과 북구주민에게 감동을 주는 치안행정을 펼쳐나가겠다는 신고였다. 두 번째는 북구 주민과의 대화였다. 관내 26개 동사무소 회의실에서 주민자치회, 통협의회, 부녀회 등 협력단체장님들로부터 건의사항을 직접 청취하고 북구치안정책에 반영하려 했던 나의 의지였다. 힘든 부분도 많았지만 경찰서와 지역 주민들 간 친밀한 유대관계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 번째가 1년에 한 군데 있을까 말까한 지구대 청사를 3군데나 신축 준공하게 된 것이다. 3곳의 지구대가 쾌적한 환경 속에서 주민들께 보다 나은 민원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네 번째는 ‘BEST OF BEST’에 광주권 5개 경찰서 20군데 지구대 중에서 북부서에서 3곳이 선정되어 직원들의 뛰어난 실력과 저력을 보여주었으며, 형사과 지역3팀이 전국 1,000여개 강력수사팀 중에서 상반기 베스트 팀으로 선정되어 특진과 특별 승급 및 팀원들이 표창과 인증서를 받게 된 일이다. 다섯 번째는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7분 정도에 해당하는 홍보 동영상을 자체 제작하여 주민과의 대화 시간에 보여드리는 한편 특별 편성한 보이스피싱 수사전담반이 중국인 피의자를 광주권 최초로 검거한 일이다. 또한 자신의 무면허 운전을 은폐하기 위해 무고한 초등학생을 공기총으로 살해하여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범인을 시종일관 차분한 대응으로 검거할 수 있었던 일이다. 여섯 번째는 지역경찰 친절경연대회 개최이다. 친절경찰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형식적으로 해오던 대회를 모범 친절경찰관을 선발하여 자신의 친절노하우를 전해주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타인이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베푸는 친절한 경찰상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곱 번째는 전국 최초 이동식 CCTV활용이다. 특히 2개월여에 걸쳐 주택가 빨래 건조대에서 여성 속옷만 전문으로 절취해가던 범인을 촬영된 증거를 토대로 체포하였고, 수확기 농산물 절도범행도 단 한 건 발생하지 않았다. 여덟 번째는 직원 간 화합의 장을 열었던 지역경찰 체육대회이다. 한자리에 모이기가 힘든 지구대 직원까지 함께하여 경기를 통해 심신의 피로를 풀고 웃음을 꽃피운 친목의 장이 되었다. 아홉 번째는 제1회 늘푸른 북구 청소년 논술경시대회이다. 2006년 강진서에서 처음 실시했고 2007년 광주 남구에서 열었던 청소년 논술경시대회가 청소년들은 물론 학부모들까지도 큰 호응을 얻었던 경험을 살려 북구 관내 청소년을 대상으로 논술대회를 열어 청소년들에게 창의력 및 사고력을 배양하였고, 학부모들에게는 경찰의 친근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제고한 대회로 평가되었다. 열 번째는 북부서가 여러 체육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 일이다. 제2회 광주청장기 축구대회에서 10년 가까이 차이나는 젊은 팀을 연속 꺾고 우승 하였으며, 제3회 광주청장기 야구대회에서도 우승을 하면서 북부서의 또 다른 저력을 과시하였다.
잠깐 사이에 지난해의 추억을 돌아볼 수 있는 행복이 북부서 직원들이 바리바리 싸준 보따리에 있었다. 그 보따리에 나는 한 가지를 더 넣었다. 12월 31일 송년행사와 함께 가졌던 직원퇴임식이다. 두 분은 서장실에서 차 한 잔 나누고 조용히 떠나시겠다고 했지만, 30년 이상 경찰에 몸담아 오신 선배님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 생각되었다. 이날 퇴임식에서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담은 송별사와 답사를 들으며 눈시울을 붉혔고, 나 또한 맺힌 눈물을 닦기 위해 안경을 벗을 수밖에 없었던 감동의 자리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보따리 하나에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요즘처럼 상가가 발달하기 전에는 보따리장수들이 이집 저집 골목마다 찾아다니며 보자기를 풀어놓으면 생전 보도 듣도 못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고 편리하게 구입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건을 팔아 돈을 벌려는 목적도 있겠지만, 최고의 물건을 자신의 고객에게 전달해주고 싶은 욕심으로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왔던 사람들, 고객이 무엇이 필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그들이었고, 멀리 있어도 가까운 이웃 같았던 사람들이 바로 보따리장수가 아니었을까 새삼 느껴본다. 나는 이제 새로운 보따리를 준비하고 있다.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