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에 있었던 죄
김현임(수필가)
‘샤리아’라는 이슬람율법에 따른 처벌이다. 미혼 남녀가 호텔 객실과 같은 밀폐된 사적 공간에서 같이 있을 경우 과도한 접근으로 체포할 수 있단다. 하여 새해 첫날 새벽 무려 50여 쌍의 말레시아 연인들이 날벼락을 맞았다. 또한 공공연히 동성의 결혼까지 허용되는 요즘 세태에 우간다 뿐 아니라 동부 아프리카 전역에서 번진 강화된 동성애 처벌법이 세계인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이 성관계를 가질 경우 법정 최고형인 사형이라던가. 동성애 자체가 서구적 악이며 반 아프리카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동성애를 조장한 사람은 7년, 만 하루에 이르도록 당국에 신고를 하지 않고 묵인한 사람은 3년의 형벌에 처해 현대판 마녀사냥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화면 속 짧은 길이의 호피무늬 치마를 입은 뚱뚱한 몸집의 사내다. 흥겹게 춤을 추다 뒤로 벌러덩 넘어졌으니 민망하기 짝이 없다. 남아공 최대 부족인 줄루족 출신인 제이콥 주마 대통령이 주인공이다. 그는 자국의 헌법으로 보장된 일부다처제의 전통을 몸소 실천 중이라는데 무려 30살 연하의 여인과 치루는 다섯 번째 결혼식 축하연 장면이다.
그런가하면 어느 분의 일본 여행 경험담이다. 머리가 허연 자신에게 불쑥 손 내밀어 라이터를 청하던 담배 꼬나 문 여대생, 봉변인가 놀랐으나 부자지간에도 맞담배를 태우는 일본에서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단다. 어찌 이런 예화들뿐이랴. 문득문득 들던 의문이다. 숱한 염문설 속 교통사고로 사망한 영국의 다이애나 황태자비, 그녀가 만약 우리나라의 경우였다면 쏟아지는 여론의 뭇매를 무사히 피할 수 있었을까하고.
모든 도덕은 위도의 차이라는 말처럼 너무도 판이하게 적용되는 가치척도에 세계가 한 가족이라는 낱말이 무색하다. 시시각각 변하는 세속을 따를 수 없기는 옛날도 마찬가지였던가 보다. 한 사내 올곧은 제 개성을 존중치 않는 주변의 비난에 지쳐 자신의 집 편액을 ‘따라 사는 집’이라는 의미의 ‘隨廬’라 했다. 이제까지의 태도를 바꿔 세상의 변화에 따라 살겠다 마음먹은 게 틀림없다. 자기 멋대로 살다가 받은 질시의 손가락질에 이제부터는 세류 따라 살리라 굳게 다짐했을 터다.
‘그 때, 그 때 달라요’라는 개그 프로 속 유행어처럼 급변하는 시대조류를 따라 잡기 엄두가 안 난다. 좌측통행에서 일시에 우측통행으로 바뀌는 도로법이나 하루가 멀다고 바뀌는 세법처럼 한 사회를 지탱하는 큰 규율인 윤리관도 정신을 차릴 수 없도록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다만 무엇보다도 반가운 것은 오랜 관습과 타인의 시선보다는 한 개인의 삶이 그 기준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화가 난 날, 공터에서 힘껏 찬 돌멩이, 그 가벼운 반발의 후련함도 꽤 괜찮았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했던가. 이는 마약사범으로 몰릴 위기에 처한 프랑소와즈 사강의 일갈이다. 과도한 풍속사범이 아니라면, 극심한 반정서가 아니라면 또한 최소한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라면 자기 생의 돛대, 그 향방의 결정권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허여되어야하지 않을까.
새해를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보내고자 하는 게 죄가 되는 너그럽잖은 법령도 그렇고 동성애, 그도 아직은 생경하다. 언제였던가. 불행히도 단 하나 뿐인 내 남편과 티격 대던 날이었으리라. 줄루족 대통령의 一夫多妻와 역으로 한 집안의 삼형제 모두를 거느리고 살던 一婦多夫의 여인, 그 티벳여인을 제명으로 횡설수설 한 편의 어설픈 시까지 써 보았다. 첫째 남편은 별을 헤며 점을 치는 사람이라 일 년에 몇 번 만나기도 힘들어 그를 만나면 여전히 어렵고 부끄럽다고 했다. 둘째는 저 먼 곳까지 오가는 상인의 신분, 그러니까 차마고도를 오가며 소금 장사를 하는 가정경제담당의 배필이다. 해서 어릴 때 머리를 다쳐 좀 부족하지만 아내에게 지극히 고분고분한 셋째와 주로 지낸다던가. 고원의 따사로운 햇살 속 지아비와 함께 야크똥으로 허물어진 담을 수리하던 이국 여인의 모습, 한없이 평화롭던 여인의 얼굴에 모락모락 이어지던 내 불경스런 꿈, 꿈꾸는 것만으로도 죄가 된다면 나는 그 항복에서 만큼은 자유스럽지 못하다.
며칠 전 읽은 어렴풋한 시 구절 속 벤자민 나무 한 그루를 자신 향해 보낸다던 시인도 자신을 옥죄는 이런저런 제약의 굴레가 답답했을까. 수많은 나무들 중 하필 잎 많은 수종을 골라 자신에게 보낸 연유가 흔들리고 싶을 때마다 욕심껏 흔들기 위해서란다. 견디다 견디다 못해 결국 마른 잎 모조리 떨구고 말 것이라 예견했던가. 후득후득 흔들리다가 우수수 떨어지는 이파리들의 환상, 때때로 빠지는 위법의 유혹에 간혹 떠오르는 ‘숲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제목의 시 속 풍정이다. 이는 키 큰 나무들이 빽빽한 숲, 거목들의 그늘에 가려 햇볕 한 줌 후련히 보지 못하는 풀잎의 답답증이 꿈꾸는 일탈의 욕망일까. 외재율보다는 내재율에 충실한 시가 좋아지는 요즘, 구금의 위협을 무릅쓰고 함께 한방에 있고픈 연인도 황홀하지만 감히 꿈꾸어 보는 건 내 心法에 충실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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