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기고) 윤양희 '친정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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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0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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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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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윤양희 '친정집'
윤양희(강진여성산문동아리회원)

오늘 오후 동생과 함께 아버지에게 갔다. 평소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검은콩 베지밀과 팥이 많이 든 단팥빵을 샀고, 전날 만들어 놓은 나물반찬과 한 번에 한 봉씩 드실 수 있도록 포장해 둔 사골국물을 냉장고에서 꺼내 쇼핑백에 담아 갔다.

동생이 자동차를 주차하는 사이 나는 먼저 아버지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우리 왔어요.”

내가 아버지를 부르며 현관을 열려 할 때, 아버지가 먼저 문을 열고 나오시며 누구냐?”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아버지 방에서는 언제나 즐겨듣는 김용림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반가운 딸의 목소리에 슬리퍼를 한쪽만 신고 있었고, 한쪽 발은 맨발인 채 마당으로 나오셨다.

아버지 양희랑 애덕이랑 왔어요.”

오메, 우리 양희가 왔냐?”

, 아버지 애덕이랑 같이 왔어요.”

아이고 뭔 일이냐? 느그 장사는 어짜고 이러고 둘이나 왔냐?”

내가 아버지를 부축하여 드릴 때, 동생이 대문을 열고 들어왔고, 우리는 함께 아버지를 부축이며 안으로 들어서는데, 예전보다 아버지의 어깨가 많이 구부러져서 제대로 펴질 못하시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 어깨를 반듯하게 쭉 펴보세요.” 라고 내가 말하자 아버지는.

아이고 나도 이제 늙어서 아주 몸이 굳어버려서 잘 안 펴진다.”

젊어서 지게질을 많이 하신 탓에 아버지의 어깨는 나이를 드시면서 점점 굽어지고 있었는데, 이젠 굽어진 어깨가 아주 굳어져 보였다. 우리 아버지는 참 부지런하셨다. ‘아버지하면 어떤 모습이 떠올려지냐고 할 때, 나의 아버지의 모습은 항상 작업복을 입고 일하신 모습이었다. 그러한 아버지를 둔 나를 친구들은 부러워했는데, 아버지의 정겨운 말 때문이었다. 당시 아버지들이 정겹게 말하는 아버지가 별로 없던 시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친구들은 아버지를 매우 다정다감한 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 친구들이 집에 오면 항상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재미있게 놀다가라고 하시며 오다마 옛날사탕을 하나씩이라도 꼭 챙겨주셨다. 그런 아버지가 어느새 93세나 되셨다.

아버지는 85세가 넘은 연세에도 마을에서는 청년으로 불리셨다. 마을이 젊은 청년은 없고 모두 80세 이상만 남은 고령화된 마을이 되었다. 그런 고령 노인 중에서도 아버지는 허리가 꼿꼿해서 80대의 젊은 층에 속했고 동네 궂은일을 다 맡아서 하셔왔다. 지금 시골 친정마을엔 몇 년 사이에 친구들의 어머니 아버지가 거의 돌아가셨다. 고령에 연세 드신 우리 아버지와 딱 한 분 친구까지 두 분만 남은 것이다. 돌아가신 분도 있고, 살아계셔도 요양원으로 가셔서 마을은 텅 비어가고 있는 것이다.

시골집 마당에 앉아 앞산을 바라보았다. 친정어머니는 저 앞산 윤 씨 선산 가족묘 납골당에 안장되어 계신다. 시골집에 오면 마당에 어릴 적부터 있던 감나무 아래서 어머니가 계신 곳을 바라보곤 한다. 감나무는 그대로인데 사람의 세월은 변해있다. 엄마가 저 앞산에서 버선발로 뛰어나와 우리 양희 왔냐하면서 와락 껴안아 주실 것만 같았고, 어릴 적 엄마한테 투정부렸던 일들이 떠오르며 미안해졌다.

엄마, 우리 집에는 왜 맨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요?”

학교에 다녀오면 집에 사람들이 항상 많았다. 먹을 것이 귀한 시절이라 학교에 갔다 오면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찾곤 했는데 먹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었다. 나는 어른들이 모여서 다 먹어 버렸기 때문에 없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투덜대곤 했었다. 나의 친정집은 마을 입구 신작로 큰길 옆이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오다가다 들려서 잠깐씩 머물다 가곤 허는 마치 마을 정류소 같은 곳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사람들이 많았던 그때가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어린마음에 내 먹을 것을 없어진 기분은 매번 화가 나서 짜증이 냈었다.

우리어머니는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치매증상은 특이하게도 보따리를 싸서 누구에게 주는 치매였다. 누군가 오면 무조건 비닐봉지에 무엇을 싸주곤 했는데, 그 봉지 안에 별의별 것이 다 들어갔다. 살아생전에 인정이 많아 남 주길 좋아했던 어머니는 치매도 그렇게 싸주는 거였다. 그래서일까. 나도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누구든 나눠주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다. 무엇이든지 양보를 잘하고 잘 주어버려서 어느 때엔 내가 너무 주었나 하는 때도 있다. 나의 친정집은 항시 사람들이 들끓는 사람냄새가 나는 집이었다. 그때 사람들이 지금은 많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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