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편 예의범절( 風操)
안지추는 후손들이 늘 기품 있는 몸가짐을 갖추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예의범절에 관한 여러 가지 사항들에 대해 그 취지와 근본정신, 남북간 관습의 차이, 시대풍조 등까지 소상하게 설명하였다.
사대부(士大夫)의 예의범절 — 내가 <예기(禮記)>를 보았더니 성인의 가르침 중에 소제(掃除)하는 법, 식사예절, 기침하고 침 뱉는 법, 대답하는 법, 촛불 드는 법, 세숫물 따르는 법 등이 모두 규정이 있고 또 상세하였다. 다만 빠지고 손상된 부분이 있어 온전한 책은 못 되었는데, 거기에 기재되지 않은 것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세상일이 바뀐 것은 박식한 군자가 직접 규범을 만들면 이를 계승하여 행하므로 세상에서 사대부의 예의범절(풍조 風操)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집안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나기도 하고 보기에 따라 서로 좋다 나쁘다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개략적인 방식 또한 저절로 알 수가 있다. 예전 강남에 있을 때에는 직접 봐서 알고 직접 들어서 알게 되므로 쑥이 삼 사이에 자라면 절로 곧아지듯 굳이 글로 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너희들은 전쟁 중에 태어나 보고 들어서 알 수가 없으니, 글로 기록하여 자손들에게 전하여 보여 주려는 것이다.
상식에 어긋난 지나친 피휘(避諱) ㅡ <예기>에 “3년상을 마치고 길을 가다가 부모와 닮은 사람을 보면 눈이 휘둥그래지고 부모의 이름을 들으면 마음이 놀란다”라고 하였다. 마음에 느끼고 닿는 바가 있어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마음이 뭉클해지는 것인데, 만약 조용한 평상시라면 가급적 그 사정을 밝혀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꼭 불가피할 경우에는 참아야 할 것이니, 예를 들어 백부나 숙부 같은 선친의 형제분이 선친을 빼닮았다고 해서 평생 애간장을 태우고 그분들과 절교(絶交)를 할 수 있겠는가? 또 “글 쓸 때에는 피휘하지 아니하고, 사당에서도 피휘하지 않으며, 임금이 계신 곳에서도 개인적인 피휘는 없다”라고 하였다. 그러니 선친의 이름자를 들었을 경우에도 반드시 상황의 고려가 있어야 하며, 반드시 허둥지둥 당황하면서 그 자리를 벗어나야 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양대(梁代)에 어떤 사람은 명성이 아주 높았으나 부친의 함자만 들으면 반드시 통곡하곤 해서 세인들의 비난을 받았다. 또한 어떤 사람은 아들로서 학문에 열심이고 행실을 바르게 닦아 집안의 명망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양 원제(元帝)가 제위에 오르기 전 강주자사로 있을 때 장봉세를 건창으로 파견하여 업무를 살피게 하였는데, 군현의 백성들이 앞 다투어 문건을 만들어 아침저녁으로 몰려드니 책상에 가득 쌓였다. 이 글들 중에 ‘엄한(嚴寒)’이란 말만 나오면 그때마다 그걸 보고 눈물을 흘리느라 제대로 살펴 기록하지도 못하고 공무를 중단하는 일이 많았는데, 사람들 사이에 원망이 생기고 물의가 일자 결국엔 일처리를 못한다는 것으로 물러났다. 이는 모두 지나친 일이다.
피해야 할 이름자 ㅡ 주공(周公)은 아들의 이름을 금(禽날짐승)이라 하였고, 공자(孔子)는 아들의 이름을 이(鯉잉어)라고 하였는데, 그 자신에 그치는 것이라면 금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위(衛)나라 제후, 위(魏)나라 공자, 초나라 태자는 모두 이름이 서캐(蟣蝨)이었고, 사마상여는 이름이 개자식(犬子)였으며, 왕수는 이름이 개새끼(狗子)였는데, 이런 경우 윗대까지 누가 미치고 이치에도 맞지 않으니 옛날에는 통용되던 것이라도 오늘날에는 웃음거리가 된다. 북방에서는 자식의 이름을 나귀(驢), 망아지(駨), 돼지새끼(豚子) 등으로 짓는 이들이 많은데 자신의 이름을 밝히거나 형제가 이름을 부를 때 어떻게 견딜 수가 있겠는가?
자식의 이름은 후손의 입장에서 — 요즘 사람들의 피휘(避諱)는 예전보다 엄격하다. 자식의 이름을 짓는 경우 마땅히 손자의 입장이 되어보아야 한다. 나의 친지들 중에는 양(襄), 우(友), 동(同), 청(淸), 화(和), 우(禹) 등의 자주 쓰는 글자를 휘(諱)로 하여 잘 모르는 사람이 잠깐 사이에 한 자리에서 여러 차례 휘를 범하는 경우가 있는데, 듣는 사람은 괴롭고 기댈 데가 없다.
상스러운 호칭 — 옛날 어떤 사람은 하인에게도 차마 짐승이라는 말로 꾸짖지는 못했는데, 오늘날 어리석은 사람은 이것으로 서로 희롱을 하고, 때로는 지명을 해서 돼지(豚)니 소(犢)니 하는 식으로 부르는 이들도 있다.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옆에서 보다가도 귀를 막고 싶을 지경인데, 하물며 그렇게 불리는 사람이야 오죽하겠는가?
자신에 대한 호칭 -- <노자>는 <덕경>에 “그러므로 후왕(侯王)들이 자신을 고(孤), 과(寡), 불곡(不穀) 등으로 불렀지만, 그 아래로는 비록 공자 같은 성인이라 할지라도 문하생들과 이야기할 때 늘 자신의 이름을 칭했다. 뒤에 비록 신(臣)이니 복(僕)이니 하는 호칭이 생기긴 했지만, 이것을 쓰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강남에서는 지위가 높고 낮음에 따라 각각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 있는데, 글 쓰는 법을 서술한 <서의書儀> 책에 잘 나와 있다. 북방 사람들이 다들 자신을 이름으로 일컫는 것은 과거의 유풍인데 나는 이렇게 이름 부르는 것이 좋다.
고인이 된 친족을 언급할 때 — 선친을 언급할 때 그립고 마음이 뭉클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로서 예전에는 쉽게 하던 일이었으나 요즘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일이 되었다. 강남 사람들은 부득이 집안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글로써 하지 얼굴을 맞대고 논하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북방 사람들은 까닭 없이 함부로 말하고 소로 물어보기까지 한다. 이런 일들은 남에게 가해서는 안 되며, 남이 이런 일을 가해 오면 마땅히 피해야 한다. 명성과 지위가 높지 못해 지체 높은 사람들로부터 말하도록 강요받게 되면, 꾹 참고 적당히 넘어가고 대충 대답하고 말 것이며, 번다하게 늘어놓아 조부나 부친을 욕되게 해서는 안 된다. 집안 어른들이 돌아가시고 안 계신데 언급을 해야 할 경우에는, 낯빛을 가다듬고 똑바로 앉아서 <조부나 부친은> ‘대문중(大門中)’이라 부르고, 백부나 숙부는 ‘종형제문중(從兄弟門中)’이라 부르며, 형제는 ‘망자자모문중(亡者子某門中)’이라 부른다. 각각 그 항렬의 높고 낮음과 경중에 따라 낯빛과 태도를 조절하는데, 어느 경우에나 평상시와는 다르게 한다. 임금과 이야기할 경우에는 비록 낯빛을 바꾸더라도 그냥 망조(亡祖), 망백(亡伯), 망숙(亡叔)이라고 하면 된다. 내가 보니 명사들 중에도 죽은 형이나 동생을 일컬어 ‘형자문중(兄子門中)’이니 ‘제자문중(弟子門中)’이니 하고 부르는 이가 있는데, 이 역시 적절치 않다. 북방의 풍속에서는 전혀 이런 것을 행하지 않는다.
죽은 형제 자식들의 호칭 — 옛사람들은 다들 백부(伯父), 숙부(叔父)라고 불렀으나 오늘날에는 간단히 백(伯), 숙(叔)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종형제 · 자매가 부친을 여의고 난 후 그들 앞에서 그 모친을 백모, 숙모라고 부르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형제의 자식들이 그 부친을 여의고 난 후 남들과 이야기하면서, 그들 앞에서 그들을 일컬어 ‘형님 자식(兄子)’, ‘동생 자식(弟子)’라고 부르기는 참으로 어렵다. 이러한 경우 북방 지역 사람들은 다들 질(姪)이라고 부른다. 생각건대 <의례> <춘추좌씨전> 등에서 ‘질’은 비록 남녀 모두에게 통용되긴 하였지만 모두 고모와 상대되는 호칭이었다. 진대(晉代) 이후로 숙질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는데, 오늘날 ‘질(姪)’이라고 부르는 것이 ‘형님 자식’ ‘동생 자식’이라고 하는
것 보다 이치상 낫다.
9. 이별의 눈물 —이별은 쉽지만 만남은 어려워 옛사람들은 만나고 헤어짐을 소중히 여겼다. 강남에서는 전송할 때 눈물을 흘리며 작별을 고한다. 후(侯)에 봉해진 왕자가 있었는데 양 무제의 동생이었다. 동쪽 군이 태수로 나가게 되어 무제와 작별을 하는데, 무제는 “내가 이미 연로하여 너와 헤어지게 되니 몹시 슬프도다”하면서 멸 줄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후는 눈물이 나올 것 같으면서도 끝내 나오지 않아 얼굴만 붉히고 나왔다. 이 일로 문책을 받아 배를 대놓은 채 100일이 넘도록 지체하다가 끝내 떠나지 못하였다. 북방의 풍속에는 이런 일을 대단치 않게 여기며, 갈림길에서 ‘안녕’하고 즐겁게 웃으면서 헤어진다. 그런데 사람들 중엔 본래부터 눈물이 적은 이가 있어서 애간장은 비록 끊어질 것 같으면서도 눈을 오히려 반짝거린다. 이런 사람에게 눈물을 흘리도록 다그칠 수는 없다.
10. 친족의 호칭은 분명하게 — 친족의 명칭은 분명하게 구별해서 써야지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된다. 못 배운 사람들은 부친이 돌아가시고 나면 외조부모(外祖父母)를 조부모(祖父母)와 같은 호칭으로 불러 그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듣기 민망하게 만든다. 비록 면전에서 물어본다 하더라도 모두 ‘외(外)’자를 붙여 구별해야 한다.
부모의 백부와 숙부는 반드시 그 순서를 덧붙여서 구분해야 하고, 부모의 백모(伯母)와 숙모(叔母)는 반드시 그 성씨를 덧붙여 구분해야 하며, 부모의 여러 종백모(從伯母), 종숙부(從叔父)와 종숙모(從叔母) - 그리고 종조부와 종조모는 모두 작위와 성씨를 덧붙여 구분해야 한다.
11. 일족(一族)의 호칭 —종친의 세계(世系)에는 아버지의 형제인 종부(從父)가 있고 할아버지 형제인 종조(從祖)가 있으며 증조할아버지 형제인 족조(族祖)가 있다. 강남의 풍속에는 이 이상 혈족관계의 경우 관질(官秩)이 높은 자는 통상 ‘존(尊)’자를 덧붙여 부르고, 같은 조상에 같은 항렬이라면 모두 ‘집안사람(族人)’이라고 한다. 강북의 사인(士人)들은 비록 2,3십대 후라 할지라도 여전히 종백(從伯), 종숙(從叔)이라고 부른다.
양무제가 일찍이 한 중원 출신의 사인(士人)에게 “그대는 북방 사람인데 어찌 족인이라는 말이 있음을 모르시오?”라고 묻자, “혈족 관계는 소원해지기 쉬우므로 차마 족이라는 말을 못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당시에는 비록 기민한 대답이라고 했지만 예에 맞지 않는다.
12. 초상(初喪)에서 곡하는 법 -- <예기>에서는 “참쇠(斬衰)의 곡은 마치 숨이 넘어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듯이 하고, 제쇠(齊衰)의 곡은 숨이 넘어가되 다시 돌아올 듯이 하며, 대공(大功)의 곡은 <한 번 소리 내면> 세 번을 꺾으면서 훌쩍거리고, 소공(小功)과 시마(緦麻)는 소리 없이 슬픈 낯빛만 보여도 된다. 이는 슬픔이 소리로 나타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효경>에서는 “곡은 하되 훌쩍거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모두가 곡을 할 때 그 소리에 가볍고 무거움, 거칠고 매끄러움의 차이가 있음을 논한 것이다.
예(禮)에 곡을 하면서 말을 하는 것을 “호(號)‘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곡에 말이 들어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강남에서는 상을 당해 곡을 할 때 가끔 슬프게 하소연하는 말이 들어갈 뿐이다. 강북 지역에서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오로지 하늘만 소리쳐 부르고, 기복(期服)이나 소공(小功), 대공(大功) 이하로는 몹시 애통하다는 소리만 외치는데 이것이 바로 호(號)는 하되 곡은 하지 않는 것이다.
13. 한쪽 부모를 여읜 후 맞이하는 명절 —양친 중 한 분을 여의고 설이나 동지를 맞이하는 겨우, 아버지가 안 계셔서 어머니, 조부모, 백부모, 숙부모, 고모, 형님, 누님에게 절을 할 때는 다 눈물을 흘려야 하고, 어머니가 안 계셔서 아버지, 외조부모, 외삼촌, 이모, 형님, 누님에게 절을 할 적에도 마찬가지로 해야 하는데, 이것이 인정이다.
14. 탈상 후 자손의 모습 —강남 조정의 신하들은 자손이 막 상복을 벗고 나면 입조하여 황제와 태자를 뵙는데, 모두가 눈물을 흘렸으며, 황제와 태자는 그들을 위해 낯빛을 고쳤다. 자못 피부빛에 윤기가 흐르고 슬픈 느낌이 없는 사람이 있으면 양 무제가 그 사람됨이 야박하다고 여겨 쫓아내는 경우가 많았다. 배정(裵政)은 탈상을 하고서 무제에게 불교식으로 합장을 하고 몸을 구부려 절을 하였는데, 몸은 야위어 바짝 말랐고 눈물이 넘쳐흘렀다. 무제는 눈으로 그를 보내며 “그대의 부친 배지례는 죽지 않았구려”라고 하였다.
15. 부모 여읜 자식의 마음 —양친이 돌아가시고 나면 재계하며 거처하시던 방에 아들과 며느리가 차마 들어가지를 못한다. 강녕의 아무개는 모친이 소사(燒死)하자 평생 구운 고기를 먹지 못하였고, 또 아무개는 부친이 술에 취해 노비에게 살해당하자 평생 다시는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하지만 예란 인정에 따르는 것이요, 은혜는 올바름으로 판단하는 것이니. 양친이 음식을 잡수시다가 목이 막혀 돌아가셨다고 해서 음식을 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16. 부모님의 유품 -- <예기>에 아버님이 남기신 책과 어머님이 쓰시던 그릇은 손길과 체취가 느껴져서 차마 사용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늘 공부하고 익히시며 대조해 고치고 바로잡아 필사하셨으며 또 가까이 두고 쓰셨으므로 그리운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만약 보통의 서적이나 생활에 필요한 십기(什器)라면 어떻게 다 버려둘 수가 있겠는가? 더 이상 읽고 쓰지 않을 것이라면 흩어 내버릴 것까지는 없고, 잘 묶어 보관하였다가 후세에 남기면 된다.
17.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워 —사노 등의 넷째 외숙모는 오랑 사람 장건의 친딸로서 다섯째 여동생이 있었는데, 세 살 때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영상(靈床) 위 병풍이 평소에 쓰던 오래된 물건이었는데, 지붕이 새어 젖어서 얼룩이 졌기에 햇볕에 쬐어 말리고 있는 것을 딸아이가 보더니 거기에 엎드려 눈물을 흘렸다. 나중에 집안사람들이 아이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겨 안아 일으켰는데 자리는 푹 젖어 있었고 아이는 상심해서 정신을 잃었으며 음식도 넘기지 못하였다. 아이를 의원에게 보이자 의원은 진맥을 하더니 “장이 끊어졌소.”라고 했다. 그리고서 바로 피를 토하고는 며칠 만에 죽었다. 집안 안팎에서 이를 가엽게 여기고 슬퍼하며 탄식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18. 부모님 기일 -- <예기>에 부모님의 기일에는 즐기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바로 보고픈 마음이 그지없고 슬프고 즐겁지 않기에 바깥손님을 맞이하지 않고 잡무를 보지 않을 뿐이다. 능히 슬픈 마음으로 지낼 수만 있다면 어찌 꼭 깊이 숨어 있어야만 하겠는가? 세상 사람들 중에는 간혹 깊은 방에 가만히 앉아 거리낌 없이 웃고 얘기하고 맛있는 것들을 잔뜩 차려놓고 제식도 넉넉히 공양하면서, 갑자기 일이 생겼는데도 가까운 친척이나 절친한 친구조차도 다 만날 수 없다고 하는 이들이 있는데, 아마도 예의 참된 의미를 모르는 것이리라.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