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과 추사의 유배생활 발자취를 추적한다고 글을 시작했지만 두 거인의 발자취는 하늘과 땅 만큼 커서 그려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대충일지라도 두 거인의 유배생활이 어떠했는지 그동안 10회에 걸쳐 추적해 보았다.
다산이 해배되어 고향땅으로 돌아온 후 회혼일에 제자들이 모인 가운데 부인 홍씨의 품에 안겨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추사는 어떠했는가. 1848년 12월 마침내 제주 유배에서 풀려난 추사는 1851년 6월까지 서울의 강상(江上)에서 살았다. 그런데 추사가 다시 1851년 7월부터 다음해 8월까지 북청유배를 가게 된다. 그것은 권돈인 등 간접적인 비판 세력을 견제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그 바탕에 깔려져 있었는데, 헌종의 9촌 숙부인 철종이 왕위계승자로 영입되면서 안동김씨가 승계 방식에 대한 문제를 잠재우고자 추사를 북청으로 유배시킨 것이었다.
추사는 유배생활을 하면서 함경감사 윤정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윤정현은 추사의 제자였다. 1852년 10월에 추사는 북청 유배를 떠난 지 1년 여 만에 과천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별세하기까지 4년 동안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웠다. 우리나라 역사상 4대 명필로는 신라의 김생, 고려의 탄연, 조선 전기의 안평대군, 조선 후기의 추사 김정희이다.
연암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는 그런 추사의 글씨를 이렇게 평했다. “만년에 바다를 건너 돌아온 후 다시는 남의 행보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사람의 장점을 모아 스스로 일가를 이루게 되니, 신비스러운 기운이 바다의 파도처럼 밀려왔다”라고 할 정도였다. 추사는 유배생활을 하면서 천재적 재능에 완하삼백구비(腕下三百九碑 : 팔뚝 아래 중국의 옛 비석의 서체 309가지를 모두 익혀 갖추었다는 뜻)를 갖추고 전혀 새로운 문자구조를 창조했던 것이다.
불계공졸(不計工拙).
기교의 능함과 서투름을 따지지 않는 경계조차 벗어난 추사였다. 어느 때는 고졸한 옛 비석의 예서가 되었다가 어느 때는 칼날처럼 번득이는 행서가 되는 글씨를 썼다. 그러므로 글씨의 각이 잡혔다가 어느새 원만해지고, 기름이 흐르는 듯 윤택하다가도 필획이 갑자기 환자처럼 야위어지고 보리 까끄라기처럼 까칠해지기도 했다.
1842년 11월 13일. 추사가 부인을 잃은 해였다. 부인 예안 이씨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당시 추사는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추사는 그 소식을 듣고 뼈가 에이는 듯한 오열을 했다. 그리고 부인을 애도하는 한 편의 시를 이렇게 지었다.
죽은 아내를 애도하며
어찌하여 월하노인이 저승에 호소하여
다음 세상에 남편, 아내 자리 바꿔 태어나
내가 죽고 그대 천 리 밖에 산다면
이 내마음속 슬픔을 그대가 알 터인데.
추사가 죽기 전의 작품은 어떤 것일까. 그는 죽기 전 두 달 전에 ‘대팽두부과강채 고회부처아녀손(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이란 대련은 추사의 작품 가운데 백미로 꼽히는 것은 마지막에 썼기 때문일까.
가장 좋은 음식은 두부, 오이, 생강, 채소이며, 가장 좋은 모임은 부부, 아들, 딸, 손자가 모인 것이다.
추사는 구(句)를 이렇게 쓰고 나서 협서(脇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이것은 시골 글방선생의 즐거움 중에서 첫 번째 즐거움이다. 비록 허리춤이 큰 황금 인장을 차고 한 길이나 되는 밥상 앞에 시중이 드는 첩이 수백 명 있다 할지라도 능히 이런 맛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여기에서 한 길이나 되는 밥상이란 말은 <맹자>의 <진심하(盡心下)에서 나온 글을 추사는 인용하였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우리는 천하의 천재이자 예술가였던 추사도 평범한 가정의 한 지아비이며 가장을 더 원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추사는 서예 예술에 있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점은 있다면 그것은 금강저(金剛杵)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금강저는 제석천(帝釋天)이 쓰는 손잡이의 양쪽 끝이 뾰쪽한 창(杵)을 말한다. 아수라를 쳐부술 때 사용하는 무기로서 손잡이의 양쪽 끝이 뾰족하게 생겼다. ‘가슴 속에 오천 권의 서책을 담고 팔뚝 아래 금강저를 휘두를 정도가 되어야만 글씨의 도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추사는 말년에 과천과 봉은사를 오가면서 지친 삶을 내려놀고 지냈다. 그리고 죽기 전 사흘 전에 봉은사 현판 글씨 ‘판전(板殿)’을 썼는데, 이는 한평생 피와 땀의 결실 끝에 찾아낸 금강저였다.
성유현은 본관이 목천(木川)으로 조선 팔도 안 다닌 곳이 없이 유람했으며 20년간 중국을 출입하며 청나라 탕상헌과 의형제를 맺은 인물이다. 그는 추사를 이렇게 묘사했다.
방 가운데 노인 한 분이 앉아 계셨는데 신재(身材)가 단소하고 수염은 희기가 눈 같고 많지도 적지도 않았다. 눈동자는 밝기가 창같이 빛났고, 머리카락이 없고 중들이 쓰는 대로 짠 원모를 썼으며 푸른 모시, 소매 넓은 두루마기를 헤치고 젊고 붉은 기가 얼굴에 가득했고, 팔은 약하고 손가락은 가늘어 섬세하기 아녀자 같고, 손에 한 줄 염주를 쥐고 만지며 굴리고 있었다. 제공들은 배례(拜禮)를 하였다. 몸을 굽혀 답하고 맞는데, 그가 추사 선생인 줄 가히 알 수 있었다. 전에 듣건대 추사 선생이 다른 시대(異代人) 같다 하여 눈을 씻고 자세히 보았으므로 그 기구와 얼굴이 아직도 뚜렷하게 남아 있다.
추사의 사후 평가
추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조문하였다. 그리고 유명한 제자들은 앞다투어 스승의 죽음을 슬퍼하는 시문을 바쳤는데, 평생 서화로 떠받든 우봉 조희룡은 이렇게 지었다.
완당 학사의 수명은 칠십 하고도 하나
봄이 짧아 오백 년 만에 다시 오신 분
천상에서 일찍이 반야(般若)의 업을 닦으시다가
인간 세상에 잠시 재상 몸으로 나타나셨네.
강하(江河)와 산약 같은 기운 쏟을 곳 없고
팔뚝 아래 금강석 같은 신기(神氣)가 있으셨지.
옛 것도 아니고 지금 것도 아닌 별도의 길을 여시어
정신과 능력이 이르신 곳은 모두 종정(鐘鼎, 금석학)이었고
구름과 번개 무늬는 글씨로 무늬를 덮으셨다.
문물이 빛나고 평화로우면 응당 일이 있는 법.
어쩌하다 삿갓 쓰고 나막신 신고 비바람 맞으며
바다 밖의 문자를 증명하셨나.
공이시여! 공이시여! 고래를 타고 가셨습니까?
아아! 만 가지 인연이 이제 다 그쳤습니다.
글자 향기 땅으로 들어가 매화로 피어나니
이지러진 달, 빈 산 속에서 빛을 가리웁니다.
침향목으로 조각한 상(像)은 원래 잘 부서지니
백옥으로 속을 쪼고 황금으로 빚어내오리다.
눈물이 저같이 박복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추사의 평생 지기는 역시 권돈인이었는데, 그는 추사가 떠난 후 반 년이 지나 아버지 김노경과 함께 억울한 누명을 벗고 복권되었을 때 권돈인은 추사를 대신해서 가슴의 응어리가 풀렸다. 권돈인은 추사가 떠난 후 8개월 만에 관직에 회복하라는 명이 있었다면서 이렇게 읊었다.
하늘에 사무치는 원통한 일은 모두가 안타까이 여겼지만
푸른 산에 뼈 묻어 형과 아우에게로 돌아갔네.
모르겠도다. 황천 아래 어두운 곳의 혼백이
임금이 내리는 말씀을 읽을 수 있는지.
초의스님은 추사가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사람이었다. 초의스님은 비록 장례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1858년 철상하기 직전에 홀로 찾아가 통곡의 제문을 바쳤다.
무오년 2월 청명일에 방외(方外)의 친구 초의는 한잔의 술을 올리고서 김공 완당 선생 영전에 고하나이다.
엎드려 생각건대 좋은 환경에 태어나 어찌 굳이 좋은 때를 가리려 했나이까. 신령스런 서기로서, 어두운 세상에 따랐으면 그게 곧 밝은 세상이었을 텐데, 이를 어기고 보니 기린과 봉황도 땔나무나 하고 풀이나 베는 나무꾼의 고초를 겪은 것입니다.
슬프다! 선생은 천도와 인도를 닦아 여러 학문을 체득하시고, 글씨 또한 조화를 이루어 왕희지, 왕헌지의 필법을 능가하고, 시문에 뛰어나 세월의 영화를 휩쓸고, 금석(金石)에서는 작은 것과 큰 것을 모두 규명하여 중국에까지 이름을 떨치셨나이다. 달이 밝으면 구름이 끼고, 꽃이 고우면 비가 내립니다.
슬프다! 선생이시어. 사십여 년의 깊은 우정을 잊지 말고 저 세상에서는 오랫동안 인연을 맺읍시다. 생전에는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도에 대한 답론을 할 제면 그대는 마치 폭우나 우레처럼 당당했고, 정담을 나눌 때면 그대는 실로 봄바람이나 따스한 햇살 같았지요. (중략)
추사의 학예는 제자들에 의해 넓게 퍼져 나갔고 업적을 기리는 문집이 편찬되었다. 또한 추사 사후 30년이 되어서는 철종실록이 편찬될 때 사관들은 추사의 삶을 평가하는 졸기(卒記)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철종 7년 10월 10일 갑오. 전 참판 김정희가 죽었다. 김정희는 이조판서 김노경의 아들로 총명하고 기억력이 투철하여 여러 가지 책을 두루 읽었으며, 금석문과 그림과 역사에 통달하였고, 초서, 해서, 전서, 예서에서 참다운 경지를 신기하게 깨달았다.
때로는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잘 했으나 사람들은 그것을 비판할 수 없었으며, 그의 작은 아우 김명희와 더불어 훈지처럼 서로 화답하여 울연히 당세의 대가가 되었다.
젊어서부터 영특한 이름을 드날렸으나 중도에 가화(家禍)를 만나 남쪽으로 귀양 가고 북쪽으로 유배 가서 온갖 풍상을 다 겪으며, 혹은 세상의 쓰임을 당하고 혹은 세상의 버림을 받으며 나아가기도 하고 물러나기도 했으나, 세상에는 그를 송나라의 소동파에 비교하기도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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