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출생을 흙수저에게 비하기에는 다산의 아버지 정재환(丁載遠 1730-1792)이 참봉을 거쳐 연천현감과 화순현감을 지냈고 예천군수와 진주목사를 지냈기 때문에 안 맞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끼니가 떨어지자 이웃집 호박을 훔쳐 죽을 끓인 계집종이 아내 홍씨에게 혼나는 날이 있었다. 성균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 장면을 목격한 다산은 <남과탄(南瓜歎)이란 시를 짓는다. 호박을 한탄한다는 시였다. 다산의 나이 23세가 되는 때였으므로 그때까지 다산이 사는 살림두량은 지극히 어렵기만 했다.
궂은비 열흘 만에 길은 끊겼고
성 안에도 시골에도 밥 짓는 연기 사라졌네.
성균관에서 집으로 돌아오니
문을 들어서자마자 시끄럽게 야단이 났네.
들어보니 며칠 전 끼니거리 떨어져
호박으로 죽을 쑤어 배를 채웠는데
어린 호박 다 땄으나 앞으로는 어찌하나.
늦은 꽃 지지 않아 열매 아직 안 맺혔네.
옆집 밭의 항아리만큼 커다란 호박 보고
계집종이 슬그머니 가서 훔쳐와
충성을 바쳤으나 도리어 혼이 나네.
누가 네게 훔치게 했는가 회초리가 호되네.
아, 죄 없는 아이에게 성을 그만 내세게.
이 호박은 내가 먹을 테니 더 이상 말을 말고
날 위해 밭주인에게 사실대로 얘기하소.
오릉의 작은 청렴 나는 싫어 한다오.
나도 장차 때를 만나면 높이 날게 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금광 찾아 가리라.
만 권 서적 읽었다고 아내가 어찌 배부를까.
밭 두 뙈기만 있어도 계집종 죄 안 지었을 것을.
여기에서 오릉이란 말은 <맹자>의 ‘동문공편’에 나오는 말로서 전국 시대 제나라의 진중자란 사람이 매우 청렴하여 오릉 땅에 가 가난하게 살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추사는 다산과 달리 금수저로 태어났다. 추사의 집안은 본래 충청도 서산으로 고조할아버지 김홍경이 영의정까지 하였고, 증조할아버지 김한신은 영조대왕의 둘째 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월성위에 봉해지기까지 했으니 명문의 집안이었다.
추사의 할아버지 김이주(1730-1797)는 출세를 거듭하여 승지와 광주부윤, 대사헌과 형조판서를 지냈다. 그가 아들 넷을 낳았는데 막내인 넷째아들 김노경(金魯敬1766-1837)이 추사의 친아버지였다.
추사는 김노경의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추사가 태어날 무렵 우물물이 줄어들고 뒷산인 팔봉산 소나무들이 시들하다가 추사가 태어났을 때 샘이 다시 솟고 소나무가 기운을 되찾았다는 기이한 얘기가 있다.
이러한 출생설화가 있는 추사는 신동답게 어려서부터 일찍 글을 깨우쳤다. 그가 여섯 살 때 ‘입춘대길’이란 글씨를 써서 붙일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추사가 쓴 <입춘첩(立春帖)>을 월성위궁 대문에 붙여놓았는데, 당시 북학파의 대가인 박제가(朴齊家)가 지나가다 글씨를 보고는 추사의 부친을 직접 만났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이 아이는 앞으로 학문과 예술로 세상에 이름을 날릴만하니 제가 가르쳐서 성취시키겠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추사가 여덟 살 때 친아버지 김노경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 기특하기만 하다.
한여름에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사모하는 마음이 그지없습니다. 소자는 어른을 모시고 책 읽으며 잘 지내오니 걱정 마십시오. 백부께서는 지금 곧 행차하시려고 하는데 장마가 그칠 기미가 아니고 날씨가 무덥기만 합니다. 걱정이 되는 마음 큽니다. 아우 명희와 어린 여동생은 잘 있겠지요? 제대로 갖추질 못하오니 굽어살피소서. 이만 줄입니다.
계축년 유월 초열흘 아들 정희 올림
글 내용을 보았을 때 어떻게 여덟 살 아이가 쓴 편지라고 짐작인들 할 수 있겠는가.
부친은 추사에게 다음과 같이 답장을 한다.
편지가 도착해서 네가 어른을 모시는 가운데 책을 읽으며 잘 지낸다는 사실을 알았다. 요즈음 돌림병 또한 일단 벗어났다니 무척 위안이 되는구나. 나는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다. 큰아버지께서는 평안하게 잘 돌아가셨으니 기쁘고 다행스러움이 두 말할 나위가 없구나.
명희와 젖먹이 아기는 모두 잘 있단다.
길게 쓰지 못하고 이만 줄인다.
12일 애비가
추사의 행동거지는 애늙은이였다. 나이는 어렸지만 진중함이 있었다. 그런데 양아버지의 타계로 인해 추사는 친아버지 김노경을 모시며 지냈다.
그리고 추사는 1800년 이희민의 딸을 맞아하여 가정을 꾸리니 그가 한산 이씨이다. 한산 이씨는 명문의 집안이었다. 청백리 이태중의 증손녀였던 것이다.
추사가 열다섯이 되던 무렵 박제가로부터 북학을 공부했다. 당시 박제가는 이미 연경을 다섯 번이나 갔다 왔고, 그 유명한 '북학의(北學議)'를 끝냈을 때였으므로 추사는 박제가로부터 청나라 서울의 발달된 문물을 들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끝내는 7년 뒤 연경을 가게 된다.
추사가 박제가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사에게 세찬 비바람이 몰아쳤다. 추사가 열여섯이 되었을 때 어머니를 여의였는데, 바로 그 해에 스승 박제가가 유배를 떠나게 된 것이었다.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고문도 심하게 받았고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를 간 박제가였으니 추사로서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추사 나이 스무 살 때에는 추사의 부인 한산 이씨가 그만 타계하고 말았다. 한산 이씨가 죽고 나자 유배 생활을 하던 박제가가 풀려나는가 싶더니 이내 병으로 별세를 하고 만다. 그 이듬해에는 양모인 남양 홍씨가 타계하고 말아 추사의 십대는 그야말로 불우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불행은 이쯤에서 끝이 나고 추사는 23세 때 예안 이씨와 혼인을 하게 되었는데, 장인이 벼슬은 없었으나 명문 집안이었다. 그리고 24세 때에는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생원(生員)이 되었다.
당시 김노경은 친아버지로서 동지부사(冬至副使)에 선임되어 연경에 가게 되었는데, 추사도 생원에 합격한 사람이었으므로 자제군관(子弟軍官) 자격으로 간 것이었다. 추사에게 있어서는 일생에 있어서 새롭게 눈이 떠지는 순간이었다.
다산에게 있어서 성호 이익(星湖李瀷1681-1763)은 성호학파학맥의 주인공이다. 비록 47세 일기로 국문을 받다가 죽은 인물이지만 벼슬을 하지 않고 오직 학문에만 매진한 진정한 학자였다. 그는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성을 인정하고 이를 발전시켜 나가야한다는 역사의식을 가진 인물이었다.
이런 이익의 증손자이자 이승훈의 숙부인 이기환은 다산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다산은 이기환을 통해 실학에 눈을 뜨게 되었는데, 절해고도 보길도에서 생을 마감한 고산 윤선도의 증손인 공재 윤두서는 다산의 어머니의 할아버지였다.
다산 뿐 아니라 다산의 중형인 손암 정약전 역시 이익의 학맥을 이어받아 성호학파를 이끌던 권철신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는데, 권철신은 이익의 문하에서 수학한 후 성호학파의 중심부에 있었고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다산은 많은 학자들과 우정을 맺었는데, 시문에 능한 이덕무(李德懋)와 형조판서 이서구(李書九), 그리고 박제가 등이다. 다산과 추사의 어린 시절은 이렇게 달랐으므로 다산이 흑수저인데 반해 추사는 금수저로서 지냈다.
(정리: 송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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