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의 위기, 실패의 경헌과 교훈
IMF 충격에 흔들리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옛말이 있다. 자식을 여럿 둔 집안은 그만큼 걱정이 그칠 날이 없다는 뜻이다. 사업가에게도 같은 비유를 들어 말해도 좋을 것이다. 사업이 성장하면 책임져야 할 일과 사람들이 늘어난다. 즉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닥쳐오기 마련인데, 육지가 아니라 바다를 무대로 사업을 하던 김재철에게는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다.
국제정세나 환경의 변화 같은 위기가 여러 번 덮쳤다. 1차 오일쇼크(1973), 200해리 경제수역 선포(1977), 2차 오일쇼크(1979) 등으로 인한 무더기 도산은 업계 전체가 직면한 위기였다.
1970년대 중반 20여 개의 원양업체들은 1990년대 중반에는 최고 192개로 늘어나지만 2013년에는 75개로 줄어들고 만다. 또 이 가운데 20척 이상을 보유한 업체는 단 2개사이고, 나머지는 1~5척을 보유할 정도였다. 그만큼 퇴출된 원양업체들이 많았다. 이처럼 거듭되는 위기를 김재철은 꼿꼿이 이겨냈을 뿐 아니라 공세적으로 투자하면서 고속성장해 나갔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는 그에게도 큰 시련이었다. 하지만 그는 전세를 반전시키기라도 하듯이 동원그룹의 토대를 굳건히 해나갔다. 오히려 사세가 확장되었기 때문에 1997년 전후의 위기를 자칫 간과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가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 자세히 다루어야 할 것이다.
위기는 불시에 닥친다. 사업의 어려움은 돌발 사건과 선례가 없는 상황에서 비롯된다. 1997년 외환위기야말로 유례없는 대형 사건이었고, 30개 기업전단 가운데 무려 17개가 해체되었다. 김재철은 이런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데 그는 외환위기의 징후를 정확히 미리 읽어낸다.
외환위기 발생 10개월 전에 내다본 한 기업가의 통찰력은 참으로 대단했다. 왜 그런 판단을 내리게 되었을까?
창사 이후 김재철 사업은 고속 질주한다. 창사 10주년에 산단수는 총 26척(어획고 132억), 20주년에는 44척(어획고 735억), 그리고 26주년 되는 1995년에는 52척(어획고 923억)까지 불어난다. 창업 이후 10주년까지 평균 매출성장률은 81.3퍼센트, 20주년은 37.1퍼센트, 그리고 이후 6년간은 18.3퍼센트를 기록한다.
그러나 1996년에 위기의 경보음이 울린다. 1969년 창사 이래로 한 번도 적자가 없었던 동원산업이 1996년과 1997년에 이례적으로 큰 폭의 적자를 낸다. 이 규모만 해도 각각 193억 원과 242억 원이었다. 참고로 1994년과 1995년의 이익 규모는 각각 88억 원과 101원 원이었다. 부채비율도 1995년에는 223퍼센트였는데 1996년과 1997년에는 각각 319퍼센트와 484퍼센트로 급증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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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전체에 부담을 준 동원 파이낸스의 부실화
창사 이래 최초의 적자에 대해 김재철은 심각한 위기 상황이자 부끄러운 일로 받아들였다. 그는 외부 강연도 접고 골프도 끊고 심지어는 아내가 타던 자동차까지 팔아서 경비를 아끼는 등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자숙의 시간을 갖는다. 사업을 하면서 이런 상황에 놓일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 아무리 건실하게 운영을 해왔더라도 바닥에 떨어졌을 때 일어나지 못하면 기업은 무너지고 만다. 그래서 사업은 힘들고 두려운 일이다. 밑바닥에서부터 쌓아올린 사람들은 늘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 없다. 그들은 수십 번의 경험을 거두었더라도 단 한 번의 위기로 넘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적자에 이어 또 한 번의 거센 파도가 김재철을 덮친다. 그것은 외횐위기로 국가 신용도가 추락하면서 해외 금융기관들이 대출만기를 연장해 주는 일, 즉 롤오버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여기에다 원화 가치가 폭락해 원리금 및 이자 부담이 커졌다. 많은 기업들이 골머리를 앓고 부도의 벼랑 끝에 내몰리는데, 동원그룹도 외지 차입 규모가 1억 3.000만 달러나 되어서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의 심각성은 1997년 한해 외화평가손실 규모가 무려 645억 원에 달할 정도였다는 데서 알 수 있다. 선박을 신조하기 위해 빌린 돈의 대부분이 외화 자금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날벼락 같은 대현사고가 금융 부문에서 일어났는데, 김재철에게 큰 부담을 안겨주었다. 금융업은 김재철이 1995년 5월 19일에 자본금 100억 원으로 한신펙토링 사업을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매출채권 관련 자금의 지원관리와 팩토리금융 및 단기자금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였다. 1996년 2월 6일에 동원파이낸스로 상호를 3차에 걸친 유상증자를 마쳐 자본금 규모가 650억 원이 될 정도로 대형 펙토링 회사로 성장했다. 외환위기 발생 이전에 국ㄴ재에서는 100여 개의 파이낸스 회사가 영업하고 있었는데, 동원파이낸스는 자본금 650억 원 그리고 어음활인액 4.000억 원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가장 컸다. 1997년 한 해 영업수익으로 835억 원을 올릴 정도였으나 종업원은 17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 얼마나 매력적인 사업이었겠는가.
그러나 외환위기의 파고에서 그 사업은 뇌관으로 작용한다. 한마디로 동원파이낸스의 부실이 그룹 전체에 부담을 주게 된 것이다. 당시 동원파이낸스는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아서 골프장 건설에 많은 돈을 빌려주었다. 골프장마다 200-300억 원 가량 대출이 되었는데 금리 차가 2퍼센트나 되어 수익이 괜찮았다. 업계에서 신뢰가 있고 은행장 출신의 검증된 경영자가 책임자였기 때문에 김재철이 전적으로 자율경영에 맡겼다. 외환위기 발생 전인 8월 기준으로 상위 10대 팩토링 회사의 총 대출액 2조 4.000억 가운데 동원파이낸스가 5.700억 원으로 업계 1위였다. 팩토링 잔액이 큰 것이 문제가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외환위기는 팩토링 회사의 수익 구조를 일시에 허물어뜨렸다. 탄탄한 수익모델도 한 번에 넘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외환위기로 말미암아 대출을 받은 골프장들이 연쇄 부도를 맞는다. 어쨌든 동원그룹도 주력기업이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그러나 1998년 참치 어획고가 이례적으로 높았다. 한마디로 대풍이었다. 특히 1998년 4월 한 달 동안 동원의 참치 선망선들은 창사 이래 최대의 어획고를 올리는데, 그 어획고만 1만 2.000톤에 달했다.
1998년 6월 동원산업의 수익은 무려 전년도 마이너스 242억 원에서 플러스 318억 원으로 증가한다. 부채비율도 같은 기간 484퍼센트에서 198퍼센트로 급격히 떨어진다. 한마디로 회사의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적자의 수렁에서 벗어나 이익으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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