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파 · 인상여 열전(2)
조사(趙奢)는 본래 조나라에서 전답에 대한 조세 업무를 담당하던 관리였는데, 그 무렵 평원군의 집에서는 권세를 믿고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했다. 조사는 법에 따라 평원군의 집에서 일하는 집사 아홉 명을 죽였다. 이 소식을 들은 평원군은 크게 노하여 조사를 죽이고자 했다. 조사가 평원군에게 말했다.
“공은 조나라의 공자입니다. 그런데 공의 집에서 공적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국법은 무너질 것입니다. 국법이 무너지면 나라는 쇠약해질 것이고 나라가 쇠약해지면 제후들이 쳐들어올 것이고, 제후들이 쳐들어오면 조나라는 망하게 될 것입니다. 공께서도 어찌 부귀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반면 공과 같이 높은 분이 법이 정한 의무를 이행한다면 온 나라가 한마음이 될 것이고, 온 나라가 한마음이 되면 나라는 강해질 것입니다. 공은 대왕의 일족이니 누가 감히 공을 가벼이 여기겠습니까?”
이에 평원군은 조사를 현인이라 여기고 왕에게 추천했다. 왕은 그에게 나라의 조세를 관리하게 했는데 세금이 공평해지고 백성들은 부유해졌으며 국고가 가득 채워졌다.
그 무렵 진나라가 한나라를 치기 위해 군사를 조나라의 알여에 주둔시켰다. 그러자 조나라 왕이 염파를 불러 물었다.
“알여를 구할 수 있겠소?”
“길이 멀고 험하여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왕이 다시 악승을 불러 묻자 염파와 같은 대답을 했다. 왕은 다시 조사를 불러 물었다. 조사가 대답했다.
“그 길은 멀고 험한데다 좁기까지 합니다. 그곳에서 싸운다는 것은 쥐구멍 속에서 쥐 두 마리가 서로 싸우는 것과 같으니 용감한 쪽이 이길 것입니다.”
조나라 왕은 조사에게 군사를 내주어 알여를 구하도록 했다. 조사가 이끄는 군대가 한단을 떠나 30리쯤 이르렀을 때 조사는 군중에 엄중한 명을 내렸다.
“군사(軍事)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그때 진나라 군사는 서쪽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훈련하면서 내는 북소리와 함성소리가 무안의 기왓장이 다 흔들릴 정도였다. 이를 정탐한 조나라의 척후병 하나가 조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루 빨리 무안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자 조사는 즉시 그를 참했다. 조사는 방벽을 튼튼히 쌓고 28일 동안이나 머물면서 싸우지 않고 보루만 더욱 증축했다. 얼마 후 진나라 첩자 하나가 들어왔다가 잡혔지만 그를 잘 대접해서 돌려보냈다. 첩자가 돌아가 진나라 장수에게 보고하니 진나라 장수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도읍에서 고작 삼십 리 떨어진 곳에 주둔하여 싸우지 않고 보루만 쌓고 있으니 알려는 이미 조나라 땅이 아니로다.”
한편 진나라 첩자를 돌려보낸 조사는 병사들로 하여금 무거운 갑옷을 벗고 가벼운 차림으로 진나라 진영을 향해 행군시켰다. 1박 2일만에 목적지에 이르자 알여에서 50리 떨어진 곳에 활 잘 쏘는 자들을 주둔시켰다. 이 소식을 들은 진나라 군대는 군사들을 총 출동시켰다. 그때 조나라의 허력이란 병사가 군사에 대해 간할 것이 있다고 하자 조사가 그를 들라했다. 허력이 말했다.
“진나라 군사는 조나라의 대부대가 여기에 이른 줄을 모릅니다. 그들의 사기는 굉장히 높을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진을 튼튼히 치고 방비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패할 것입니다.”
조사가 말했다.
“그대는 군사에 관해 간했으니 죽음을 각오했으렷다?”
허력이 대답했다.
“군령에 따라 참형을 받겠나이다.”
조사가 말했다.
“한단으로 돌아가 명을 기다리라.”
그러자 이력이 다시 간했다.
“북산 꼭대기를 먼저 점령하는 쪽이 이길 것이고, 늦게 점령하는 쪽이 패할 것입니다.”
조사는 그의 말에 따라 즉시 만 명을 보내 북산을 점령하게 했다. 진나라 군사는 뒤늦게 도착해 북산을 차지하려 했으나 이미 빼앗긴 뒤였다. 조사는 군사를 몰아 진나라 군사를 습격했다. 진나라 군사는 알여의 포위망을 간신히 뚫고 뿔뿔이 달아났다. 이로써 조사는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조나라 혜문왕은 조사를 마복군에 봉하고 허력을 장군 다음 위치인 국위로 삼았다. 이로써 조사는 염파·인상여와 함께 같은 자리에 앉게 되었다.
세상은 염량세태가 아니던가
4년 후 조나라 혜문왕이 죽고 그의 아들 효성왕이 즉위했다. 효성왕 7년, 진나라와 조나라 군사가 장평에서 싸웠다. 당시 조사는 이미 죽었고 인상여는 병이 깊었다. 조나라 왕은 염파를 보내 진나라와 싸우게 했으나 거듭 패했다. 그러자 조나라 군사는 방벽을 튼튼히 쌓고 머물 뿐 나아가 싸우지 않았다. 진나라 군사가 여러 차례 공격했으나 염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나라 왕은 진나라 첩자가 퍼뜨린 말을 믿게 되었다.
“진나라가 두려워하는 건 오직 마복군 조사의 아들인 조괄이 장수가 되는 것 뿐이다.”
이에 조나라 왕은 염파 대신 조괄을 장수로 삼으려 했다. 그러자 인상여가 말했다.
“대왕께서 명성만 믿고 조괄을 등용하는 것은 거문고의 패를 아교로 붙여 놓고 연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조괄은 다만 아버지의 병서만 읽었을 뿐 상황에 적절리 대처할 줄을 모릅니다.”
조나라 왕은 그 말을 듣지 않고 끝내 조괄을 장수로 삼았다. 조괄은 어려서부터 병법을 배워 스스로 전략에 뛰어나다고 여겼다. 그는 아버지 조사와도 전술에 논한 적이 있었는데, 조사는 아들을 당해내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아들이 병법에 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조괄의 어머니가 그 까닭을 묻자 조사가 말했다.
“싸움이란 생사와 관계된 큰일인데 괄은 식은 죽 먹기로 여긴다오. 조나라가 괄을 장수로 쓰지 않으면 다행이나 장수로 쓰게 되면 녀석은 분명 조나라 군대를 망칠 것이오.”
조괄이 장수가 되어 떠나려고 하자 그의 어머니가 왕에게 글을 올렸다.
“괄을 장수로 쓰면 안 됩니다.”
“어째서 그러하오?”
조괄의 어머니가 대답했다.
“신첩이 조괄의 아버지에게 시집을 왔을 때 그는 장군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친히 먹여살리는 부하가 수십 명이었고, 친구가 수백 명이었습니다. 대왕과 종실에서 하사받은 재물은 모조리 병졸과 사대부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출장 명령을 받기라도 하면 집안일은 돌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괄은 장수가 되자마자 상석에 앉아 부하들의 인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를 존경하는 자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또한 대왕께서 하사하신 금과 비단은 집에 가져다 놓고 날마다 좋은 밭과 집을 사들이기에 바쁩니다. 대왕께서는 그의 아버지와 비교해 벌 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가짐이 이렇듯 다르니 대왕께서는 그를 장수로 삼지 말아 주십시오.“
그러나 왕은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았다.
“부인은 더 이상 말하지 마시오. 과인은 이미 결정을 한 바요.”
“대왕께서 기어이 그 애를 보내시겠다면 혹 그 애가 잘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저를 연좌하여 처벌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왕은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다.
염파 대신 장수로 부임한 조괄은 군령을 모조리 고치고 부하들도 바꾸었다. 이 소식을 들은 진나라 장수 백기는 기병을 보내 패주하는 척 했다. 또한 조나라 둔사의 식량 보급로를 찯나하여 조나라 군대를 둘로 갈라놓았다. 그러자 조나라 군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40일 동안이나 굶게 되었다. 조괄은 정예병을 데리고 나가 싸우다가 진나라 군사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 이로써 조괄의 군사 수십만 명이 진나라에 투항했는데 진나라 장수 백기는 그들을 모두 생매장했다. 이때 조나라가 잃은 군사는 무려 45만이나 되었다.
그 이듬해 진나라 군사는 조나라 도읍 한단을 포위했다. 한단은 1년 남짓 지나서야 초나라와 위나라의 지원을 받아 겨우 풀려났다. 조나라 왕은 앞서 조괄의 어머니가 한 말이 있었으므로 그녀에게 죄를 묻지 않았다.
한단이 포위에서 풀린 지 5년째가 되었을 때 연나라의 율복이 왕에게 말했다.
“조나라의 장정들은 모두 장평 싸움에서 죽고, 그들의 아이들은 아직 장성하지 않았습니다.”
연나라 왕은 그의 계책을 받아들여 군사를 일으켜 조나라를 공격했다. 조나라 왕은 염파를 보내 싸우게 했다. 염파는 호 땅에서 연나라 군사를 크게 물리치고 율복을 죽인 다음 연나라 도읍을 포위했다. 연나라가 다섯 개의 성을 바치며 화친을 청하자 조나라가 이를 받아들였다. 조나라 왕은 염파를 위문 땅에 신평군이라 부르고 임시로 재상에 임명했다.
앞서 염파가 장평에서 파면되어 권세를 잃고 돌아오자 그의 빈객들은 모두 떠나가 버렸다. 그가 다시 장군에 임명되자 빈객들이 또 모여들었다.
“모두 돌아가게.”
그러자 한 빈객이 말했다.
“상공께서는 아직도 모르십니까? 세상 사람들은 이해를 좇아 사귑니다. 따라서 상공께 권세가 있으면 따르고 권세가 없으면 떠납니다. 이는 자연스러운 이치인데 무엇을 원망하십니까?”
그로부터 6년 후, 조나라 왕은 염파를 시켜 위나라 번양을 치게 하여 함락시켰다. 조나라 효성왕이 죽자 그의 아들 도양왕이 즉위했다. 왕은 염파를 해임하고 악승을 장수로 삼았다. 염파는 화가 나서 악승을 공격하자 악승은 달아나고 염파 또한 위나라 수도 대량으로 달아났다. 그 이듬해 조나라 왕은 이목을 시켜 연나라를 치게 하여 무수와 방성을 함락했다.
염파는 대량에 오래 머물렀으나 위나라에서는 그를 등용하지 않았다. 그 무렵 조나라는 여러 차례 진나라의 공격을 받아 고통을 겪고 있었다. 조나라 왕은 염파를 다시 등용하고자 했고 염파 또한 조나라에 다시 등용되기를 바랐다. 이에 조나라 왕은 사자를 보내 염파를 장군으로 감을 만한지 살펴보게 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염파와 원수지간인 곽개가 사자에게 많은 뇌물을 주며 염파를 모함하게 했다. 조나라 사자가 염파를 만나자 염파는 사자 앞에서 한 끼에 한 말로 지은 밥과 고기 열 근을 먹고 갑옷을 입고 말 잔등에 뛰어올라 건장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사자는 조나랑 돌아와 이렇게 말했다.
“염 장군은 연세는 많지만 그 먹는 양이 대단합니다. 그러나 저와 함께 앉아 있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뒷간을 드나들었습니다.”
이에 왕은 염파가 늙었다고 여기고 부르지 않았다.
초나라 왕은 염파가 위나라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비밀리에 사자를 보내 그를 맞아들였다. 그러나 염파는 초나라 장수로 있으면서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조나라 군사를 지휘하고 싶다.”
결국 염파는 초나라 수춘에서 죽고 말았다.
태사공은 말한다.
죽음을 각오하면 반드시 용기가 생긴다. 죽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죽음을 대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인상여가 화씨벽을 들고 기둥을 노려보면서 진나라 왕의 좌우에 있는 자들에게 호통을 칠 때 기껏해야 죽음뿐이었다. 그러나 평범한 선비들은 두려워 감히 그러지 못한다. 인상여는 용기를 내어 그 이름을 적국에 떨쳤고,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겸손하게 처신하여 염파에게 양보했으니, 그 이름은 태산보다도 더 무겁다. 그는 지혜와 용기 두 가지를 겸비한 자라 할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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