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계책으로 적을 허를 찔러라
전단은 제나라 전씨 왕족의 먼 친척이다. 제나라 민왕 때 그는 도읍인 임치의 시연(시장관리)으로 일했는데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연나라 왕이 익의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제나라를 치게 하자 제나라 민왕은 거 땅으로 달아나 성을 지켰다. 연나라 군사들이 승승장구하며 제나라 성을 평정할 때 전단은 안평으로 달아났다. 전단은 집안사람들에게 일러 수레바퀴 축의 양 끝을 모조리 잘라버리고 그 끝을 철판으로 감싸게 했다. 얼마 후 연나라 군사가 안평을 공략하자 제나라 사람들은 앞 다투어 도망을 갔다. 그러나 수레바퀴 축의 영 끝이 부러져 수레가 부서지는 바람에 모두 연나라 포로가 되었다. 그러나 전단의 일가족만은 바퀴 축의 끝을 철판으로 감쌌기 때문에 무사히 동쪽의 즉묵으로 달아날 수 있었다.
연나라 군사는 제나라 성을 대부분 공략했지만 거와 즉묵만은 함락하지 못했다. 연나라 군사는 제나라 왕이 거 땅에 있다는 말을 듣고 온 힘을 다해 맹공격을 가했다. 그러나 제나라를 구하기 위해 초나라에서 온 요치가 거에서 민왕을 죽이고 성을 지키며 연나라의 공격을 막아냈다. 이로써 연나라는 몇 년이 지나도록 거를 공격하지 못하고 결국 동쪽으로 가서 즉묵을 포위했다. 이때 즉묵의 대부는 나가 싸우다가 패전하여 목숨을 잃었다. 이에 성안 사람들은 모두 전단을 추천하면서 말했다.
“안평 싸움에서 전단의 집안사람들은 수레바퀴 축 끝에 철판을 씌워 무사히 빠져나왔다. 이로 볼 때 그는 병법을 잘 다룰 것이다.”
이에 전단을 장군으로 삼고 즉묵 스스로 연나라의 공격을 막아냈다.
얼마 후 연나라에서는 소왕이 죽고 혜왕이 즉위했는데, 혜왕은 악의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 소문을 들은 전단은 연나라에 사람을 보내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
“제나라 왕은 이미 죽었고 연나라가 공격하지 못한 성은 둘뿐이다. 악의는 연나라 왕이 죽일까봐 돌아가지도 못하고 제나라를 친다는 구실로 남아 있는데, 사실은 제나라 병력과 연합하여 제나라 왕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다만 제나라 백성들이 아직 그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잠시 즉묵을 치지 않고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제나라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연나라에서 다른 장수를 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즉묵은 이내 끝장이 날 것이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연나라 왕은 기겁을 보내 악의와 바꾸었다. 악의는 결국 조나라로 갔고 연나라 백성들과 병사들은 그가 물러난 것에 대해 불평을 터뜨렸다.
전단은 성안 사람들에게 밥을 먹을 때마다 뜰에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라고 명했다. 그러자 새들이 모여들어 제물을 쪼아버렸다. 연나라 군사들이 이를 보고 이상하게 여겼다. 전단은 이런 말을 퍼뜨렸다.
“신선이 내려와 나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성안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신선의 화신이 나타나 나의 스승이 될 것이다.”
그러자 한 병사가 물었다.
“저도 스승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달아나려고 했다. 전단은 즉시 일어나 그를 불러들여 동쪽을 향해 앉히고는 스승으로 받들었다. 그러자 그 병사가 말했다.
“저는 장군을 속였습니다. 실은 무능한 자일뿐입니다.”
전단이 말했다.
“너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
그러고는 그를 스승으로 모신 후 군령을 내릴 때마다 스승의 뜻이라고 밝혔다. 전단은 또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연나라 군사가 포로로 잡은 제나라 군사의 코를 베어 맨 앞에 세우고 우리와 싸우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즉묵은 패하고 말 것이다.”
연나라 군사들은 이 소문을 듣고 전단이 말한 대로 했다. 그러자 항복한 제나라 군사들의 코가 무참히 잘리는 모습을 본 성안 사람들은 모두 분개하여 굳게 성을 지키면서 결코 포로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다시 전단은 첩자를 보내 이런 말을 퍼뜨렸다.
“나는 연나라 병사들이 성 밖 무덤을 파헤쳐 조상을 욕되게 할까 걱정이다. 이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섬뜩하다.”
이에 연나라 병사들이 성 밖 무덤을 모조리 파헤치고 시신을 불태웠다. 즉묵 사람들은 성벽 위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모두 눈물을 흘리며 함께 출전할 것을 요구했다.
전단은 병사들을 이끌고 나아갈 때가 되었다고 여기고는 몸소 판자와 삽을 들고 병사들과 함께 방어 시설을 구축했다. 또한 처첩들을 대오에 편입시키고 모든 음식물을 꺼내 병사들을 위로했다. 그러고는 정예 병사를 모두 매복시키고 노약자들과 여인들을 성벽 위에 세운 후, 연나라 군영에 사자를 보내 항복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연나라 군사들은 모두 만세를 불렀다.
전단은 또한 백성들에게 금 2만 4천 냥을 거두어 즉묵의 부호를 통해 연나라 장군에게 바치게 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즉묵은 곧 투항할 것이니 저의 집 재산과 처첩만은 빼앗지 말아 주옵소서.”
연나라 장군은 크게 기뻐하며 이를 승낙했다. 이 일로 연나라 군사들은 경계를 늦추었다.
전단은 성안에서 소 천여 마리를 거두어 빨간 비단에 오색 용 무늬를 그린 옷을 입히고 칼을 소뿔에 매단 다음 기름을 친 갈대를 소꼬리에 매어 놓았다. 한밤중이 되자 소꼬리에 불을 붙이고 미리 뚫어 놓은 수십 개의 성벽 구멍으로 소들을 내몬 뒤 장정 5천 명이 그 뒤를 따르게 했다. 소들은 꼬리가 뜨거워지자 미친 듯이 연나라 군영 쪽으로 뛰어들었다. 연나라 군사들이 보니 모두 용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에 부딪친 군사들은 모두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뒤따라온 5천의 장정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공격했다. 성안에서는 북을 치며 함성을 질렀는데 그 소리는 노약자와 여인들이 구리 기물을 두드리는 소리와 더불어 천지를 진동했다. 연나라 군사들은 이 모습을 보고 기겁하여 패주했다.
제나라 군사가 마침내 연나라 장군 기겁을 죽이자 연나라 군사들은 뿔뿔이 달아났다. 제나라 군사는 그 뒤를 바짝 추격했는데 그들이 지나는 곳의 성읍은 모두 연나라를 배반하고 전단에게 귀속했다. 제나라 군사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 승승장구한 반면, 연나라 군사는 연일 패전하여 마침내 하상까지 후퇴했다. 이로써 제나라는 70개 성을 모두 되찾았다. 제나라 군사는 거 땅으로 가 양왕을 맞아들여 임치로 모셨다. 양왕은 전단을 안평군에 봉했다.
태사공은 말한다.
군사를 부리는 방법으로는 정공법으로 맞서 싸우는 것과 허를 찌르는 것이 있다. 작전에 능한 자는 허를 찌르는 방법이 무궁무진하다. 맞서서 싸우는 것과 허를 찌르는 것을 적절히 섞으면 마치 처음과 끝이 없는 가락지와도 같다. 대체로 허를 찌르는 방법은 처음에는 처녀처럼 얌전하여 적들로 하여금 문을 열게 하고, 나중에는 도망치는 토끼처럼 날래져서 적들이 미처 대항하지 못하게 한다. 이는 전단의 용병법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요치가 제나라 민왕을 죽이자 거 땅 사람들이 민왕의 아들인 법장을 태사교의 집에서 찾아냈다. 법장은 그 집에서 장원에 물을 주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태사교의 딸이 그를 불쌍히 여겨 후히 대접했다. 후에 법장은 자신의 신분을 그녀에게 알려주었고, 둘은 서로 정을 통했다. 거 땅 사람들이 법장을 제나라 왕으로 모시고 연나라 군사를 물리치자 태사교의 딸은 왕후가 되었다. 그녀가 곧 군왕후이다.
연나라 군사가 처음 제나라에 들어왔을 때 화읍 사람인 왕촉이 현인이라는 말을 듣고 군중에 이렇게 명령을 내렸다.
“화읍 주변 30리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
이는 왕촉을 존중했기 때문이었는데, 얼마 후 연나라 장군이 사람을 보내 왕촉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나라 사람들은 당신의 인품을 높이 평가합니다. 나는 당신을 장군으로 삼고 1만 호의 땅에 봉하려 합니다.”
그러나 왕촉이 한사코 거절하자 연나라 장군이 말했다.
“당신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는 삼군을 거느리고 화읍을 도륙하겠소.”
왕촉이 말했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습니다. 저는 제나라 왕이 저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초야로 물러나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나라가 망하는데 살아서 뭘 하겠습니까. 게다가 오늘 또 무력에 굴복하여 연나라 장군이 된다면 걸왕을 도와 포학한 일을 저지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살아서 의롭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낫습니다.”
그러고는 나무에 목을 매 자결했다. 도망치던 제나라의 대부들이 이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왕촉은 평민이면서도 의를 위해 연나라를 섬기지 않았다. 하물며 벼슬자리에 있으면서 녹을 먹는 우리야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고는 서로 모여 거 땅으로 돌아가 민왕의 아들을 찾아 양왕으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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