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劍)으로 천하를 다툰 전국시대
춘추시대에는 제후들 간의 각축이 심했으면서도 패권을 잡은 제후들은 상대를 멸망시키려는 의도보다 공존을 추구하며 나라를 운영했다. 그러나 전국시대에는 먹고 먹히는 생존의 싸움이 치열했다.
춘추시대에는 예(禮)와 신(信)을 숭상하였으나 전국시대에는 그러하지 않았고, 춘추시대에는 주 왕실을 높였으나 전국시대에는 그러하지 않았다.
또 춘추시대에는 기제사를 중히 여겼으나 전국시대에는 그러하지 않았고, 춘추시대에는 가문을 중히 여기고 성과 씨족을 따졌으나 전국시대에는 그러하지 않았다. 춘추시대에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교제에 연회가 있고 시를 읊을 줄 아는 여유로움이 있었으나 전국시대에는 그러하지 않았다. 춘추시대에는 외교 차원에서 신임장이 있었으나 전국시대에는 그러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전국시대에는 오직 힘에 의해 나라 관계가 결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국시대에는 ‘전국칠웅(戰國七雄)’이라 불리는 일곱 나라가 서로 힘을 겨루었는데, 연나라, 제나라,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 초나라, 진나라가 그 주인공이다.
춘추시대로 접어들면서 남쪽의 강대국인 초나라에 대한 제후국의 대응이 있었다면 제나라는 전국시대가 시작되었을 때 그 주인이 강씨에서 전씨로 바뀌었다.
춘추시대 때부터 강국이었던 진나라는 전국시대 초기 효공 때에 이르러 상앙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등용함으로써 급속히 성장했다. 상앙은 전면적인 개혁 조치를 통해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부국강병을 도모했다. 소진의 유세를 들은 여섯 나라는 서로 연합하여 진나라에 맞섰는데, 그것이 이른바 합종책이다.
그러나 합종책은 오래 가지 못했다. 이는 여섯 나라의 이해관계가 서로 달랐기 때문인데, 이 때 나타난 사람이 소진과 동문수학을 했던 장의였다. 장의는 진나라 혜문왕에게 등용되어 재상이 되었다. 그는 제후국을 돌며 연횡책을 설파했다. 연횡책이란 모든 제후국이 진나라와 횡으로 화친을 맺어 평화를 유지하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 정책 또한 장의가 재상에서 물러나자 흐지부지하게 되었다.
한편, 진나라 소왕은 위나라에서 범수라는 인물이 화를 피해 도망을 오자 그를 중용했다. 범수는 먼 나라와는 화친하고 가까운 나라는 공격하는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전략을 내세워 중원을 잠식해 갔다. 진나라는 이 정책을 국가의 기본 정책으로 삼았는데, 진나라 소왕은 천하통일의 기반을 닦았다. 당시 명장으로 유명한 백기는 장평전투에서 조나라의 40만 대군을 몰살했다. 천하는 시나브로 진나라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형국이 되어갔다.
소왕이 세상을 떠난 지 4년 후 시황제가 등극했다. 그는 등극 후 혼란과 파쟁으로 점철된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천하를 통일했다. 중국 역사상 최초로 통일국가가 된 셈이었다.
장의열전(張儀列傳)(1)
정치인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모이고 헤어지는 것을 ‘합종연횡’이라 하나니
장의는 위나라 사람이다. 처음에는 소진과 함께 귀곡 선생을 모시고 종횡술을 배웠는데, 소진은 장의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다. 공부를 마친 장의는 유세를 하고자 제후들을 찾아갔다. 장의는 초나라 재상과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었는데, 얼마 후 초나라 재상이 귀한 벽옥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재상집을 들락거리는 빈객들이 장의를 의심하며 이렇게 말했다.
“장의는 가난하고 행실이 좋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그자가 벽옥을 훔쳤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장의를 묶어 수백 번 매질을 가했다. 그러나 장의는 끝까지 벽옥을 가져가지 않았다고 말하므로 풀어주었다. 다 죽어가는 모습을 본 장의의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아! 당신이 책을 읽고 유세를 하지 않았던들 이런 수모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장의는 이렇게 아내에게 물었다.
“내 혀가 아직 붙어있는지 좀 봐주시오.”
장의의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혀가 붙어 있구려.”
장의가 말했다.
“그럼 되었소.”
그 무렵 소진은 조나라 왕을 설득하여 합종할 것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진나라가 제후들을 공격하여 제후들이 합종의 맹약을 깨트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소진은 진나라가 제후들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적당한 인물을 진나라로 보내기로 했다. 그는 장의에게 사자를 보내 은근히 충동질을 했다.
“그대는 지난날 소진과 사이가 좋았는데, 지금 소진은 요직에 올라 정치를 하고 있소. 그런데 어찌하여 그를 찾아가 바라는 바를 부탁하지 않소?”
장의는 조나라로 가서 소진에게 만나줄 것을 청했다. 소진은 일하는 하인하게 일러 장의를 며칠 동안 들여보내지 말 것을 지시했다. 며칠 후 장의는 소진을 만날 수 있었다. 소진은 장의를 대청 아래에 앉게 하고는 마부나 첩이 먹는 음식을 주며 꾸짖었다.
“자네처럼 재능이 있는 자가 이토록 곤궁하니 보기가 민망스럽군. 내가 자네를 추천하여 부귀를 누리게 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자네를 거두어서 쓸 만한 인물은 못되네.”
소진은 장의의 부탁을 거절하고 돌려보냈다. 장의는 옛 친구에게 도움을 받을까 해서 찾아간 것인데 도리어 욕만 얻어먹고 되돌아오게 되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다른 제후들은 섬길만한 사람이 없고 오직 진나라만이 조나라를 괴롭힐 수 있다고 생각되어 마침내 진나라로 들어갔다. 장의가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소진이 가신에게 말했다.
“장의는 천하의 현명한 사람이네. 나 같은 사람은 도저히 그에게 미치지 못하네. 나는 운이 좋아서 한걸음 앞서 등용이 되었지만 진나라의 권력을 휘두를 사람은 장의뿐이네. 그러나 그는 가난하여 벼슬길에 나아갈 인연이 없었네. 나는 그가 작은 이익에 만족하여 큰 뜻을 놓칠까 염려되어 짐짓 그를 부른 뒤 망신을 주었던 것이네. 그대는 나를 대신해서 아무도 모르게 그를 받들도록 하게.”
그리고는 조나라 왕에게 아뢰어 황금과 폐백과 거마를 내어 주어 몰래 장의를 따르도록 했다. 가신은 장의를 가까이 하면서 왕에게 받은 물질로 편의를 대주면서도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란 말은 하지 않았다. 장의는 가신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진나라 혜왕을 알현하게 되었다. 혜왕은 장의를 객경으로 예우하고 그와 함께 제후들을 공격할 계책을 꾸몄다.
소진은 가신이 하직하고 곁을 떠나려 하자 깜짝 놀라 말했다.
“그대의 도움을 받아 네가 큰 벼슬을 하게 되었고 이제부터 그대의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데 무슨 일로 떠나려 하는 것이오?”
가신이 대답했다.
“선생을 알아본 사람은 제가 아니라 소군(蘇君)이십니다. 소군께서는 진나라가 조나라를 쳐 합종의 맹약을 깨뜨릴까 걱정하십니다. 그분은 선생이 아니면 진나라의 권력을 잡을 만한 자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짐짓 선생을 화나게 한 뒤 저를 보내 남몰래 선생을 돕도록 한 것입니다. 이제 선생께서 등용되셨으니 저는 돌아가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장의가 탄식하며 말했다.
“아! 이 또한 내가 배운 술책 중에 있던 것인데 미처 깨닫지 못했구려. 나는 분명 소진에 미치지 못하오. 이제 갓 등용된 내가 어찌 조나라를 칠 계책을 세우겠소. 돌아가거든 나를 대신해 소군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 주시오, 소군이 살아 있는 한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며, 무슨 일을 꾸밀 수 있겠는가 하고 말이오.”
장의는 진나라 재상이 되자 초나라 재상에게 격문을 써서 보냈다.
“지난 날 그대와 술을 마셨을 때, 내가 그대의 벽옥을 훔치지 않았는데도 그대는 내게 매질을 가했다. 그대는 그대의 나라를 잘 지키라. 나는 그대의 성을 빼앗을 것이다.”
싸울 때는 명분과 실속을 모두 얻은 후 시작해야 한다
그 무렵 저(苴)나라와 촉(蜀)나라가 서로 싸우다가 각기 진나라에 위급함을 알리고 도움을 청했다. 진나라 혜왕은 군사를 내어 촉나라를 치려고 했으나 길이 좁고 험해 행군하기가 어려웠다. 그때 한나라가 진나라로 쳐들어왔다. 진나라는 한나라를 먼저 친 다음 촉나라를 치면 불리할 것 같고, 촉나라를 먼저 치면 한나라가 진나라의 어려움을 알고 기습해 올까 염려되어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진나라 장수 사마착과 장의는 혜왕 앞에서 논쟁을 벌였다. 사마착이 촉나라를 먼저 칠 것을 주장하자 장의는 한나라를 먼저 치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다. 혜왕이 그 까닭을 묻자 장의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먼저 위나라, 초나라와 가깝게 지내십시오. 그런 뒤 군사를 삼천으로 내려 보내 십곡 입구를 막고 둔류로 가는 길을 차단하게 하십시오. 또한 위나라 군사들에게는 남양으로 가는 길을 차단하게 하시고, 초나라 군사들에게는 남정으로 쳐들어가게 하십시오. 우리 진나라는 신성과 의양을 친 뒤 동주와 서주 교외로 나아가 주나라 왕의 죄를 묻고, 다시 초나라와 위나라 땅을 점령합니다. 그리되면 주나라는 스스로 구원받지 못할 것을 알고 대대로 물려 내려오던 구정을 바치고 항복할 것입니다. 구정을 인수받아 천자의 권위를 확인한 뒤 토지와 호적을 조사하고 천하를 호령하면 따르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니, 이것이 곧 왕업을 이루는 것입니다.
저 촉나라는 서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오랑캐 무리인즉 촉나라를 치면 군사와 백성을 지치게 할 뿐 아니라 아무런 명예도 얻지 못합니다. 또한 땅을 얻는다 해도 아무런 이익이 되질 않습니다. 지금 삼천과 주나라 왕실이야말로 천하의 조정이자 저잣거리인데, 왕께서는 이를 다투지 않고 오히려 오랑캐 땅을 다투시니 왕업과는 거리가 먼 일입니다.“
장의의 말이 끝나자 사마착이 반박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신은 ‘나라를 부강하게 하려면 땅을 넓혀야 하고, 군사를 강하게 하려면 백성들을 부유하게 해야 하며, 군왕의 도를 올바르게 행하려면 베풀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면 왕업의 성취는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법입니다.
지금 왕의 땅은 협소하고 백성들은 가난한 까닭에 신은 우선 쉬운 것부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저 촉나라는 서쪽에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로 오랑캐 중 으뜸이며, 하나라의 걸왕과 상나라의 주왕에 비견할 만큼 난폭한 행동을 일삼았습니다. 한 나라를 굴복시켰다 해서 천하가 이를 난폭하다 하지 않을 것이고, 서쪽의 이익을 모두 얻었다 해서 천하가 이를 탐욕스럽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는 명분과 실속을 동시에 얻는 일입니다. 또한 포악함을 그치게 했다는 명분도 얻을 것입니다.
반면 지금 한나라를 치고 주나라 왕의 지위를 빼앗는다면 나쁜 이름만 남길 뿐 반드시 이익이 된다고 볼 수 없습니다. 게다가 불의라는 이름을 들어가면서까지 천하가 원하지 않는 곳을 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주나라는 천하의 종실이고 제나라는 한나라의 동맹국입니다. 주나라가 구정을 잃고 한나라가 삼천을 잃을 것을 스스로 안다면, 두 나라는 서로 힘을 합쳐 계책을 세울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나라와 조나라를 통해 초나라와 위나라에 도움을 청할 것인즉, 구정이 초나라로 넘어가고 땅이 위나라로 넘어가는 것을 왕께서는 막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곧 신이 위험하다고 하는 바입니다. 촉나라를 치는 것보다 더 나은 방책을 없는 줄로 압니다.“
혜왕이 말했다.
“좋소. 그대의 의견대로 하겠소,”
혜왕은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촉나라를 치고 그 땅을 차지했다. 그리고는 촉나라 왕의 직위를 촉후라 낮추어 부르고 진장을 촉나라의 재상으로 삼았다. 촉나라가 진나라에 예속되자 진나라는 더욱 부강해져 제후들을 경시했다.
진나라 혜왕 10년이 진나라는 공자 화(華)와 장의에게 명하여 위나라 땅인 포양을 에워싸고 항복시켰다. 이때 장의는 포양을 위나라에게 돌려주고 공자 요(繇)를 위나라에 볼모로 보냈다. 장의가 위나라 왕에게 말했다.
“진나라 왕이 위나라를 위하는 것이 이렇게도 후합니다. 위나라도 이에 보답하는 것이 있어야 되지 않겠소?”
그러자 위나라는 상군과 소량 땅을 진나라에게 바쳐 보답을 했다. 혜왕은 장의를 재상으로 삼고 소량을 하양이라 고쳐 불렀다. 재상이 된 장의는 4년이 지나 공(公)이라 칭하였던 진 혜왕을 왕이라 칭했다. 그로부터 1년 후 장의는 진나라의 장수가 되어 위나라 섬 땅을 취했다. 그리고 성군에 성을 쌓았다. 다시 2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 장의는 사신이 되어 제나라와 초나라의 재상과 설상에서 회담을 했다.
그 후 진나라의 재상에서 물러난 그는, 위나라 재상에 올라 진나라를 위해 일을 꾀했다. 그는 위나라로 하여금 진나라를 섬기게 함으로써 제후들이 그것을 본받게 하려 했다. 그러나 위나라 왕은 장의의 뜻을 거절했다. 이에 노한 진나라 왕은 위나라의 곡옥과 평주를 쳐서 차지하는 한편, 장의에게는 더욱 후한 대우를 비밀리에 해주었다. 장의는 진나라에 들어가 보고할 만한 공적이 없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장의가 위나라에 머문 지 4년이 되었을 때 위나라 양왕이 죽고 애왕이 즉위했다. 장의는 다시 애왕을 설득했으나 애왕 역시 장의의 뜻을 거절했다. 이에 장의는 몰래 진나라에 알려 위나라를 치게 했는데, 결국 위나라는 진나라와의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이듬해에는 제나라가 다시 쳐들어와 위나라 군사를 관진에서 패배시켰다. 진나라는 다시 위나라를 치기 위해 먼저 한나라 장수 신차의 군대를 패배시키고 8만 명의 목을 잘랐다. 이 일로 제후들은 크게 놀라워하며 두려움을 가졌다. 장의는 다시 위나라 왕에게 말했다.
“위나라는 사방 천 리가 되지 못하고 병사는 30만을 넘지 않습니다. 땅은 사방이 평탄하고 제후들의 나라와 이어지는 길은 산과 강이 가로막고 있지 않아 사방팔방 열려 있습니다. 한나라의 정 땅에서 위나라 도읍인 대량까지 이르는 2백여 리 길은 수레와 사람이 달려도 쉽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국경을 지키는 군사는 10만이 넘어야 합니다. 위나라의 지세는 참으로 싸우기에 알맞은 곳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사분오열의 태세라고 하는 것입니다.
본디 제후들이 합종하려고 하는 것은 사직을 안전하게 보전하고 군주를 높이며 군대를 강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에 합종론자들은 천하의 제후들을 하나로 묶어 맹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부모에게서 난 두 형제간에도 재산을 두고 다투듯이 사기를 일삼는 소진의 계책을 제아무리 믿는다 해도 성공하지 못할 것은 뻔합니다.
왕의 이해득실을 따져볼 때 진나라를 섬기는 것보다 더 나은 계책은 없습니다. 진나라를 섬긴다면 초나라와 한나라는 감히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초나라와 한나라로 인한 걱정이 없어지면 왕께서는 베개를 높이 베고 누울 수 있고, 나라에는 근심이 사라질 것입니다.
진나라가 약화시키려고 하는 나라는 오직 초나라뿐이며, 초나라를 약화시킬 수 있는 나라는 위나라 뿐입니다. 초나라는 부강한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알갱이가 없으며 군사는 많으나 쉬이 달아나는 바람에 굳게 맞서 싸우지 못합니다. 위나라 군사를 모두 동원하여 남쪽으로 초나라를 친다면 이길 것은 뻔합니다. 초나라 땅을 떼어 위나라에게 보태고 초나라 땅을 갈라 진나라에게 돌려준다면 화를 바깥으로 돌려 나라를 보전하는 것이니 참으로 좋은 계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왕께서는 만약 신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진나라는 동쪽으로 위나라를 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진나라를 섬기려 해도 이미 때를 놓쳐버린 것이 됩니다.
신은 ‘깃털도 많이 쌓이면 배를 가라앉힐 수 있고, 가벼운 물건도 많이 실으면 수레바퀴의 축이 부러지며, 뭇 사람의 입에 걸리면 쇳덩이도 녹고, 모두 헐뜯으면 뼈조차도 부서진다’는 말을 들은 바 있습니다. 왕께서는 계책을 신중히 마련하시기 바랍니다. 신은 잠시 휴가를 얻어 위나라를 떠나려 합니다.“
결국 애왕은 합종의 맹약을 깨고 장의를 통해 진나라와 화친했다. 장의는 진나라로 돌아가 다시 재상의 자리에 올랐는데, 3년 후 위나라가 다시 진나라를 배반하고 합종에 가담했다. 그러자 진나라는 위나라를 쳐 곡옥을 빼앗았다. 이듬해 위나라는 다시 진나라를 섬기기 시작했다.
진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하려고 했을 때 제나라와 초나라가 서로 합종을 했다. 이에 장의는 초나라로 갔다. 초나라 희왕은 장의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좋은 숙소를 마련한 후 몸소 그를 안내했다.
“이렇게 먼 누추한 곳까지 와서 무엇을 가르쳐 주고지 그대는 왔는가?”
장의가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진실로 신의 말씀을 받아들여 관문을 닫아걸고 제나라와 합종의 맹약을 깬다면 신은 상과어 땅 6백 리를 왕께 바치고, 진나라의 왕녀를 왕의 첩으로 바칠 것입니다. 진나라와 초나라가 서로 사돈을 맺는다면 오래토록 형제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는 북쪽으로는 제나라를 쇠약하게 만들고 서쪽으로는 진나라를 이롭게 하는 것으로 이보다 더 좋은 계책은 없을 것입니다.”
초나라 왕은 크게 기뻐하며 이를 받아들였다. 신하들은 모두 경하했으나 유독 전진만이 홀로 슬퍼했다. 초나라 왕이 노하며 말했다.
“과인은 군사를 일으키지도 않고 6백 리 땅을 얻게 되었고, 이 사실을 모든 신하들이 경하 드리고 있는데 어찌 그대만 혼자서 슬퍼하는가?”
“신이 보기에는 상과어 땅을 취하기도 전에 진나라와 제나라는 연합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 화는 반드시 초나라에게까지 미칠 것입니다.”
초나라 왕이 물었다.
“어찌하여 그렇게 된다는 말이오?”
“진나라가 초나라를 중시하는 것은 초나라와 제나라가 가깝게 지내기 때문입니다. 지금 관문을 닫아걸고 제나라와 합종을 끊어버린다면 초나라는 고립되고 말 것입니다. 진나라가 어찌 고립된 나라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6백 리나 되는 땅을 주겠습니까? 장의는 진나라로 돌아가면 왕과 함께 약속한 일을 저버릴 게 분명합니다. 이는 북쪽으로는 제나라와의 친교를 끊는 일이요, 서쪽으로는 진나라에서 화를 불러오는 일입니다. 그리되면 두 나라의 군대가 틀림없이 함께 쳐들어올 것입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제나라와는 겉으로 단절하는 척 하면서 은밀히 손을 잡으시고, 장의에게는 사람을 딸려 보내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진나라가 땅을 주면 그때 가서 제나라와 친교를 끊어도 늦지 않습니다. 만일 땅을 주지 않는다면 은밀히 제나라와 내통한 바가 있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초나라 왕이 말했다.
“진진은 입을 다물고 과인이 땅을 얻는 것을 기다리기나 하시오.”
그리고는 장의에게 재상의 인수를 주고 후한 예물도 하사했다. 또한 관문을 패하여 제나라와의 맹약을 끊고 장군 한 명을 장의에게 딸려 보냈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송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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