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는 자장면이 없다고 흔히들 얘기한다. 그것은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먹기는 하지만, 자장면은 중국산이 아니라 우리의 음식이다 하는, 자장면에 대한 애착심의 발로라고 나는 생각한다. 중국에 가 보기 전까지는 나도 중국에는 자장면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재로 가 보니 자장면은 중국에서 아주 흔해 빠진 음식 가운데 하나였다. 한자로 쓰면 작장면(炸醬麵), 중국 발음으로는 자장면이다. 물론 맛이나 모양은 우리 자장면과 많이 달라서, 어떤 지방에서는 면 위에 짠지만 몇 개 얹은 것을 자장면이라고 내놓기도 한다. 그렇지만 장과 야채를 같이 볶아서 면 위에 얹는다는 기본 개념은 우리 자장면과 중국의 자장면이 다를 게 없다. 특히 사천(四川)의 성도(省都) 청뚜(成都)에서 먹은 자장면은 매콤한 맛(사천 요리는 원래 매운맛이 특징이다)이 더해져 셋이 먹다가 나만 빼놓고 둘이 죽어도 모를 정도로 기가 막혔다. 내가 먹어 본 자장면 가운데 단연 최고였다.
중국의 요리 방법은 마흔여덟 가지나 된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아홉 가지로 나뉜다. 반차이는 무친 요리, 차오차이는 볶은 요리, 자차이는 튀긴 요리, 리우차이는 오향을 넣은 소금물이나 간장에 조린 요리, 웨이차이는 곤 요리, 카오차이는 유명한 북경 오리 카오야처럼 불에 직접 구운 요리를 가리킨다. 또 정차이는 찐 요리, 엔차이는 절인 요리, 마지막으로 탕차이는 국물 있는 요리를 뜻한다. ‘차이’는 채소를 뜻하기도 하지만, 이처럼 요리를 뜻하는 말로도 많이 쓰인다. 아홉 가지에 속하지는 않지만 고려(高麗: 중국말로는 가오리)라는 요리도 있다. 고려는 녹말가루와 계란 흰자를 섞은 r서을 재료의 겉에 입혀 튀긴 요리를 가리킨다. 먼 옛날 고구려나 고려에서 전해진 요리법인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의 아홉 가지 요리법은 우리의 무침, 볶음, 튀김, 조림, 곰, 구이, 찜, 절임, 국(또는 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중국에 있는 것은 우리한테도 다 있다는 얘기다. 굳이 이렇게 중국과 우리의 요리법을 비교하는 것은, 중국은 음식 문화가 발달한 요리천국이라고들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와 별다른 점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신토불이(身土不二)가 맞는 말이라면 식토불이(食土不二)라는 말도 성립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음식은 다른 무엇보다도 더 땅과 깊은 관계에 있는 것이다. 중국의 식문화(食文化)가 발달했다면 그것은 땅이 넓기 때문에 그만큼 다양한 음식 재료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 음식 문화의 다채로움을 이야기할 때 흔히 ‘날아다니는 것은 비행기, 헤엄치는 것은 잠수함, 네 발 달린 것은 책상만 빼고 다 먹는다’고 하는데, 그 말은 뒤집어 보면 아무 것이나 닥치는 대로 가리지 않고 입으로 가져가야 할 만큼 중국 민중의 궁핍의 역사가 깊었음을 입증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중국 요리를 강의하려는 것은 아니니 중국 이야기는 이만 접어야겠다. 요리나 조리 방법을 나타내는 여러 가지 말들을 알아보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인데 변죽만 울리고 있었던 것 같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앞에서 얘기한 아홉 가지 요리법, 즉 무침, 볶음, 튀김, 조림, 곰, 구이, 찜, 절임, 국 중에서 국을 뺀 나머지는 모두 ‘무치다-무침’ ‘볶다-볶음’ 식으로 움직씨에서 이름씨 꼴로 바뀐 말들이다. 아홉 가지에 속하지는 않지만 데침과 부침도 마찬가지다. 끓는 물에 넣어서 살짝 익히는 것을 ‘데친다’고 하는데, 누구를 단단히 꾸짖어 풀이 죽게 만드는 것도 ‘데친다’고 한다. 부침은 부침개나 지짐이라고 하는데, 지짐이는 두 가지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국물이 적고 간이 좀 찌개 끓인 음식도 지짐이라고 하고, 지짐질해서 만든 음식도 지짐이라고 하는데, 지짐질해서 만든 음식을 뜻하는 지짐이는 부침이나 부침개와 같은 뜻이다. 그래서 지짐질을 부침질이나 부침개질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버무리와 겉절이는 특이하게 어간(語幹)이 그대로 음식 이름이 된 경우다. 여러 가지를 한데에 뒤섞는 것을 ‘버무린다’고 하고, 버무려서 만든 음식을 (짬뽕이 아니라) 버무리라고 한다. 겉절이는 ‘겉절이다’라는 움직씨에서 나온 말로 ‘겉만 절인 것’이라는 뜻이다. ‘절이다’는 ‘절게 하다’라는 뜻이고 ‘절다’는 ‘푸성귀나 생선 같은 음식 재료에 짠맛이나 신맛, 단맛 따위가 배어들다’라는 뜻이다. 물론 ‘때에 절었다’ ‘술에 절어 산다’고 할 때의 ‘절다’는 다른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조리다’는 ‘좁게 하다’라는 뜻의 움직씨 ‘졸이다’가 변형된 것이다. ‘졸다’는 ‘줄다’의 작은말로, 찌개나 국 같은 것의 물이 증발하여 분량이 적어진 것을 가리켜 ‘졸았다’고 한다. 어떤 위험적인 대상 앞에서 겁을 먹거나 기를 펴지 못하는 상태도 ‘졸았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졸았다’보다는 ‘쫄았다’ 쪽이 훨씬 더 많이 쓰이는 것 같다. 한 시절을 들었다 놨던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최민수의 유명한 대사 “나 떨고 있나”를 “나 쫄았니”로 바꿨다면 분위기가 어떻게 되었을까.
‘달이다’는 ‘닳다’에서 비롯된 말이다. ‘닳게 하다’라는 뜻의 ‘닳이다’가 ‘달히다’로, ‘달히다’가 다시 ‘달이다’로 변화한 것이다. 한약 시장으로 이름난 경동시장에 가서 보면 간판 같은 데에서 ‘한약 다림’이라는 문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조리다’처럼 ‘달이다’도 언젠가는 ‘다리다’로 바뀌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두부나 묵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은 ‘앗는다’고 하고, 물기가 조금 있는 찻잎 따위를 물을 더하지 않고 타지 않을 정도로 볶아서 익히는 것은 ‘덖는다’고 한다. 튀라는 이상한 낱말은 닭이나 잡은 짐승을 끓는 물에 잠깐 넣었다가 꺼내어 털을 뽑는 일을 가리키는데, 튀를 하게 되면 털이 튄다고 해서 튀라고 했을까. 털이 뭐든지 끓는 물방울이 뭐든지 튀기는 튀니까 튀라고 했을 것이다. 하도 튀 자를 많이 쓰니까 그만 내 침이 튄다.
기억해 둘 만한 도사리들
덖다 : 물기가 조금 있는 찻잎 따위를 물을 더하지 않고 타지 않을 정도로 볶아서 익히다.
버무리 : 여러 가지를 한데 뒤섞어 버무려서 만든 음식
튀 : 닭이나 잡은 짐승을 끓는 물에 잠깐 넣었다가 꺼내어 털을 뽑는 일.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