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초선일지 – 제 90호
2013년 08월 02일
황 주 홍(민주당, 전남 장흥강진영암)
[황주홍 칼럼] 정답은 오직 국민이다
한국 정당 역사상 처음으로 당의 개별 정책에 관한 당원투표(7월20일~24일)가 실시되었다. 여기에서 민주당의 당원들은 67.7%의 압도적 다수 의견으로 기초단위 정당공천제 폐지를 새로운 당론으로 확정시켰다. 모처럼 민주당은 국민여망에 부응했다.
솔직히, 정당공천제 폐지를 이미 대선공약으로 내세웠음에도, 찬반검토위원회를구성하고, 의원총회에서 찬반토론을 벌이고, 최고회의 의결을 거친 뒤, 전(全)당원투표까지 할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당내 절대 다수 국회의원들의 폐지 반대압력을 우회하고 무마해가기 위한 최소한의 절차와 수순이었다는 점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수 국민들의 눈에는 이런 절차들이 대선 때의 자기 공약을 뒤집기 위한 민주당의 상투적 꼼수로 보여졌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마지막 순간에 당원투표로 ‘안타’를 때렸지만, 그 이전까지의 절차와 수순들은 득점행보라기보다는 실점행보였음이 분명하다. 만약, 전당원투표에서 공천제 찬성이 다수로 나왔다면 어찌되었을까. 국민들은 우리를 어떻게 보았을 것인가. 앞이 캄캄해질 수밖에 없는 상상이다.
아무튼 이번 당원투표는 그 시행 자체가 바람직한 일이었고, 그 결과가 국민여론과 일치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 앞으로 민주당은 이 폐지 당론을 흔들림없이 지키고 실천해가야 한다. 흔히 당론에는 강제적(또는 구속적) 당론과 권고적 당론이 있다고들 얘기한다. 지난번 NLL관련 국가기록원 문서 열람 국회 표결(7월 2일)을 앞두고 민주당은 열람을 강제적 당론으로 결정한 바 있었다. 강제적 당론이었지만 표결시 당론을 따르지 않고 반대했던 의원들도 몇 명 있었다. 이때 지도부가 한 일은 단순한 서면 경고 그 뿐이었다. 이번 정당공천 폐지 당론은 그 같은 수준의 강제적 당론을 훨씬 뛰어넘는 것으로 봐야 한다. 통상적인 강제적 당론이 최고회의나 당무회의 또는 의원총회 등의 결의를 거치는 것인 반면, 이번 당론은 전체 당원투표(말하자면, 당원총회)를 통해서 확정되었기 때문에 그 효력과 구속력이 전혀 다른 것이다.
비유하자면, 국회에서 과반 찬성으로 통과시킨 법률의 효력과 국민투표로 확정짓는 헌법의 효력이 판이한 것과 같은 이치이겠다. 이번 전당원투표에 의해 결정된 당론은 신성불가침적 당론인 셈이다. 전체당원의사로 정해진 이 당론에 대해서 반대하거나 거부하는 일은 스스로 민주당 구성원임을 포기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마땅히 상응하는 엄중한 책임추궁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전당원투표제는 유명무실해지고, 당의 존재가치는 소극(笑劇)이 되고 만다.
긴 말이 필요 없다. 기초단위 정당공천제는 벌써 오래전에 폐기되었어야할 악법이자 반국민적 제도다. 지난 10여 년 동안 전국민의 60~70%가 한결같이 폐지를 요구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에 의해서 현행법은 이미 ‘반국민적’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이미 ‘악법’ 이었다.
이번 정당공천제 폐지 논란을 통해서 국민의 의사(민성 또는 민심)야말로 불가역적이며 최종평결 그 자체임을 우리 정치권이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일찍이 장 자크 루소는, 개인의견들이 하나의 전체로서 총화되면 공동체적 공익을 추구하는 보편의견(general will)이 되며, 이 의견에는 오류가 없다고 얘기한 바 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떼어놓고 보면 무지하고 이기적이고 부화뇌동하는 것 같지만, 그 개별 국민들이 공동체적 연대감으로 하나를 이루면서 표출하는 의사는 늘 정당하고 현명하다는 것이다. 이 기본인식이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 근본 가정이 동요하거나 부정되면 민주주의는 그대로 존립 위기를 맞는다.
비극적이게도, 우리는 국민(여론)을 가볍게 보거나 무시하는 듯한 정치권 일각의 언행을 아직도 빈번히 경험한다. 국회와 중앙당 안팎으로부터 왕왕 “국민들이 잘 몰라서 그런다, 국민들이 반대한다고 안 할 수 없다, 실상을 알면 국민들 생각도 바뀔 거다”라는 따위의 ‘반국민적’ 얘기들을 접한다.
다시 적는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은 오답일지 몰라도, 하나의 전체로서의 국민은 정답이다. 유일한 정답이다. 항상 정답이다. 이 나라 기본법인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최고위 ‘헌법기관’은 오직 국민뿐이다.
다시는, 국민 여론을 무찌르려 하거나 국민 여망을 일축하려는 일이 한국 정치권에서 발생하지 말았으면 하는 희망을 꿈꾼다. 이번 정당공천제 폐지 논란을 통해 ‘국민은 틀릴 리가 없지만, 비록 틀렸을지라도 국민은 옳다’는 이 민주주의의 금과옥조를 한국 정치권이 확실하게 받아들이는 마지막 계기일 수 있다면 이번 논란은 무의미하지 않다.
☆위의 글은 (7월 31일) 인터넷 신문인 『이데일리』에 「황주홍 칼럼」으로 게재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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