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은 지혜 때문에 도는 희미해진다.
사람의 말이란 입만 벌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말에는 뜻이 있다. 말을 하고 있지만 말하는 뜻이 분명하지 않다면 과연 말을 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제 멋대로 지껄이는 말이 병아리 짹짹 거리는 울음소리와 다르다고 하는데 과연 구분할 수 있을까?
도는 어디에 숨어 있기에 진짜와 가짜가 있는가?
참된 말은 어디에 숨어 있기에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가? 천하에 옳고 그름은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맞는 것을 구하는 것이고, 그들을 배척하는 것은 그릇됨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불편한 것들을 배척하는 것이다.
얕은 지혜 때문에 도는 희미해지고 찬란한 말솜씨 때문에 참된 말은 숨어버린다. 유가와 묵가가 서로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있다. 유가가 옳다고 하면 묵가가 그르다고 하고 , 또 유가가 그르다고 하면 묵가가 옳다고 한다. 이 사람이 옳다고 하는 것을 저 사람이 그르다고 하려면 무엇보다도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꿰뚫어보는 밝은 지혜가 필요하다.
사물에는 저것 아닌 것이 없고 동시에 이것 아닌 것이 없다. 저편에서 보면 보이지 않으나 이쪽에서 보면 안다. 그러므로 저것은 이것 때문에 생겨나고 이것은 저것 때문에 생겨난다. 다시 말해서 이것과 저것은 상대적으로 생겨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상대적인 것은 이것과 저것으로 구분 되는 것 같으나 내용을 알고 보면 결코 구분 되지 않는다. 삶과 죽음, 옳은 것과 그릇된 것,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등의 관계도 마찬 가지다. 모든 사물은 서로 의존 대립과 동시에 배척된다. 그러므로 성인은 이것이냐 저것이냐에 속박됨이 없이 생성 변화하는 자연에 순응할 뿐이다. 이것은 어떤 그 무엇에 근거한 판단임에 틀림없으나 이것과 저것은 상대적이 아니며 양자는 동시에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하다. 즉 양자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나와 다른 것의 대립을 해소 시키려면 무엇보다도 개별적이 존재를 초월하여 도추(道樞)의 경지에 이르게 해야 한다. 즉 옳고 그른 것에 매달려서 싸우지 말고, 옳고 그른 것을 만들어내는 도의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이것은 여닫이문을 움직이는 돌쩌귀와 같은 이치다.
돌쩌귀를 보자. 여닫이문은 돌쩌귀를 중심으로 해서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끊임없이 열리고 닫혀도 돌쩌귀는 중심에서 자리 잡아 언제나 문을 움직이고 있다. 문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옳다고 하고 밖으로 나오는 것을 그르다고 해 보자. 문이 안과 밖으로 움직이게 되면 서로 옳고 그름이라는 모순에 빠진다. 그러나 문은 문인 것이다. 문 속에는 옳고 그름이 함께 상존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작용하고 있다.
사람들은 문의 겉모습을 보고, 문이 안으로 들어가고 밖으로 나오는 것에만 옳다 그르다고 따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돌쩌귀의 입장 즉 하늘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도추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옳고 그름의 대립에서 해소 될 수 있다. 밝은 지혜에 따른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한다.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든 현상은 하나가 아니라 둘로 나누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알고 보면 둘이 아니라 하나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장자의 이론이다. 특히 사람이 태어나면 영원이 사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죽게 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한다. 자연의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면 죽게 되고, 죽게 되면 곧 태어난다. 산과들에 무수하게 자라나고 있는 초목을 보라.
가을이 되면, 왕성하게 자란 푸른 잎들이, 낙엽이 되어 하나 둘씩 죽어 없어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봄이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난다.
이와 같이 자연의 모든 생명체들은 태어나면 곧 죽게 되고 죽게 되면 태어난다는 만물의 원론적인 생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옳은 것과 그른 것, 이것과 저것의 관계도 상대적이 아니며 양자는 동시에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하다. 그러므로 옳다고 하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 그렇다는 것이지 나의 생각이 옳다고 해서 만인이 다 옳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들이 하는 말. 역시 사람들은 입만 벌리면 옳으니 그르니 하고 따지는데, 이러한 것은 모두가 쓸데없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장자가 살던 시대를 백가쟁맹의 시대라고 한다. 특히 그 가운데 가장 극심했던 싸움은 유가와 묵가의 싸움이다.
유가와 묵가는 서로 자기의 말에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말과 말의 싸움이었다. 묵가는 유가와 달리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하고 있다. 겸애란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이 남도 똑같이 사랑하라는 학설이다. 이 학설은 신분계급이 엄격했던 당시 사회로서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유가에서는 부자 군신의 관계를 매우 중시하여 가까운 이웃으로부터 점점 확대해서 멀리 있는 사람에까지 차례로 미치게 하는 것을 주장하는데 반하여 묵가는 멀고 가까운 것에 관계없이 내 부모를 사랑하듯이 다른 사람의 부모도 무조건 사랑하라는 것이다. 만약에 묵가의 주장대로라면 남녀 간에도 네 동생 내 동생의 구분 없이 무차별적인 사랑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 유가의 주장이다.
이러한 싸움은 장자의 생각을 더욱 혼란스럽게 할 뿐이었다. 그래서 결론을 내린 것이 도추의 이론이다. 도추란 돌쩌귀를 말하는 것인데, 돌쩌귀는 문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어 언제나 문을 열리고 닫히게 한다. 문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돌쩌귀 입장, 즉 하늘의 입장에서 모든 사물을 꿰뚫어 보면 옳고 그름을 해소 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밝은 지혜에 따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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