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보내는 편지’
윤 장 현(아시아인권위원회 이사)
오늘의 민주시민국가는 특정 개인에 의한 절대권력이나 힘에 의한 지배가 아닌 법에 의한 지배로 유지되고 있다. 때로는 법의 이름으로 수많은 양심수들이 양산되기도 했고 악법도 법이라 하여 역사의 또 다른 희생자들이 생기기도 했던 것이 인류의 또 다른 역사였다.
필자는 법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법을 집행하는 사람도 아닌 지라 결코 함부로 언급해서는 안 될 일이고 더구나 수사가 진행중인 시점이기에 더욱 그러하지만, 근래 들어 참으로 안타깝고 혼란스러운 경험을 하고 있다.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농촌지역은 여러 설명이 필요 없이 붕괴 직전이다. 우리들에게 ‘남도문화답사 1번지’로 잘 알려진 강진군도 예외가 아니다.
30년 전엔 인구가 15만 정도에 각종 물산이 풍부하여 비교적 탄탄한 지역이었는데 근래는 인구 5만이 무너진 지가 여러 해 되어 여러 가지 면에서 심각한 상황이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어른들은 일자리를 찾아서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떠나고 또 보다 나은 교육환경에서 공부해야 대학을 갈 수 있기 때문에 어린 학생들까지 도시로 떠나고 있어 악순환의 정도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그러니 마을에는 60대가 가장 젊은이가 되고 있고 어린아이 울음소리 듣기가 힘들어 우리 어버이들이 세상을 뜨시면 10년 후에는 우리들이 예상하는 정도를 넘어 정말 농촌의 붕괴는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최상의 방법은 기업을 유치해 일자리를 만드는 일인데 수도권 규제까지 풀려가니 갈수록 어려움이 심화될 것이 분명하다.
현실을 보면 차선책으로 선택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는 농어촌의 학교를 살리는 일이다. 학교가 붕괴되면 곧바로 농촌 붕괴가 시작된다. 시골에서 학교를 다녀도 진학과 취업이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이 고을의 목민관인 황주홍 군수는 강진군민장학재단을 만들어 다양한 교육지원 사업을 펼쳤다.
건설업체 장학재단 출연 불법 논란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걱정하는 독지가들이 거액을 기부하거나 정부의 교육정책이 획기적으로 전환되었으면 모를 일이지만 출향인사와 지역민들의 후원만으로 진행하다보니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았다.
결국 군 공무원들이 나서게 되었고 군이 시행하는 각종 공사에 참여했던 건설업체들이 장학재단에 출연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 유언인지 무언인지 모를 청탁성 압력이 행사되었다는 것이 세 차례 감사원 감사와 경찰 수사가 시작된 전말이다.
선의로 행한 일이었더라도 불법이었다면 법치국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법 집행에 예외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전국의 모든 시․군에서 장학기금을 모금하고 장학재단을 운영하고 있는데, 유독 강진군만이 일벌백계를 받아야 할 중범죄를 저질렀냐는 점이다.
전국의 모든 장학재단에 대해서 공평한 감사가 이루어진 뒤, 이 지역의 장학재단에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부정이 있어 사법처리가 불가피하다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앞서 말했듯이 농어촌이 붕괴 직전에 이른 상황에서 장학재단의 출연으로 줄어들기만 했던 학생들이 늘어나고 서울의 유수한 대학에도 진학하는 등 근래 볼 수 없었던 희망의 불씨가 살아났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강진군민들이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다면 사법처리가 지역민의 희망을 꺽는 일이 될 수 있다.
법을 집행하는 수사기관으로서는 당연히 부여받은 권한으로 수사를 진행해야 하겠지만, 너무 미시적, 부정적 시각만 가지고 들여다 볼일만은 아닌 듯하다.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해야 한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겠지만 형평의 문제와 공익을 위한 불편한 접근이었다면 수사기관도 조금 더 속깊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날갯짓
이 문제는 사실 지역 문제고 국가적 이슈가 아니다. 그런데도 전국의 시민사회 활동가와 학자, 일부 정치인들까지 나서서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역의 재야 시민사회단체가 수백명의 지역민들과 함께 광주지방경찰청 앞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극히 이례적인 일까지 벌어졌다.
한 개인의 신상 문제를 뛰어넘어 우리 한국 농어촌의 암담한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처절한 날갯짓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시각으로 접근해야 지역사회도 조금은 부끄러울 수 있을 것이다. 법치보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더 좋은 세상이라는 믿음을 저버리지 말자.
더욱이 이곳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가 아니었던가.
■ 약 력
․한국YMCA 전국연맹 이사장
․아이안과 대표원장(의학박사)
․아시아인권위원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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