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향월촌 24 > 봄눈 / 시와 산문 / 박부민 시인
봄눈
시린 기다림이 하늘에 올라
먼 꽃 싹 트고 피었다 돌아와
따스한 연록빛 불씨를 품고 내리는
새, 얼굴이 하얀 새야
노래 한 사발 마당에 부리고 가라
식은 부뚜막 냉습한 그늘 위에
반짝이는 피리 소리 한 숟갈
솔 솔 솔 흩뿌리고 가라
오고 오는 사람들
발목에 희푸른 빙산을 달고 오는 이들
밥 한 술 국 한 그릇에 뜨겁게 배부를 테니
깃털 하나로 모든 눈물 들판에 쓸어 모아
젖은 봄은 또 모락모락 피어날 테니
새야, 어린 풀잎 꽃잎마다 불을 지펴라
날개가 보드라운
폴 폴 폴 하얀 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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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의 극치는 봄눈이다. 이제 막 눈을 뜬 새싹과 꽃망울에 폴폴 내려앉는 눈송이는 너무도 잔인하게 보인다. 이미 지나간 겨울을 느닷없이 다시 만난다는 것은 당혹스럽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봄에 내리는 눈은 겨울의 연장선이 아니라 새로운 봄을 확실하게 자리매김해주는 선포식 같은 것이다. 겨우내 기다렸던 봄에 대한 소망이 하늘에 올라 꽃피어 돌아와 만물에 연록빛 불을 지펴주기 위해 새처럼 내려앉는 것이다.
그렇게 해석하며 바라보면 봄눈은 아름답고 눈물겹다. 집집마다 자애롭게 내려다보며 기쁨이 식어버린 가정, 쓸쓸하고 배고프고 추운 인고의 길목을 지나온 사람들의 진정한 봄을 위하여, 봄의 노래를 위하여 찾아드는 위로와 소망의 불씨이다. 새로이 시작하는 모두에게 불을 지펴주는 봄눈은 그래서 순결하고 상서로운 생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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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부민 시인 / 1996년 계간 <시와산문> 신인상 당선 (조병화 시인 選) 2005년 한국크리스챤문학상 수상. 시집『등불이 있는 마을』(시와문화 2010) 현 남도햇빛교회 담임목사 nasaret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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