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사 여연스님의 茶 고전강의(32회)
차행주(茶盞布)
차를 마시는 앞과 뒤 다시 말해 차 살림살이를 진행하는데 있어서 행주, 수건은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일이다. 차반 위에 여러 가지 차도구의 살림살이를 배열하는 일 가운데 행주도 가지런히 놓게 된다.
초의스님께서는 단순히 "세마포를 사용하여 찻잔을 씻는 것이 청결하고 다른 헝겊의 종류 즉 칙칙하고 올이 굵은 것은 더러워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라고 하고 있다.
아마도 다신전의 〈식잔포(拭盞布)〉 장의 내용으로 보아 한 개의 행주만 쓴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행다의 살림살이에서는 여러 가지 행주가 사용되고 있다.
찻물(湯水)을 끓이는 솔에 김이 서리고 물방울이 맺혀 흐르는 것을 닦는 행주도 필요하고 더구나 차반이나 차탁을 닦는데도 반드시 행주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음다 전후에 사용되는 행주는 아주 긴요한 차살림살이 물건 중의 하나이다.
다신전의 행주장에 그냥 계절에 상관없이 세마포라고만 적혀 있지만 여름, 겨울, 봄, 가을을 통해서 각기 다른 천을 사용해야 할 일이다. 겨울에는 올이 굵은 무명천이 무난하고 봄, 가을에는 부드러운 명주천이 품위 있다. 여름에는 역시 한산 모시나 안동포가 제격이다. 삼베는 삼가야 할 일이다. 삼베는 자칫 찻잔에 흠이 생겨 낭패를 보기 때문이다.
하얀 색상이 무난하다. 요즈음은 천연염색이 생활화 되어 누구나 쉽게 물들일 수 있어서 계절에 따라 개인의 취향대로 염색하여 쓰면 오히려 격조가 높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본의 여러 말차의 유파에서 쓰는 색조 깊은 말차 수건은 참 아름답다. 진분홍이거나 나뭇잎 색상의 리프그린(leaf geen) 색상 또는 선명한 나무 등걸(밤색) 색상의 차행주가 유백색의 도자기에 얹혀 있거나 상아빛 하얀 행주 수건이 검은 진주색의 천목잔에 얹혀 섬세한 여인의 손놀림을 따라 움직이는 모습은 애잔한 슬픔에 젖게 하는 감동을 일으킨다. 차의 미학, 행다 속에 전해오는 잔잔한 아름다움이 그런 것이 아니던가!
그렇듯이 우리의 행주 수건도 격조가 높게 물들일 수가 있다. 연분홍색의 연꽃 색상이나 여린 치자색 생쪽의 색상에서 오는 저 형언할 수 없는 연초록, 수십 번을 담그고 담아 쪽의 강물에서 건져 올린 짙은 가을 하늘의 코발트 빛. 그런 색상의 행주는 가을 속삭임이 그대로 내려와 담겨져 피는 도라지꽃 계절에 맞추어 찻잔을 닦고, 섬섬옥수의 고운 손놀림으로 그릇의 물기를 돌려 닦는 그 모습은 차라리 몽환의 예술이다.
아름다움은 스스로 창조하는 일이지 결코 일률적으로 규범 짓고 남을 따라 흉내 내는 일이 아니다. 찻잔의 행주, 수건 하나라도 개성을 살려 차실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룰 때 차의 예술이 승화되는 것이다. (다음주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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