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연히 한 달 사이에 두 번의 소풍을 갔다. 한 번은 여고 동창들과의 비싼 소풍이었고 또 한 번은 강진 문학기행 소풍이었는데, 완전 다른 느낌의 여행이었다. 대학 동창생들과 간 비싼 소풍은 경기도 여주에 있는 잘 꾸며진 개인 미용사의 미술관이었다. 관람료는 만원, 점심식사는 능이버섯고깃국 한 그릇에 4만5천원, 커피한잔에 1만5천원으로 1인당 7만원씩을 지불했는데, 단체로 간 여행이라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지불해야 했던 비용이었다. 그런데 비싼 비용에 비해 사실 구경할 것도 별로 없었고, 점심도 만족스럽지는 못했는데, 어쨌든 친구들과 간 여행이니 나이든 여인네들이 함께 폼이나 잡을 수 있는 장소였다. 그곳에서의 경험은 주인이 미용사답게 손님 수백 명의 머리카락을 캡슐에 담아 넣고 바닥에 뿌려 놓았다. 그리고도 독특한 환경을 조성해 놓았는데, 본인의 장례식장도 꾸며 놓아 나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내게 더 진하게 다가온 것은 마치 귀신 나올 듯한 그림이라는 점과 그만한 자랑거리를 전시해 놓은 것으로 비쳐왔다.
그곳의 대표라는 사람이 인사를 시작했다. 기린 목을 한 키가 큰 남자였다. 그 남자는 넥타이로 허리띠를 매고서는 마치 삐에로 같은 모자와 커다란 안경을 쓰고 있어서 유난히 튀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돈을 목적으로 한 상업 술에서 나온 연출이 분명했는데, 내 동창생들은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는 것 아닌가. 나는 비위가 맞지 않아 꾹 참았는데, 결국 점심을 먹은 후 버섯 냄새가 역겨워서 먹은 것들을 토해내고 말았다. 그곳의 독특한 발상은 미용실을 운영했던 주인의 성공 비결에서 나온 또 하나의 돈벌이였다. 미용비용을 비싸게 정하고 서민들의 발길을 막는 대신 부유층의 발길을 끌어당겨서 상류사회의 미용실을 만든 장본인이었다. 나름 고급 손님들만 받아 돈을 벌겠다는 상술이 그들에게는 언제나 통했다. 비싼 비용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 싶어 안달하는 된장녀들의 심리를 공략한 사업이 또 성공한 것이었다. 자신이 상류층, 이른바 부유층에 속한다는 소속감을 즐기는 그녀들은 비쌀수록 만족도가 높았다. 스스로 상류층이라고 착각하는 그녀들이 그 미용사로 하여금 부자 미술관을 짓도록 하였고, 미용실에 이어 미술관까지 자신들만이 갈 수 있는 특별한 곳, 상류사회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녀들은 비싼 돈을 지불할수록 자신의 가치가 동시에 올라간다고 느끼는 부류들에 속한다. 그들은 애초 금수저를 타고난 사람들처럼 늙어서도 금수저 노인들로 불리고 싶어 한다.
내가 이런 분위기를 익히 잘 알고 있는 것은 강진으로 귀촌하기 전 이미 12년 전 그런 부류 사람들이 내 옆을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 청담동의 그런 분위기가 가끔은 역겨워 귀촌을 결심한 점도 있다. 지금의 내 주변 사람들은 자연 속에 동화된 사람들처럼 순수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자연 속에 묻혀서 맑은 공기와 푸른 하늘 멋진 별만 구경하고, 뜨는 해와 지는 달에도 감탄사를 연발하며 감동을 느끼니 나들이 자체가 필요 없는 게 강진생활이다.
두 번 째 소풍은 강진문학기행으로 간 박경리 소설가의 작품 토지문학관 최참판댁 방문이었다. 경남 하동과 화개장터를 둘러보았는데, 강진에서 문학에 발을 디디면서 이런 호강을 하는구나 하는 새로운 소풍 경험이었다. 한눈에 시원하게 펼쳐진 넓은 들판과 섬진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최참판댁은 그 옛날 부잣집의 집터 삶을 느낄 수 있었다. 25년 동안 한 작품을 계속 활동 해온 박경리 소설가의 집념과 노력, 의지, 성실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화개장터에서의 청국장찌개는 일 만 원이었지만 구수하고 향긋한 비린내, 털게의 감칠맛은 밥 한 공기를 순식간에 비우게 만들었다. 3천 원짜리 커피로 휴식을 취하고, 3천 원 짜리 손수건을 사서 목주름과 땀을 동시에 감출수도 있었다. 농촌삶이라는 것이 서로를 잘 몰라도 함께 허심탄회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날 문학기행에서는 실컷 노래도 부르고 박장대소를 하며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었다.
12년 전 서울 강남 생활을 정리하고 강진 도암면으로 귀촌 한 것이 내 인생에서 신의 한 수인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젊음을 함께 했던 대학 친구들과의 만남도 늘 즐겁지만 그녀들의 생활방식이나 생각이 갈수록 괴이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내가 아직 그곳에 살고 있다면 나도 그녀들과 다름없이 행동하고 당연히 그런 소풍을 매우 즐길 거리로 생각했을 것인데, 내가 달라진 것이다. 내가 살아온 그간의 많은 날들이 도시생활이었고, 특히 내 주변 여인들이 된장녀들이 많았던 것이 뒤늦게 보이는 것이었다. 강진에서의 생활은 내 생애 전부를 펼쳐놓고 보았을 때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박경리 토지문학관 소풍에서 그녀들의 소풍과 다른 커다란 행복의 가치를 느끼며, 강진에서 다시 문학소녀가 되어 기쁜 날들이 소풍 같은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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