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교육지원청에서 발간한 다산의 <아악편>에 대하여…
<천자문>은 중국 남북조시대 양(梁)나라의 문인 주흥사(周興嗣, 470?~521)가 지은 책으로, 당시 황제인 무제(武帝)가 왕희지(王羲之, 307~365)의 글씨 가운데 서로 다른 글자 1천 자를 뽑아 주흥사에게 주며 “이것으로 운을 붙여 한 편의 글을 만들라”고 해서 지어졌다.
주흥사는 하룻밤에 이 일을 해야 했는데 그것은 주흥사가 죄를 지어 죽음을 면치 어렵게 되자 황제가 그의 재주를 안타까워 한 나머지 “하룻밤 안에 1천자를 가지고 사언절구(四言絶句)의 문장을 지어내면 용서하겠다”고 해서 만들어졌다. 주흥사는 황제의 명을 받들어 4자 1구로 2백50구를 만들어 1천자를 하룻밤 사이에 해내고 나서 그만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렸다. 그래서 <천자문>을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하고 <백두문(白頭文)>이라고도 한다.
이렇듯 유명한 천자문이지만 이 천자문을 처음 짓고 쓴 사람은 뚜렷하지 않다. 양무제가 위(魏)나라 때 명필 종요(鍾繇)의 글씨를 얻어 주흥사가 운을 달아 지은 글이라고도 하고, 종요의 글씨를 왕희지가 베껴 썼는데 다시 주흥사가
지은 것이라는 설이 있다. 또 한(漢)나라 장제(章帝)의 글이라고도 하는 설이 있는데, 애초 1천 자가 아니었으며 종요와 왕희지에 더하여 오늘 날 천자문이 아닌가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널리 알려진 것은 조선왕조 선조 때 명필 한석봉이 낸 <석봉천자문>이다.
<천자문>에는 중국의 역사, 천문, 지리, 인물, 학문, 가축, 농사, 제사, 송덕, 처세, 지혜, 도덕, 자연현상이 담겨져 있을 뿐 아니라, 백성을 다스리는 법과 바람직한 인간형인 군자(君子)의 길, 식구와 이웃 사이에 지켜져야 할 예의범절에 이르기까지 두루 담겨져 있는 진서(眞書)로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천자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천지현황(天地玄黃) 우주홍황(宇宙洪荒)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며 우주는 넓고도 거칠다.
일월영측(一月盈昃) 진수열장(辰數列張)
해와 달은 차고 기울며 별과 별자리들은 고르게 펼쳐져 있다.
한래서왕(寒來暑往) 추수동장(秋收冬藏)
추위가 오면 더위는 가니 겨울에는 갈무리하여 둔다.
윤여성세(閏餘成歲) 율려조양(律呂調陽)
윤달로 하여 해를 이루고 육률과 육려로 음양을 어우러지게 한다.
운등치우(雲騰치雨) 노결위상(露結爲霜)
구름이 올라 비가 되고 이슬이 엉키어 서리가 된다.
금생여수(金生麗水) 옥출곤강(玉出崑岡)
금은 여수에서 나고 구슬은 곤륜산에서 나온다.
<천자문> 맨 앞쪽 12구 48자로써 비슷한 음을 지닌 같은 소리 계열 글자로 운을 달았다. 그런데 이 천자문의 첫 구절부터 어려움을 느끼게 하고 있다. 각 구절 사이에 일관된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지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첫 구절이 천지현황((天地玄黃)인데 이 뜻은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이다.
이 말은 <역경>의 <곤괘>에서 나온다. 하늘은 검고→ 푸른빛이 나는 하늘을 가리켜 검다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하늘의 빛깔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본바탕을 추상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여기에서 한양대 정민 교수의 말을 인용해 본다.
“천지(天地)를 가르쳤으면 비슷한 부류로 묶어 일원성신(日月星辰), 산천구릉(山川丘陵)을 가르쳐야 옳다. 그런데 대뜸 색채어인 현황(玄黃)으로 넘어간다. 이왕 현황을 가르쳤으면 청적흑백(靑赤黑白) 홍자치록(紅紫緇綠) 등 다른 색채어를 마저 가르치는 게 맞다”
그런데 느닷없이 우주홍황(宇宙洪荒)으로 건너뛰었다는 것이다. 그는 ‘우주는 넓고도 거칠다’로 풀이되는데, 앞서 천지현황은 1324의 순서로 새겼다고 지적한다.
천지현황(天地玄黃).
앞서 풀이를 했듯이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는 뜻이다. 이게 말이라도 되는가. 푸른 하늘이 검고 땅이 누렇다니! 천자문 첫 구절부터 생뚱맞은 구절이 나오니 배우는 학생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말은 눈에 보이는 하늘의 빛깔을 말하는 게 아니라 현허(玄虛)해서 현묘(玄妙)하고 현현(玄玄)하기만 한 하늘의 본바탕을 추상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또한 땅이 누르다는 것은 청, 적, 황, 백, 흑 오색(五色)에서 황(黃)을 중심색으로 삼는 중국인 특유의 형이상학적 세계관인 오행(五行) 사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지만 아직 세상물정도 모르는 학생들이 생각할 때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갈 수밖에 없다. 오성(悟性)이 열릴 리 없다.
정민 교수는 이 점에서 이렇게 일갈한다.
“청(淸)자를 탁(濁)자와 함께 배우고, 근(近)과 원(遠)을 나란히 익혀야 한다. 경중(輕重)과 천심(淺深)도 마찬가지다. 두 글자씩 짝을 지어 가르치면 하나를 배워 둘을 안다. 금세 둘이 넷이 되고 여덟으로 증폭되어 식견이 열린다”
정약용은 천자문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는데, 지적에 그치지 않고 대안을 제시한 것이 <아학편 兒學編>이다. 2천자로 정리한 ‘2천자문’으로 상권 1천자는 형태가 있는 명사를 수록했고, 하권 1천자는 동사나 형용사로서 뜻이 있는 것을 모아 천자문처럼 운자를 달았다,
천지부모(天地父母) 군신부부(君臣夫婦)
형제남녀(兄弟男女) 자매제수(姉妹娣嫂)
조종자손(祖宗子孫) 질고생구(姪姑甥舅)
인의예지(仁義禮智) 효제충신(孝悌忠信)
지량돈목(慈良敦睦) 관화공신(寬和恭愼)
시비선악(是非善惡) 길흉회린(吉凶悔吝)
정약용이 지은 아학편의 첫 내용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천자문처럼 제시한 아학편은 처음 나온 몇 줄이 글자를 익히면 쉽게 가족의 구성을 이해할 수 있다.
정민 교수는 정약용의 아학편을 일컬어 군화신공(君和臣恭)은 ‘임금은 화기롭고 신하는 공손하다’는 뜻이 되고 자손돈목(子孫敦睦)은 ‘자손은 도탑고 화목하라’는 의미가 된다며 쉽게 한문을 익힐 수 있는 게 아학편임을 강조했다.
강진교육지원청(교육장 최광희)은 <다산 애학편 쓰기> 초등과 중등 2권을 최근 발간했다. 문사고전연구소장 청광 양광식 선생의 권유로 이뤄졌는데, 양 선생은 이미 다산 애학편 강의를 2009년 했다면서 여러 사람들의 성금으로 책을 발간, 관내 각 학교에 인성교육자료로 기증한 바 있다고 밝혔다.
양광식 선생이 펴낸 애학편 상권과 하권은 사자어에 대한 음을 달고 한자의 여러 뜻을 달았으며 또한 쉽게 알 수 있도록 풀이를 해놓았다. 일월성신(日月星辰)의 경우 날일(해일, 햇빛일, 날일, 낮일, 나날이일, 접때일, 뒷날에일, 점칠일, 책력일, 금기일일, 나라이름일)은 이렇게 뜻을 달았다. 달월(달빛월, 달거리월, 달같은월, 달마다월), 별성(별자리이름성, 천문성, 점성(사람), 점성(하늘), 성성(이하생략) 별신(일월성신, 때신, 새벽신, 해와달이만나는곳신, 임금신, 아름답고 착할신, 흔들릴신, 신주신, 지지진) ⁕ 일월 : 해오 달, 시간 또는 계절, 황제와 황후의 비유. 하루나 한 달 또는 매일이나 매달 ⁕성신 : 뭇 별의 총칭, 세월, 휘황한 등불의 비유.
손에 쥐어주듯 하는 애학편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이러한 애학편으로 다산 선생은 1802년 10월 10일 동문매반가에서 황상을 가르치기 시작, 1960년대까지 글자 공부의 교재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최광희 교육장은 발간사에서 “이 아학편은 각 1,000자씩 상하 2권 2,000자로 상권에서는 구체적인 명사나 자연현상 들을, 하권에서는 추상적인 명사나 형용사 등을 나타내는 한자를 배치하였다”며 “높은 가치를 지닌 아학편을 우리 고장의 청광 양광식 선생께서 다산 아학편쓰기로 편집하여 우리 학생들이 쉽게 익히게 한 바, 강진교육지원청에서는 이를 출판하여 보급하고 다산 정약용 선생과 청광 양광식 선생의 뜻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발간한 책을 살펴볼 때 한자 하나하나를 여섯 번 반복해서 직접 써볼 수 있도록 편집되어 학생들이 맘만 먹으면 쉽게 한자를 익힐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사실 한문 공부는 어렵다. 그러나 한문을 익히지 않고서는 학문의 강으로 뛰어들 수 없다. 학문을 모르고서는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어렵고 성취감 있는 삶을 이뤄내기도 어렵다.
정약용 선생은 중국의 천자문이 몹시 어렵게 구성되었다는 점을 간파, 아학편을 펴내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치원 황상과 같은 조선문단의 걸출한 시인을 탄생시킬 수 있었고,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내는데 교육적 촉매역할을 할 수 있었다.
강진에서는 청광 양광식 같은 한문학자가 있어 이를 일찍이 책으로 펴낸 바 있고, 이를 다시 강진교육지원청에서 새롭게 발간, 학생들의 교육 자료로 거듭 탄생시킨 일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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