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오랜만에 유치환 시인의 시 ‘행복’을 읽어 보았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마음의 파수꾼’을 읽은 후 주인공의 독백과도 같은 문장에 문득 행복에 대해서 깊숙이 생각하다가 ‘행복’ 시를 읽었다. ‘인간과 인간의 가장 내면적인 욕망이나 행복에 대한 소망 사이에는 그 무슨 벽이 가로 놓여 있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들이 마음속에 그리는 행복, 그러나 그들의 인생과는 끝내 융화될 수 없는 행복의 환상일까? 그것은 시간일까. 아니면 시간의 부재일까? 유년 시절부터 가꾸어 온 향수일까? 주인공은 행복에 대해서 자신의 내면에게 묻고 있었다. 그리고 묻는다. “결국 루이스, 당신은 행복해요? 당신 말이에요.” 그러자 루이스는 “행복합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행복한 이유에 대해서 아느냐고 재차 묻자 루이스는 모른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주인공 그녀는 자신의 애인 폴에게 묻는다. 그러자 폴은 “난 빨리 완벽하게 행복해지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오.” 세 사람은 행복에 대해서 논했지만, 그들 각자가 추구하는 행복은 상대성이 있는 것이기에 모두 행복한가에 대해서는 결국 결론이 없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날씨는 온화하고, 지구는 둥글고 우린 건강해요. 그러니 우린 행복한 거죠...... 그런데 왜 우리는 모든 관계가 이처럼 굶주리고, 무엇엔가 몰린 듯한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무엇 때문이죠?
북한이 6월 16일 개성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이곳 폭파는 북한의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13일 오후 9시께 발표한 담화에서 ”멀지 않아 쓸모없는 북남 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며 폭파를 예고한 3일 후였다. 그녀의 파괴지시 한마디에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니까 13일 김여정의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이라는 마지막 위협에도 우리 통일부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사무 시스템 업그레이드 사업에 대한 입찰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가 순간 당하고 말았다. 그러니 전혀 상대에 마음이 통하지 못한 혼자만의 행복을 부르짖고 있었던 격이다. 북한의 행동은 내가 어릴 적 책속에서 보았던 괴뢰군 늑대처럼 분노로 으르렁 대는 모습과 같았다.
참으로 우리는 어느 정도 오랫동안 행복했기는 했다. 꼴도 보기 싫고 인정할 수 없는 북한의 백두혈통들에 대해서 마음을 열고 인정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어쩌면 금방 통일이라도 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백두혈통이라는 그들의 매스컴 속 움직임이 귀엽게 보일 만큼 우리민족끼리 절대 적이 되어서는 안 되고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길로 가야하는 것에 심취했다. 어떤 식으로든 냉전구도를 해체하고 한반도에 다사로운 봄을 함께 만끽하는 행복한 순간들을 꿈꾸었다. 그것은 에메랄드 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매일 편지를 쓰는 기분과 같을 수도 있는 갈라진 동족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 편지를 보낼 우체통이 폭파된 것처럼 슬픈 사연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사강의 소설 ’마음의 파수꾼‘에서처럼 자신에게 끊임없이 묻고 싶은 행복에 대한 갈망과 의문 또는 유치환 시인의 사랑했음으로 행복했노라 라고 자책한다 해도 결과는 결국 행복 자체를 비웃듯이 한순간 모든 것은 무너지고 말았다. 그래도 요즘 날씨는 온화하고, 지구는 둥글고 우린 아직 건강하다. 그러니 우린 행복하다. 그런데도 무엇엔가 몰린 듯한 모습은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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