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64회)
성전면 월산마을 전귀임 할머니(90)
“담배 재우재우 참고 작년에 참았어. 시집와서 몰래 한 개씩 묵다본게 여간 늘어, 영감하고 같이 피웠제·······술은 지금도 묵어, 한잔씩 하면 소화가 잘 된게, 점심 한잔 저녁에 한잔·······여름에 일할 때 막걸리 한잔이 얼매나 좋은디, 시원허니······.”
전할머니의 막힘이 없는 어투가 시원시원하다.
“나 같이 늙은거 찍어서 뭣할라요? 신문에 나오요? 근사하네 허허.”
전할머니는 열일곱 살에 영암에서 두 살 위인 월산마을 총각에게 시집왔다. 30리 길을 가마를 타고 오는 기분은 즐거움보다는 여러 가지로 고통스러웠다. 그 옛날 몇 번의 재를 넘어 덜컹거리는 오솔길에서 가마를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의 고통도 고통이련만 전할머니 또한 멀미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가마 멀미에 죽것습디다. 사람이 송장이 되아 불어, 30리를 가마타고 온디······누가 각시를 보러 온지 간지도 모르고 그냥 드러누워 부렀어.”
가마멀미에 지친 신부에게 신랑이 위로의 말도 안하더냐고 속절없이 묻는 기자에게 전할머니는 대뜸 텔레비전 속 이야기를 꺼낸다. 텔레비전 연속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인 신랑이 족두리 벗겨주고 그런 일이 어디 있냐는 것이다.
“신랑이 뭔 말을 헌돠알? 초면에······· 신랑은 신랑대로 알아서 허고, 나는 나대로 보선 벗고 누워부리제, 누가 벗겨준돨?”
5남1녀의 딸 부잣집 맏딸이었던 전 할머니는 가난한 선비집으로 시집왔다. 전할머니가 시집왔을 때에 시집은 이미 가세가 기울어 시아버지는 망령이 들어 있을 정도였으니 속아서 결혼했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모두가 일하러 나가면 망령이 든 시아버지를 돌보는 것이 막 결혼한 신부의 일이었다.
“시아버지가 ‘우리집 가야, 우리집 가야’ 맨날 그러고말여, 깨를 할랑 벗고 화장실로 가먼 얼릉 담요갔고가 붙들고 오고·······뭐가 달렸는지······ 그런거 저런거 찬찬히 보고 있돨?”
길 갓 집이어서 동네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울타리 넘어로 넘어다 보고 지나치기가 일쑤여서 새댁은 여간 조심스러웠다. 그러면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찬찬히 쳐다보며 ‘어서왔소?’ 라고 묻는다.
꿍꿍 일을 못해도 배운 것이 많아 점잖았던 남편은 가난한 살림에 자존심 때문인지 별 말이 없었다. 이후 6년간 일본으로 돈을 벌로 떠난 남편대신 없는 살림을 해나가자니 늘 친정을 찾아다녔다. 남편이 일본으로 떠날 때 생겼던 아이를 업고 친정에서 주는 대로 이고 지고 30리를 넘어 다녔다.
‘고개가 으스러지도록 욕심에 이고오제, 친정어머니가 십리밖까지 이어다줘, 가난한 집으로 여워논게 마음에 걸리는지, 많이 싸주었제.“
첫아이를 업고 친정어머니가 싸준 보따리를 이고 지고 오다가 동네 입구 길가에서 만난 시댁 식구가 한 말이 지금도 생생하단다. ‘당숙모 뭣을 보고 우리집으로 시집 오소.’ 라는 말, 그날 어찌나 서러웠던지 설움에 복받쳐 밤새도록 울면서 날을 샜다.
“친정가서 한번도 내색 안해봤어, 부모가 한번 정해 준 것이라, 또 동생들도 있는디 생각해야제, 그것이 절개여, 양반의 절개.”
결혼해서 얼마 후 남편은 공부하라면서 먹과 붓 책을 메어서 곁에다 놓아두었다. 그러나 한번을 떠들러 보지를 않았다. 전할머니도 3년간 야학을 다녀 한글은 깨쳤으니, 당시 여자들과는 달리 글을 알았다. 하지만 입에 풀칠할 것도 없는 가난한 처지에 공부를 하라고 책을 들이미는 남편이 속으로는 원망스럽게 미운 맘만 들었다. 마을의 대들보 글씨는 모두 남편글씨일정도로 남편은 필자가 좋았다. 시동생들도 유난히 재주가 있었다. 하지만 일을 해야 먹고 살터여서 일 잘하는 사람이 없는 시댁 살림은 좀처럼 늘어나지 않고 늘 배가 고팠다. 바닷가 근처였던 친정은 고기가 빠진 날이 없던 곳이었다.
“고기를 무지하게 잘 묵었는디, 시집와서 고기를 못 묵은게 못살겄어.”
전 할머니는 ‘나 시상 산 것이 저승에 갔다 온 폭여’ 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일본으로 떠난 남편은 6년 만에 얼마의 돈을 벌어왔다. 그러나 그 돈도 한 푼을 쓰지 못하고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돈을 바꿀 시안이 넘어서 그 돈을 썩혀 부렀당게, 누가 말을 안해준게 몰라서 그렸지, 그렇게 허망한 세월 살었제.”
전할머니는 돈이라는 것도 운이 따로 있는지 들어왔다 금방 나가 버린다며, 6.25때 겪었던 사연을 들려주셨다. 남편의 누나가 하던 정미소를 잠깐 맡아서 했던 때였다. 정미소에는 매일 같이 여러 부락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있곤 했다. 7월 어느 날 셋째를 정미소에서 낳고 두 달쯤 되었던 때 저녁때가 되어 아이를 재우기 위해 방으로 들어왔다. 뒷문을 잠그지도 않았을 때 안경을 쓴 한 남자가 들이 닥치더니 목에 총을 바짝 들이댔다. 요 근처에 30명이 왔다면서 돈을 있는 대로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당신 생명이 여가 있소’라고 말하는 안경남자의 말에 ‘나도 넘의 집에 산디 돈이 어디가 있을거요.’라고 떨리는 소리로 말했지만 결국 안경남자는 그동안 모아놓은 돈과 시집올 때 가져온 삼합에 재금 넣어둔 것까지 모조리 뺏아가고 말았다.
“반란군인지, 지서에서 사상을 알아볼라고 온 것인지 기가막혀서 애기만 바라보고 있는디····· 사람들이 가고 남편이 들어와서 그 말을 했더니 미친놈의 소리헌다고 그냥 자불더만, 그날 나는 밤새 잠을 못잤는디·······그란디 안경남자가 또 한 번 왔어, 방앗간에 남자 여자가 하나 찼는디 밥묵을랑게 문을 차고 들어 오더만 ‘당신을 소탕시켜 불랑게’ 허고 말허더만·······산으로 데려가문 어쩔까 싶어 무서서 떨고 있는디, 남편이 있는 대로 돈 다 줘부리라고 허더만·······이 목심이 어찌나 큰고 말여, 그때 정미소에서 고생만 오지게 허고 왔소.”
세상을 살자니 만고풍상을 다 겪었다고 말하는 전할머니다.
“영감이 작년에 갔는디, 나보다 앞에 간 게 다행이다 싶제, 목숨 이것이 뭣인고, 오래산께 여간 기분 좋소. 요렇게 애기도 허고·······허허”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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