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부흥
고교 1학년을마치고 2학년 때였다. 1년 선배들에 의해 모임이 이루어졌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생각도 건전한 친구들이었다. 다행히 우리는 자주 만났고 책도 사보고 강의도 들었다. 그 당시 주로 유달영 교수의 강의와 함석헌 선생님의 저서에 관심이 있었다. 덴마크의 농촌 부흥사를 일고구룬트비히처럼 우리 젊은 사람들은 농촌으로 돌아가 농촌을 개몽하고 부흥시켜야 한다고 떠들었다. 그 당시는 농촌이 특히 가난했다. 그래서 대부분이 영양 부족으로 키가 자라지 않았다. 도암 출신 최정옥이와 진도출신 이유방이는 특히 키가 작았다. 이유방이는 서울대 축산과 진학 후 영양이 좋아졌는지 키가 부쩍 크고 그 뒤론 나보다 키가 더 컸다.
농촌으로돌아가 농촌을 부흥시켜야 한다는 이유로 우리는 전부 농업과 관련된 학과로 진학했다. 유방이는 부모님은 법대 진학하기를 원했지만서울 농대 축산과, 임영득이는서울 사대 생물학과, 김하운이는전남대 장학생으로 농화학과, 최정옥이도 전남대 장학생으로 수의학과, 고무석이도 장학생으로 농화학과에 진학했다. 나는 처음부터 공대 가기로 마음 먹었고, 공학을 전공해서 농촌 부흥을 돕는다고 했다. 지금부터 솔선해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해서 우리들끼리 학교화장실 청소를 시작했다. 이런 일로 몇몇은 졸업 때 선행상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같은 모임으로 한 학년 밑에 있던 강낙원 전 행장과 박태숙 외무관도 알게 되었다.
농촌으로돌아가 농촌 부흥을 하겠다던 꿈은 사라졌지만 전부 그 나름대로 농업과 관련된 분야에서 공헌을 하였다. 이유방이는 University of Wisconsin at Madison 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후 UC Davis 에서 육가공 연구실을 맡아 일하고 있다. 최근에는 신학대학 졸업 후 목사 안수를 받고 선교 활동까지 한단다. 최정옥이는 호주에서 가축에 대한 박사학위를 획득한후 우리나라에서 닭의 권위자가 되었으나수년 전에 안타깝게도 먼저세상을 떠났다. 임영득이도 일본에서 박사학위 후 국립 인천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다가 퇴임했다. 고무석이 형은 전남대 농과대학 교수에서 퇴임했고 김하운이는 오랫동안 국가 공무원으로 일하다정년 퇴직했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나름대로 원대한 꿈을 가졌지만 지금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얼마만큼 꿈을 이루었는지 정리할때가 된 것 같다. 나는 아직 지리정보 시스템산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제 시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l 고 3
고등학교 3학년이되면 어머니는 물론 그 집에 비상이 걸린다. 요즘은 고3이 아니라 유치원에서부터 모든 어머니는 자녀 과외 수업에 모든 힘을 쏟는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공부를 하는지 학교 성적이 어떤지 어느 학교에 진학하는지 관심이 없으셨다. 그저 건강하게 잘 지내고 학교 성적표만 가져오면 좋아하셨다. 그 시절에도 학원과 가정교사는 있었다.
고3이 되자 한번 열심히 공부해 보려고 마음 먹었다. 일년 동안 장기전이였으므로 밤 11시에는 꼭 잠에 들었다. 그 대신 새벽 4시에일어나서 냉수 마찰하고 아침학교 갈 때까지 공부했다. 주로 학교 과정을 중심으로 예습 복습 위주였다. 참고서는 영어독해력을 기르기 위한 것과 일본에서 사용한 수학 문제 풀이가 전부였다. 공부 벌레인 고종사촌 형 박동실과는 3년 동안 내내 같은 방에서 공부 했으며 많은 도움과 자극이 되었다. 고3 때에는 정신 집중을 해서인지 내 머리 활동이 최고조에 달한 것 같았다.
대학진로를 결정하는 잣대는 오직 취직이었다. 지금 취업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그 당시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선 우리나라에 회사가 없었다.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곳은 한국전력공사, 충주와 나주 비료 공장, 은행들이었다. 은행 중에서도 산업은행에서 공대 출신은 받아줬다. 물론 공무원과 행정, 사법, 외무고시가 있었지만 공무원 대우가 좋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 동안 우리나라 재벌로오랫동안 군림했고 거기에서 파생된 많은 회사를 만들어 냈던 현대 건설도 청계천 입구 6층 빌딩에 본사를 둔 초라한 회사였다. 그래도 서울 공대 화학공학과와 기계 출신이 겨우 취직이 잘 되었다. 그래서 서울 공대 기계공학과를 목표로 세웠다. 그 당시는 대부분 학생이 같은 처지이고 같은생각을 했는지 서울 대학교에서도 화공과와기계과가 커트라인이 제일 높았다. 새로 생긴 원자력과 까지 합해 공과 계통에서는 전국에서 100등 안에 들어가야 했다.
그 뒤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엔지니어링이 3D 잡이 되어 버리고 공대 기피 현상까지 생겼다. 사실은 국가 생산 활동에 핵심이 되는 기술이 엔지니어링인데 말이다. 내 동생 기향이의 서울법대 동창들을 보면 그 직장 면면이 훨씬 화려하고 수명도길다. 사회 발전에 따라 국민들의 가치관이전도되는 것인가 아니면 옛날 사농공상의 뿌리깊은 사상이 남아 있어서인지 알 수 없다. 미국에 와 있는 한국 교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 인도, 대만, 일본 등 아시아 인접국들과는 확연히 다른 대조를 이룬다.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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