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원만하게 꾸려나가기 위한 기본 원칙들을 제시하였다. 우선 가족 구성원들 간에 지켜야 할 도리를 제시한 후, 집안을 꾸려나가는 일도 나라를 다스리는 일과 마찬가지로 엄격함과 너그러움이 함께 공존하여야 한다고 제시하였다. 늘 부지런하고 검약하되 결코 남에게 인색해서는 안 되며, 필요할 때 언제나 베풀 수 있는 자세를 강조하였다.
여성의 역할에 대해서는 시대적 한계 때문에 봉건적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지만, 딸을 기피하고 며느리를 구박하며 혼인에 있어 저자거리의 물건 거래처럼 이익을 따지는 천박한 시대 풍조에 대해서는 통렬하게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아울러 책을 소중하게 다루고 미신에 빠지지 말 것까지 후손에게 충고하는 자상함을 보여주고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 교화(敎化)란 위에서 아래로 행하여지고, 먼저 난 사람으로부터 뒤에 난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아버지가 자애롭지 못하면 자식이 불효하고, 형이 우애롭지 못하면 아우가 공손하지 않으며, 지아비가 의롭지 못하면 아내가 순종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자애로운데 자식이 거스르고, 형이 우애로운데 아우가 기만하며, 지아비가 의로운데 아내가 업신여기고 깔보면 이는 악인으로서 형벌로 다스려 두려워하게 해야 할 대상이지 훈도(訓導)하여 변화시킬 대상은 아니다.
관대함과 엄격함의 조화 – 집안에 매와 꾸지람이 없어지면 아이들의 잘못이 금방 나타나고, 나라에 형벌이 적절하게 시행되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데가 없어진다. 집안 다스리는 일에서 관대하고 엄격함도 나라 다스리는 일에서와 같다.
검소함과 인색함 –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치하면 불손(不遜)하고 검소하면 고루(固陋)한데, 불손한 것보다는 차라리 고루한 편이 낫다”라고 하셨고, 또 “주공(周公)의 훌륭한 재주를 가졌다 하더라도 만약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그 나머지는 볼 것이 없다”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검소한 것은 좋지만 인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검소하다는 것은 아끼고 줄여서 예를 행한다는 말이요, 인색하다는 것은 몹시 곤궁한데도 구제해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늘날 베풀면 사치스럽고 검소하면 인색한 경우들이 있다. 만약에 베풀면서도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면서도 인색하지 않을 수 있다면 훌륭한 것이다.
검소한 북방(北方)과 사치스런 강남(江南) -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은 농사를 지어서 양식을 대어 먹고 뽕나무와 삼을 길러서 옷을 해 입는 것이다. 채소와 과일이 쌓인 것은 농장에서 나온 것이요, 닭고기와 돼지고기 반찬은 닭장과 외양간에서 생산된 것이다. 집과 기구, 땔감과 기름등불에 이르기까지 농사지어 얻지 않는 산물이 없다. 이런 일들을 잘 해나가는 사람의 경우, 대문을 닫아걸고 외부와 거래를 하지 않아도 생필품들은 충분한데, 다만 집에는 염정(鹽井)이 없을 뿐이다. 오늘 날 북방의 풍속은 다들 몸소 근검절약을 잘하여 의식이 넉넉하지만 강남은 사치스러워서 북방에 못 미치는 점이 많다.
지나친 엄격함 – 양(梁) 효원제(孝元帝) 때에 어떤 중서사인(中書舍人)이 집안 다스리는 일에 정도를 잃어 지나치게 엄격하고 각박하였는데, 결국 처첩이 함께 자객을 사서 술 취한 틈을 타 죽여버렸다.
지나친 너그러움 – 세간의 명사들은 가솔들을 오직 너그럽고 어질게 대하려고만 애를 쓴다. 그리하여 하인들은 손님에게 대접할 음식을 덜어내고 처자식은 이웃에 베풀기로 약속한 물건의 양을 줄여서 빈객(賓客)들을 업신여기고 마을 사람들을 범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집안의 큰 해악이다.
화를 낼 줄 모르는 사람 – 북제(北齊)의 사부시랑(史部侍郞) 방문열은 일찍이 화를 내본 적이 없었다. 한번은 장마를 거치며 양식이 다 떨어져 계집종을 시켜 쌀을 사오게 하였더니 계집종이 그 김에 달아나서 사나흘이 지나서야 다시 잡혔다. 방문열은 점잖게 말했다. “온 집안에 먹을 것이 없는데 너는 어딜 갔다 오느냐?” 그리고는 끝내 매질을 하지 않았다. 일찍이 남에게 집을 맡긴 적이 있었는데 노비들이 지붕을 뜯어 땔감으로 거의 다 써버렸건만 그 얘기를 듣고서 얼굴만 찌푸렸을 뿐 끝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함께 나눈 배자야(裴子野)와 욕심 많고 인색한 사람들 – 배자야는 남조 양(梁)나라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고 글을 잘 지었다. 부친의 상중에 늘 묘소에 가니 그 때문에 풀들이 말랐고, 흰 토끼와 흰 비둘기가 있어 묘소 곁에서 길이 들었다. 배자야는 먼 친척이나 옛 동료들 중에 생계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이가 있으면 모두 거두어서 먹여 살렸다. 그의 집도 본래 청빈하여 때때로 홍수나 가뭄을 만나면 쌀 두 섬으로 묽은 죽을 쑤어야 근근이 다 돌아갈 정도엿지만 자신도 똑같이 먹으면서 싫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업(鄴) 지역에 영군(領軍) 한 사람이 있었는데, 재물 욕심이 너무 심해서 가동(家僮)이 800명이나 되는데도 천 명을 채우리라 맹세하고는, 조석 끼니에 식구 한 사람 당 식비를 15전으로 제한해 놓아 어쩌다 손님이 와도 더 이상은 대접할 수가 없었다. 뒤에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을 당하고 그의 가산은 몰수하기 위해 장부에 올리는데 미투리가 집 한 채에 가득했고 낡은 옷가지가 몇 창고나 되었으며, 나머지 재산과 보물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남양에 어떤 사람은 생업을 꾸리면서도 많은 재산을 모았지만 성격이 유별나게 아끼고 인색했다. 동지가 지난 후 딸과 사위가 인사를 왔는데, 구리 그릇에 술 한 사발과 저민 노루고기 몇 점을 내놓았다. 사위는 그 단출하고 소홀함이 섭섭해서 한 번에 먹어버렸다. 주인은 깜짝 놀라며 우물쭈물하다가 더 가져오게 했는데 이러기를 두 차례나 하였다. 자리를 물리고사 그의 딸을 꾸짖으며 말했다. “아무개 서방이 술을 좋아하니 그래서 네가 늘 가난한 게로구나.” 그가 죽고 난 후 자식들이 재산을 다투다가 결국엔 형이 동생을 죽이고 말았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 아낙은 규중(閨中)에서 음식 장만하는 일을 주관하고 오직 술과 음식, 의복의 예에 고나한 일만 할 것이며, 나라에서 정치에 간여하게 해서는 안 되고 집안에서 가업을 주관하게 해서는 안 된다. 만약 총명하여 재주와 지혜가 있고 고금(古今)에 대해 잘 안다면 군자(君子)를 보좌하여 그 부족함을 거드는 길이 마땅하며, 결코 암탉이 새벽에 울어 화를 부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남북 여성의 차이 – 강남의 부녀자들은 외부 사람과 교유가 거의 없다. 사돈 집안끼리도 때로는 십 수 년 동안 서로 얼굴을 알지 못한 채 다만 사람을 보내 안부를 묻거나 선물을 보내어 정중한 마음을 표시할 뿐이다. 업(鄴) 지역의 풍속은 전전으로 여자가 집안을 맡는다. 소송을 벌여 옳고 그름을 다투고, 찾아가 뵙고 맞이해 접대하느라 수레가 거리를 메우고, 비단 치마 저고리를 입은 부녀자가 관아에 가득하며, 자식 대신 벼슬을 구하기도 하고 남편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것이 항주와 대군(代郡) 일대에 전해오는 유풍(遺風)이리라. 남쪽에서는 가난하여 가진 게 없어도 다들 외양을 꾸미는 데 치중하여 수레와 의복은 반드시 말쑥하게 갖추지만 집에 있는 처자식들은 춥고 배고픔을 면치 못한다. 강북에서 남들과의 교유는 안주인이 주관하는 경우가 많아서 비단옷이나 금, 비취 등의 재물은 빠뜨려서도 안 되지만 남자가 사용하는 비쩍 마른 말과 초췌한 노비는 겨우 명색이나 갖출 뿐이다. 부부간의 호칭과 예절에 있어서도 때로는 상대방을 ‘애 , 재’라고 부른다.
강북 여성의 솜씨 – <예기> 내칙에 “여자 아이는 열 살이 되면 규문 밖으로 나가지 않고 여스승이 유순한 말씨와 태도로 남의 말을 듣고 따르는 법, 삼베와 모시를 다루는 법, 누에 길러 명주실을 뽑고 베를 짜고 띠를 모아 옷을 짓는 법 등을 가르친다”라고 하였고, 정현의 주(注)에 “순(紃:끈)은 끈이다”라 하였으며, <정의(正義)>에서 “임(紝)은 명주를 짜는 것이고 조(組)와 순(紃)은 모두 띠를 만드는 것이다. 얇고 너른 것을 조(組)라 하고, 새끼줄 같은 것을 순(紃)이라 한다”고 했다. 강북의 아낙들은 길쌈하고 끈을 꼬는 일이나 무늬를 얇은 비단에 수놓는 솜씨가 강동(江東)보다 훨씬 뛰어나다.
딸을 기피하는 세태 – 태공이 “딸을 많이 낳아 기르는 것도 비용이 부담되는 한 가지 일이다”라고 하였고, 진축이 “도둑도 딸 다섯인 집의 문 앞은 지나지 않는다”라 하였듯이 딸이 누가 됨은 이렇게 심각하다. 그렇지만 하늘이 낳은 백성이요 선친께서 진해줏ㄴ 몸인데 어찌하겠는가? 세상 사람들 중에는 딸을 키우지 않고 혈육을 해코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찌 이런 짓을 하고서 하늘에 복을 바라는가? 나에게 먼 친척 되는 사람이 집안에 가기(家妓)와 잉첩(媵妾)들이 많은데, 아이를 낳아 키울 때가 되면 문지기를 보내어 지키게 한다. 해산 할 때가 되면 창으로 엿보며 문에 기대어 있다가 만약에 딸을 낳으면 바로 데리고 가버리는데, 어미가 따라가며 울부짖지만 감히 구하지 못하니 사람들이 그 소리를 차마 들을 수가 없다.
썰렁한 시어머니의 밥상 – 여자들의 본성이 대개 사위는 총애하지만 며느리는 구박한다. 사위를 총애하면 아들 형제들의 원망이 생겨나고 며느리를 구박하면 딸 자매들의 중상(中傷)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딸이 출가를 했건 하지 않았건 그 집안에 누가 되는 것은, 사실 모두 그 어미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썰렁한 시어머니 밥상’이라는 속담까지 나오게 되었는데, 이는 그에 대한 응보(應報)이다. 집집마다 늘 있는 문제이니 조심하지 않을 수 있으랴!
저자거리와 다름없는 혼인세태 – 혼인 상대는 평범한 집안으로 하라는 것이 9세조께서 정해놓은 규칙이다. 근자에 세상에서는 시집장가를 보내면서 딸을 팔아 재물을 들이고 비단을 보내 며느리를 사며,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비교하고 조그만 것까지 따지고 견주면서, 많이 얻고 적게 주려는 행태가 저저거리나 다름없게 되었다. 그 결과 때로는 비천한 사위가 가문에 들어오기도 하고 거만한 며느리가 집안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허영을 말하고 이익을 구하려다 도리어 치욕을 불러오게 되니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책을 다루는 자세 – 남에게 책을 빌리면 늘 아끼고 잘 다루어야 하며 본래 찢어지고 훼손된 데가 있으면 바로 보수해야 하는데 이 또한 사대부로서 지켜야할 모든 행실 중의 한 가지이다. 제양 사람 강록은 책을 읽다가 다 읽기 전에 비록 급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말아놓고 묶어서 정리한 다음에야 일어났으므로 헐거나 파손되는 법이 없어 사람들은 그가 빌려달라고 해도 꺼리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책상 위에 어지럽게 늘어놓고 분류된 서질(書帙)들도 마구 흩어놓아 아이들이나 하녀들에 의해 더럽혀지고 비바람이나 벌레, 쥐 따위에 의해 훼손되는 경우가 많은데, 실로 덕에 누가 되는 일이다. 나는 늘 성인의 책을 읽을 때마다 엄숙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대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 오래된 종이에 오경(五經)의 의미와 훌륭한 인물들의 성명이 실려 있으면 감히 지저분한 데 쓰지 못하였다.
미신에 대한 태도 – 우리 집안에서 무당의 푸닥거리에 관한 일은 거론된 적이 없고, 부적을 쓰거나 장초(章醮)를 거행하며 소원을 빌어본 적이 없음은 모두 너희들이 아는 바 그대로이다. 요망한 일에 비용을 들이지 않도록 하여라.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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