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할 것 없이 살아가는 한평생동안 시련이 있게 마련이지만 모진 눈물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았거나 아픈 시련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상대의 힘들었던 지난 흔적과 감격스런 눈물을 흘려도 무슨 까닭인지 알지를 못합니다. 너무 암담하고, 앞이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질 않고, 차라리 세상을 포기해버리고 싶었던 그런 순간들을 잊을 수 없는 게지요.
2016년 이 해 정월25일 필자가 강진에 살러 온지 10년이 되는 해 동안 눈이 제일 많이 온 것 같은데 다른 이들의 말에는 한35년 전쯤에도 이번같이 많이 내린 일이 있다고 하더군요.
필자의 경우 어린 시절 남도해변 더운 곳에서 나 자란 탓인지 스케이트 신발이나 썰매한번 타 본적 없어 추위를 무척 싫어하는 편인데, 과거 이승만 정부 대학시절 신체검사미필로 육군 졸병에 강제입대당해 논산훈련소를 거쳐 최전방 강원도 “양구” 의무중대에 복무당시 눈이 밤낮없이 한 보름동안 내려 자고나면 눈 치우느라 허리를 다쳐 병실에 입원까지 했던 일로, 어린 시절에는 눈 오는 게 그리도 좋았는데 그 이후부턴 눈이 지금까지도 달갑지 못합니다.
또, 1990년 초 무역업당시 중국 대만 옆 더운 지역 복건성(후첸생) 복주(福州)라는 곳에 정착해 사업하던 중 갑자기 먼 곳에 출장 갈 일이 생겨 여름 같은 초가을 날씨인줄로만알고 대강 옷을 챙겨 떠났는데 그때가 11월 초라 기차로 북경(北京)을 지나 밤낮으로 장장4일간 간곳이 흑룡강성(黑龍江省) 할빈 옆에 치치알시 라는 곳에 다다르니 갑자기 기온이 영하37~40도가 되어 초행인 필자는 더운 지역에서만 있다가 두터 운 옷도 준비 못한 채 막상 추운 치치알에 내려 밖에서 오줌을 누니 그 자리에서 얼어버려 그 매서운 혹한을 겪어보기는 난생처음이라 한 겨울이 다 가도록 그곳에서 모질게 추위와 싸워야했던 기억을 도저히 지을 수 없습니다.
인생사 모든 일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자신이 남긴 기억들이 뇌리 깊숙한 곳에 자리해 아프고, 힘들고 괴로웠던 고난의 날들이 시시때때로 떠오를 적마다 용기를 잃지 말고 힘차게 살아가야한다는 소중한 산 경험을 심어주는 예방 주사의 시금석으로 남아 있는 것이겠지요.
문득, 가던 길을 멈춰서 서 스쳐간 날들을 뒤돌아보니 희망과 좌절, 기쁨과 슬픔. 땀과 외로움이 범벅된 초라한 모습들로 고독을 달래며 정신없이 살아야했던 젊은 날들이 어제 같은데 어느 새 지천명(知天命)에서 이순(耳順)에 들더니 겨우 한 10년을 더 버티고 나니 팔순(八旬)마저도 훌쩍 뛰어넘어버린 황혼 벌에서 지친 영혼만이 주마등처럼 가물가물 졸고 있네요.
참으로 냉혹한 현실이 말해주듯 팔팔하던 내 어깨가 축 처져 굴복해지는 세월 앞에 서글픈 상처만을 달래야하는 기로에서서 지금은 아쉬운 이별을 나눠야하듯 “애들아 잘 있어라!” 흔드는 내 가벼운 “빈손”의 처량한 모습만이 보일뿐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진정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게 그 무엇일까? 그게 단 하나 남은 내 건강한 마음인데 그래도 혹여 배탈 나고, 감기 들세라 걱정되는 일을 귀신이 미리 알아차리고 와 목을 휘어잡고 몰래 잡아갈까? 걱정부터 하는 내 처량한 신세가 안쓰럽기만 느껴집니다. 그러나 돈으로 살 수 없는 저마다의 인생길이지만 시련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참뜻인 남자만의 두 줄에 흐르는 눈물을 모른다고 하지요. 왜 저토록 섧게 울고, 아파 고통을 받는지 말입니다.
한 때는 곁에 아내가 위암수술을 받고, 같은 병동에서 필자가 대장암 수술까지 받고난 뒤에 둘이가 살아난 끊질 긴 생명의 연장을 기억해보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릴 뿐입니다.
제의 경우, 젊은 시절 꽃이 만개하던 시절도 있었고, 꿈도 부풀었던 세월도 많아 겁도 없이 세상 10개국이상을 무서울 게 없이 휘젓고 다니던 그 시절이 스크린처럼 되뇌어집니다.
영하40도를 오르내리던 낙목한천(落木寒天) 망망한 허허벌판에서 나의 존재감 자체를 상실한 채 세상만사가 다 싫어 자살(a suicide)까지 기도했던 일보직전, 떠오른 고국산천, 아내와 자식들의 얼굴이보여 모진 목숨을 호연지기(浩然之氣)로 달래야했던 날들이 어제 같은데, 그땐 언제나 내 곁에 어진 아내가 있어 어려운 고비 쩍마다 안분지족(安分知足)에 따뜻한 마음한줄기로 나를 젖무덤에 파묻어두고 꼭 껴안아 보듬어주던 그 기억을 도저히 지울 수 없답니다.
결국, 인생살이가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하고 있으니 세상이 있고, 내가없으면 세상도 없으므로 분명, 이 세상의 주인은 바로나이고 당신입니다. 내가 없는 이 세상 아무리 높은 빌딩이나 화려한 집을 지어놔도 내 없는 저 높은 빌딩이야말로 무슨 소용이 있으며 도깨비 허수아비가 틀림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짧고 굵게 살다가는 게 산 보람이라 말하지만, 그래도 이승에 와 무병장수로 천수(天壽)를 누리다 넉넉하게 인생을 살다가는 것이 큰 복이 아닐까요. 불교에서 말하길 개똥밭에 파묻혀 뒹굴어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더 낫다고 하질 않던가요?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내존재의 맥박(pulsation)이 지금도 쉼 없이 열심히 뛰며 숨 쉬고 삶에 적응하고 있다는 산 증거입니다.
한 때는 필자가 다시는 고국 땅을 영영 밟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할 줄로만 알았던 이민생활이었는데 그래도 죽어 뼈라도 태어난 곳에 묻어야한다는 굳은 신념(信念)하나 때문에 돌아와 황혼 길 이곳 <강진 벌>에다 마지막 혼(魂)의 여생(of one`s life)을 묻을 줄이야 꿈에도 생각 못한 일이라 그나마 참 흡족한 마음뿐이랍니다.
지난날 그 아픔이 있었기에 현재의 내 삶이 더더욱 소중하게 존재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껴보면서 혹독한 환경에서 추위의 시련을 견뎌낸 꽃만이 그윽하고, 아름다운 열매의 향기를 품어내는 것처럼 비록 삐뚤삐뚤 살아오며 그려진 인생그림의 흔적이지만, 그 질곡의 경험이 쌓인 노하우는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저 나름 인생관의 값진 보화이듯, 그런 시련을 쌓은 덕(德)의 흔적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해봅니다.
삶이란 메아리 같은 것, 우리들 인간에게 부여된 현실을 성실하게 살아가다보면 그런 애환과 진한 아쉬움과 연민의 정을 남기기 마련이지요. 아마도 그 힘들었던 고통과 아픔의 시련의 흔적이 없었다면 어느 누구나 자기 삶의 인생인 오늘이 품겨나지 않을 것입니다.
평탄하고, 행복한 삶도 우리가 바라는 삶 중의 하나겠지만, 시련이나 아픔이 있었기에 품기는 향내가 성숙해지듯 인생에 진정한 승자는 어벌쩡하게 요란스런 그런 사람이아니라 조용히 살아갈망정 남들에 부러움을 사면서도 여전히 오뚝이 인생으로 힘차게 살아가고 있는 그런 분이 더 존경스럽지요. 혹독한 악조건의 환경에서 견뎌낸 꽃망울이 터뜨리는 그윽하고, 은은한 향기 같은 것이기에 질곡(fetters)의 그 순환의 과정을 참되게 쌓아온 산 경험만이 값진 보화 같은 보람으로 승화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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