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 · 왕전 열전(1)
백기와 왕전은 진나라의 천하통일을 가능케 한 불세출의 장수들이다. 백기는 소왕을 도와 가는 곳곳마다 수많은 적군의 목을 베며 천하통일의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조나라의 40만 대군을 산채로 몰살한 장평대전은 그의 잔학성과 혈기 등등한 기세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는 혁혁한 공을 세우고도 재상 범수의 시기를 받아 끝내 자신의 몸을 보존하지 못했다. 시황제 때의 장수인 왕전은 아들 왕분과 함께 천하통일에 큰 공을 세웠지만, 인의를 베풀기보다는 그럭저럭 아첨하며 편한 것을 구했다. 결국 그의 영화도 3대를 넘기지 못하고 진나라의 멸망과 함께 스러지고 만다.
백기(白起)는 미(郿) 땅 사람으로 용병술이 뛰어나 진나라 소왕을 섬겼다. 소왕 13년에 그는 좌서장이 되어 군사를 거느리고 한나라 신성을 공략했다. 그 이듬해에는 좌경에 올라 한나라와 위나라 군사를 이궐에서 쳐 24만을 참수했고 장수 공손희를 사로잡았으며 다섯 성을 함락했다. 그 공으로 그는 국위에 올라 진나라의 최고 군사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이어 황하를 건너서 한나라의 안읍 동쪽에서 건하에 이르는 땅을 빼앗았다. 이듬해 그는 대량조에 올라 위나라를 공략하여 크고 작은 성 61개를 함락했다. 그 이듬해에는 객경 사마천과 함께 원성을 쳐 손을 넣었다.
그로부터 5년 후, 백기는 조나라를 쳐 광랑성을 함락했으며, 다시 7년 후에는 초나라를 쳐 언(鄢)과 등(鄧) 땅의 다섯 성을 함락시켰다. 이듬해 그는 다시 초나라를 쳐 영 땅을 함락했고, 이릉을 불태웠으며, 마침내 동쪽에 있는 경릉에 이르렀다. 초나라 왕은 영을 버리고 동쪽에 있는 진(陣)으로 도읍을 옮겼다. 진나라는 영을 남도(南都)로 삼고, 백기를 무안군에 봉했다. 백기는 다시 초나라를 공략하여 무군과 검증군을 평정했다.
소왕 34년, 백기는 위나라를 쳐서 화양을 함락했고, 승상인 망묘를 달아나게 했으며, 삼진의 장수들을 포로로 잡고 적병 13만을 참수했다. 또 조나라 장수 가언과 싸워 그의 수하의 병사 2만을 물속에 빠뜨려 죽였다. 소왕 43년, 백기는 한나라의 형성을 쳐서 다섯 성을 빼앗고 5만을 참수했다. 소왕 44년에는 한나라의 남양을 쳐서 태행산의 길을 끊어버렸다. 소왕 46년에는 한나라의 구지와 인(藺) 땅을 함락했다. 그 이듬해 진나라는 좌서장 왕흘을 보내 한나라를 쳐 상당을 빼앗았다. 이에 상당 백성들은 조나라로 달아났다. 조나라 군사들은 장병에 주둔하여 상당 백성들을 위로했다.
그해 4월, 왕흘이 조나라를 치자 조나라는 염파를 장수로 삼았다. 조나라 군사가 진나라의 척후병을 공격했으나 진나라 척후병이 오히려 조나라 부장인 가(茄)를 참했다. 6월에 진나라 군사는 조나라 군사를 쳐 성 두 개를 빼앗고 장교 네 명을 사로잡았다. 7월에 조나라 군사는 보루를 쌓고 지켰지만 진나라가 다시 그 보루를 쳐 장교 두 명을 사로잡고 진영을 깨트린 후 서쪽 보루를 빼앗았다. 염파는 더욱 보루를 굳게 쌓고 지킬 뿐이었다. 진나라가 자주 공략했지만 조나라는 응전하지 않았다. 조나라 왕은 염파가 응전하지 않는다고 여러 번 꾸짖었다. 그 틈을 노려 진나라 재상 응후(범수를 가리킨다)는 천금을 들려 조나라 사람을 보내 이간책을 썼다.
“진나라가 무서워하는 것은 오직 마복군(조나라 명장 조사)의 아들인 조괄이 장군에 오르는 것이다. 염파는 대응하기가 수월해 곧 항복할 것이다.”
조나라 왕은 염파가 자주 패하매 손실이 크고 성을 튼튼히 쌓았다고는 하나 응전하지 않아 진노하고 있었다. 그런 때 진나라의 이간질 하는 말을 듣고 왕은 곧 염파를 대신해 조괄을 장수로 삼고 진나라를 치게 했다. 진나라는 조괄이 장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무안군 백기를 몰래 상장군으로 삼고 왕흘을 부장으로 삼았다. 그런 뒤에 군중에 영을 내려 무안군이 상장군이 된 사실을 누설하는 자는 목을 벨 것이라고 말했다.
조괄은 임지에 도착하자 바로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를 공격했다. 진나라 군사는 패주하는 척하면서 두 갈래로 갈라져 적을 기습할 계획이었다. 조나라 군사는 승세를 타고 추격하여 진나라 성까지 다가갔으나 방비가 견고하여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때 진나라 복병 2만 5천명이 조나라 군사의 후방을 끊었고, 또 다른 복병 5천 명은 조나라 군사와 성 사이를 끊었다. 조나라 군사는 결국 둘로 갈라져 물자공급이 끊어지고 말았다. 진나라는 날랜 군사를 풀어 공격에 나섰다. 전세가 불리해진 조나라 군사는 성곽을 쌓고 굳게 지키면서 원군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진나라 왕은 조나라 군사의 물자 보급로가 끊어졌다는 말을 듣고 친히 황하 이북으로 들어가 백성들에게 각기 작 일급을 주었다. 그리고 13세 이상이 된 자를 징발하여 대거 장평으로 보내 조나라의 원군과 물자 공급을 차단했다.
9월이 되자 조나라 군사는 16일 동안이나 식량이 끊겨 서로 잡아먹기에 이르렀다. 마지막 활로를 찾기 위해 군사를 네 대로 나누어 진나라 성을 너댓 번 공격했으나 나아갈 수가 없었다. 이에 장수 조괄은 정병을 끌고 직접 백병전을 지휘했으나 진나라 군사가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 이로써 조괄의 군사는 패했고 병사 40만이 무안군 백기에게 항복했다. 백기는 이렇게 말했다.
“이전에 진나라가 상당을 함락했을 때 상당 백성들은 진나라 백성이 되는 것을 꺼려 조나라로 갔다. 조나라 군사들은 속마음을 알 수 없으니 모두 죽이지 않으면 장래 반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이에 백기는 속임수를 써서 조나라 군사들을 모두 생매장하고 나이 어린 240명 만 남겨 조나라로 보냈다. 그때 참수당하고 포로로 잡힌 자가 45만 명에 달했으므로 조나라 사람들이 모두 크게 놀라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소왕 48년 10월, 진나라는 다시 상당군 평정에 나섰다. 진나라 군사는 두 대로 나뉘어 왕흘은 피뢰를 쳐 함락했고, 사마경은 태원을 평정했다. 한나라와 조나라는 두려운 나머지 소대를 보내 많은 선물을 바치고 진나라 재상 응후를 달랬다.
“무안군께서는 조사 장군의 아들인 조괄을 죽였지요?”
“그러하오.”
“이제 곧 한단을 포위할 것입니까?”
“그러하오.”
소대가 말했다.
“조나라가 멸망하면 진나라 왕은 제왕이 될 것이고, 무안군께서는 삼공(三公 천자를 보위하는 태사·태부·태보를 가리킨다)의 자리에 오를 것입니다. 무안군이 진나라를 위해 싸워 빼앗은 성은 70여 개로, 남쪽으로는 언과 영과 한중 땅을 평정했고, 북쪽으로는 조괄의 군사를 무찔렀습니다. 주나라 건국에 크게 이바지한 주공, 소공, 태공망의 공적도 이에 미치지 못합니다. 이제 조나라가 망하고 진나라 왕이 제왕이 되면, 무안군께서는 분명 삼공이 될 것입니다. 그때 공께서는 그의 아랫자리에 있는 것을 참을 수가 있겠습니까? 비록 공께서 싫어하신다 해도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진나라는 지난 날 한나라를 쳐 형구를 포위하고 상당을 곤경에 빠트렸습니다. 그때 상당 백성들은 조나라에 귀속했는데, 천하의 백성들이 진나라 백성이 되기를 꺼리는 것은 오래전부터입니다. 지금 조나라를 함락한다면 북쪽 백성들은 연나라로 들어가고, 동쪽 백성들은 제나라로 들어가고, 남쪽 백성들은 한나라와 위나라로 들어갈 것인즉, 공이 얻게 되는 백성들은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차라리 한나라와 조나라 땅을 할양해 받으시고 더 이상 무안군의 공적을 크게 하지 않는 것이 나을 줄 압니다.“
이에 응후가 진나라 왕에게 말했다.
“진나라 군사들은 싸움에 지쳐 있습니다. 한나라와 조나라가 땅을 바쳐 화친을 청하니 이를 받아들여 허락하시고 군사를 쉬게 하십시오.”
진나라 왕은 이 말을 받아들여 한나라의 원옹과 조나라의 여섯 성을 취하고 화친을 맺은 후 정월에 군사를 모두 물렸다. 그 후 백기와 응후는 사이가 나빠졌다.
그해 9월, 진나라는 군사를 내어 오대부 왕릉을 보내 조나라의 도읍인 한단을 치도록 했다. 이때 백기는 병에 걸려 따라가지 못했다.
소왕 49년 정월, 왕릉이 한단을 공격했으나 용이하지 않았다. 진나라는 군사를 더 보내 왕릉을 도왔으나 오히려 장수 다섯을 잃었다. 그 무렵 백기의 병이 다 나았다. 그러자 왕은 왕릉 대신 백기를 장수로 삼으려 했는데, 백기가 말했다.
“한단은 공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제후들이 원군을 보내면 하루에 당도할 수 있습니다. 제후들은 오랫동안 진나라를 미워했습니다. 진나라는 장평에서 조나라 군사를 대패시켰지만 병졸은 반 이상 잃었고, 나라 안의 병력은 텅 비었습니다. 한단을 치는 것은 멀리 산과 강을 건너 남의 나라의 도읍을 치는 일입니다. 조나라가 안에서 응전하고 제후들이 밖에서 쳐들어온다면 진나라가 패하는 것은 정해진 이치입니다. 이 일은 아무리 보아도 좋지 않습니다.”
진나라 왕은 백기가 자신의 명령을 듣지 않자 다시 응후를 시켜 간청했다. 백기는 끝까지 사양하다가 결국 병을 핑계로 집에 들어앉았다. 진나라 왕은 왕릉 대신 왕흘을 장수로 삼아 8,9월에 한단을 포위한 후 공격에 들어갔으나 실패했다. 게다가 초나라 왕은 춘선군과 위나라 공자 신릉군에게 수십만의 군사를 내주어 진나라 군사를 치게 했다. 이에 진나라는 크게 피해를 입었다. 백기가 말했다.
“왕이 내 말을 듣지 않더니 결국 이렇게 되었는가.”
진나라 왕이 이 말을 듣고 노하여 다시 백기를 기용하려 했으나 그는 병이 위독하다고 했다. 다시 응후가 청했지만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백기는 병졸로 강등되어 음밀로 유배되기에 이르렀으나 병 때문에 떠날 수가 없었다.
석 달 후, 제후들이 진나라 군사를 포위 공격하자 진나라 군사는 패전을 거듭하며 물러났다. 도성인 함양에는 구원을 요청하는 파발마가 하루가 멀다 하고 도착했다. 이러자 진나라 왕은 백기에게 사람을 보내 함양에 머무르지 말라고 전했다. 백기가 함양 서쪽 성문을 나와 십 리 떨어진 두우에 이르렀을 때였다. 진나라 소왕이 응후를 비롯한 뭇 신하들과 의논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백기가 음밀로 떠날 때 속으로 복종하지 않고 원망의 말을 했소.”
이에 진나라 왕은 사자를 보내 백기에게 검을 내리고 자결을 명했다. 백기는 검을 빼어 목에 댄 채 말했다.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잠시 후 그는 말을 다시 이었다.
“나는 원래 죽어야 할 몸이다. 지난날 장평 싸움에서 항복한 조나라 군사 수십만 명을 속여 생매장했으니 죽어도 마땅하다.”
마침내 백기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니 진나라 소왕 50년 11월의 일이다. 진나라 사람들은 큰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죽은 그를 동정하여 모든 향읍에서 제사를 지내주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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