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의열전(張儀列傳) (3)
초나라를 떠난 장의는 그 길로 한나라로 가 한나라 왕을 만난 다음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의 지세는 험한 터라 대부분의 백성들이 산지에서 살고 있으며 걷어 들이는 곡식 또한 콩이나 보리여서 주로 콩밥이나 콩잎을 끓인 국을 먹고 삽니다. 그래서 한 해만 흉년이 들어도 백성들은 숨지거나 겨조차도 배불리 먹을 수가 없게 됩니다.
한나라의 땅은 9백리도 되지 않고 두 해를 먹을 수 있는 식량조차 없습니다. 대왕의 군사는 모두 동원한다 해도 30만에 불과하며 여기서는 잡역부와 짐꾼, 취사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변경의 역참이나 성을 지키는 수비병을 빼면 병력은 겨우 20만에 불과합니다.
반면 진나라는 무장한 병력이 백만 명이나 되고 전차가 천 승, 기마가 만 필입니다. 또한 맨발에 투구를 쓰지 않고도 돌격하는 병사도 있고, 화살이 날아다니는 가운데서도 창을 휘두르며 적에게 달려가는 병사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진나라 군사와 산동의 군사를 비교해 보면 마치 저 제나라의 용사인 맹분(孟賁)과 겁쟁이 같습니다. 진나라 군사가 산동의 군사를 강한 힘으로 누르는 것은 마치 저 진나라 무왕 때 용사인 오획(烏獲)이 어린아이를 상대하는 것과 같은데, 맹분과 오획 같은 용사가 복종하지 않는 약소국을 치는 것은
마치 3만 근의 무게로 새알을 누르는 것과 같으므로 어찌 무사할 수가 있겠습니까?
만일 대왕께서 진나라의 신하가 되지 않는다면 진나라는 군사를 보내 의양을 점령하고 한나라의 중심부를 차단할 것이며, 동쪽으로는 성고와 형양을 취할 것인즉, 그리되면 별궁인 홍대궁과 왕의 동산인 상림원은 더 이상 왕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진나라가 성고로 통하는 길을 막고 중심부를 차단한다면 왕의 나라는 분열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 진나라를 섬긴다면 태평무사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위태로우니 스스로 화를 만들어 놓고 대가를 바라는 것은 얕은 계략이자 원한만 깊어지게 할 뿐입니다. 진나라를 거스르고 초나라를 따른다면 망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습니다.
대왕을 위한 계책으로는 진나라를 돕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진나라가 가장 바라는 것은 초나라를 악화시키는 일이며 초나라를 악화시킬 나라로는 한나라가 가장 적격입니다. 이는 한나라가 초나라보다 강해서가 아니라 지세가 거기에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대왕께서 서쪽으로 진나라를 섬기고 남쪽으로 초나라를 친다면, 진나라 왕은 분명 기뻐할 것입니다. 초나라를 공격해서 그 땅을 점령하고 화를 복으로 바꿔 진나라의 환심을 산다면 이보다 더 좋은 계책은 없을 것입니다.”
한나라 왕은 장의의 계책을 따르기로 했다. 장의는 진나라로 돌아와 이를 보고했는데, 진나라 혜왕은 다섯 고을의 영주로 봉하고 무신군이라 불렀다.
진나라 혜왕은 이어 장의를 동쪽에 있는 제나라로 보내 민왕을 설득토록 했다. 장의는 민왕에게 말했다.
“천하의 강국 중에 제나라에 미치는 나라는 없습니다. 대신들과 왕족들은 모두 번성과 부귀와 안락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왕을 위해 계책을 바치는 자들은 모두 한때의 사리사욕에 이끌려 백대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합종론자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제나라의 서쪽으로는 강한 조나라가 있고, 남쪽으로는 한나라와 위나라가 있으며, 뒤로는 바다가 있습니다. 땅은 넓고 사람은 많으며 군대는 강해지고 용맹하니, 진나라가 백 개라도 제나라를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 대왕께서는 그 말이 현명하다고 하면서 그 실질은 짚어보지 않고 있습니다.
합종론자들은 붕당을 만들어 합종을 두둔할 뿐 옳지 않다고 말하는 자가 없습니다. 신은 제나라와 노나라의 세 차례 싸움에서 노나라가 세 번 이겼음에도 망하고 말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노나라는 전쟁에서 승리를 했다는 명성은 얻었지만 실재로 망하고 말았는데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것은 제나라는 대국인 반면 노나라는 소국이었기 때문입니다.
진나라와 조나라도 이와 같습니다. 진나라와 조나라는 황하와 장하에서 두 차례 싸움을 했지만 조나라가 두 번 이겼습니다. 그러나 네 차례에 걸친 싸움에서 조나라의 전사자는 수십만에 달했고, 도읍인 한단은 간신히 지켜냈을 뿐입니다. 조나라는 승리의 명예는 얻을 수 있었지만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진나라는 강하고 조나라는 약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진나라와 초나라는 공주를 시집보내고 며느리를 맞아들이는 사돈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한나라는 진나라에게 의양 땅을 받쳤고, 위나라는 황하의 서쪽을 내놓았으며, 조나라는 면지에서 입조하여 하간의 땅을 떼어 진나라를 섬기고 있습니다. 대왕께서 만약 진나라를 섬기지 않는다면 한나라는 한나라와 위나라를 앞장세워 제나라 남쪽을 칠 것입니다. 또한 조나라의 군사를 총동원하여 청하를 건너 박관으로 쳐들어갈 것입니다. 그리되면 임치와 즉묵은 더 이상 대왕의 땅이 될 수 없습니다. 나라가 일단 공격을 받게 되면 진나라를 섬기려 해도 섬길 수 없게 되나니 대왕께서는 이 점을 유념해 주십시오.“
제나라 왕이 말했다.
“제나라는 외진 곳에 있는 별 볼 일 없는 나라로 동쪽 바닷가에 숨어 있다 보니 지금까지 사직을 위한 장구한 계책을 들어본 적이 없었소.”
이에 왕은 장의의 계책에 따르기로 했다.
장의는 제나라를 떠나 서쪽으로 가서 조나라 왕을 설득했다.
“진나라 왕께서는 저를 사신으로 보내 대왕께 계책을 전하라 하셨는 바, 대왕께서는 천하의 제후들을 경영하여 진나라를 배척하셨습니다. 그로 인하여 진나라는 13년 동안이나 감히 함곡관을 나오지 못했고, 대왕의 위엄은 산동의 여러 나라에 두루 미쳤습니다. 우리 진나라는 이를 두려워하여 갑옷을 수선하고 병기를 갈고 거마를 정비해 왔습니다. 또한 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히고 농사에도 힘써 식량을 비축했습니다. 국정을 지키고 나라 안의 일을 걱정하시느라 저희는 감히 다른 일을 도모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대왕께서 진나라의 허물을 꾸짖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진나라는 이제야 대왕의 덕에 힘입어 비축해 둔 힘을 이용해 파와 촉 땅을 쳐서 한중을 병합했습니다. 또한 동주와 서주를 손에 넣어 구정을 옮겨 놓았고, 백마의 나루터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진나라는 비록 변방에 있는 나라이지만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마음속으로 분기와 원한을 품어왔습니다. 지금 진나라 군사는 비록 지쳐 있지만 면지에 진을 치고 있는데, 장차 황하와 장하를 넘어 파오를 차지하고, 한단성 아래에서 대왕의 군사와 대진하여 상나라 주왕을 정벌할 것처럼 사리의 그릇됨을 말씀드립니다. 이에 저를 사신으로 보내 이 일을 삼가 말씀드리도록 하였습니다.
대왕께서 합종의 이로움을 믿게 된 것은 소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소진은 제후들을 현혹하여 옳은 것을 그른 것으로, 그른 것은 옳은 것으로 왜곡하여 말하고, 제나라를 뒤집어엎으려고 하다가 일이 발각되자 스스로 저잣거리에서 거열형을 받았습니다. 이런 자가 천하를 하나로 묶으려 했으니 실패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초나라는 이제야 지나라와 형제의 나라가 되었으며, 한나라와 위나라는 동쪽의 신하국이라 칭하며 진나라를 섬기고 있습니다. 제나라는 물고기와 소금이 나는 땅을 받쳤습니다. 이는 조나라의 오른팔이 잘린 것과 같은 것으로 대저 오른팔이 잘린 채 남과 싸우려 하거나 동지도 없이 고립된 채로 안전을 구한다 해서 그것이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이에 진나라가 세 장군을 보낸다면, 1군은 오도를 차단하고 제나라에게 알려 군사를 일으켜 청하를 건넌 후 조나라 한단 동쪽에 주둔시킬 것입니다. 또한 2군은 성고에 진을 치고 한나라와 위나라 군사들로 하여금 황하 서쪽에 주둔시킬 것입니다. 나머지 3군은 면지에 주둔시킬 것입니다. 이렇게 진나라 · 제나라 · 한나라 · 위나라 네 나라는 하나가 되어 조나라를 칠 것입니다. 조나라가 항복하면 그 땅은 반드시 네 나라가 나누어 가질 것입니다.
이 일을 굳이 숨기지 않고 말씀드리는 것은 대왕을 위한 계책으로 진나라 왕과 면지에서 화친을 맺는 것 보다 더 나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왕께서는 진나라가 먼저 공격해 오는 일이 없도록 방책을 세워주시기 바랍니다.“
조나라 왕이 말했다.
“선왕의 숙후 때는 군왕의 아우인 봉양군이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렀을 뿐 아니라 전횡을 일삼았소. 과인은 궁에서 지내면서 사부의 가르침을 받고 있었는데 나라의 계책에는 관여하지 않았소. 선왕이 세상을 뜨자 과인은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종묘의 기제사를 받들었소. 그러나 내심 나라를 어떻게 경영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소. 과인은 제후들이 하나로 연합하여 진나라를 섬기지 않은 것은 국가의 장구한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소, 그러나 이제 마음을 바꾸어 종래의 잘못을 사과하고 땅을 떼어 바쳐 진나라를 섬기려고 했소. 그리하여 이제 막 수레에 말을 매 진나라 조정으로 가려던 참에 그대의 현명한 가르침을 듣게 된 것이오.”
이로써 조나라 왕은 장의가 말한 대로 그 뜻을 받아들였다.
이어 연나라로 간 장의는 소왕(昭王)을 설득했다.
“대왕께서는 조나라와 가깝게 지내시는데, 옛날 조양자라는 사람은 자신의 누이를 대(代)나라 왕의 부인으로 시집을 보낸 바 있습니다. 이는 대나라를 병합하려는 야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대나라 왕과 구주산의 요새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는 한편, 대장장이에게 부탁하여 사람을 칠 수 있는 자루가 긴 쇠국자를 만들게 했습니다. 이윽고 대나라 왕과 술을 마실 때 그는 은밀히 요리사에게 말하기를 ‘술자리가 무르익으면 뜨거운 음식을 올리면서 국자로 대나라 왕을 치라’고 일러두었습니다. 술자리가 한창 흥겨울 무렵, 요리사는 조양자가 말한 대로 뜨거운 국을 올리고 술을 따르는 척 하다가 국자를 거꾸로 하여 대나라 왕을 쳐 죽였습니다. 대나라 왕의 머리는 박살이 나 땅바닥에 나뒹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그의 누이는 비녀를 갈아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지금도 마계산이라는 이름이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대나라 왕의 죽음은 천하에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조나라 왕이 이처럼 무도하고 인정이 없다는 것은 대왕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가 조나라 왕과 친하려고 하겠습니까? 일찍이 조나라는 군사를 보내 연나라를 쳐 도읍을 포위한 후 대왕을 위협했습니다. 그때 대왕께서는 열 개의 성을 떼어주고는 사과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조나라는 면지에서 입조하여 하간 땅을 바치고 진나라를 섬기고 있습니다. 만약 대왕께서 진나라를 섬기지 않는다면 진나라는 운중과 구원으로 군사를 보내 조나라와 함께 연나라를 칠 것입니다. 그리되면 역수와 장성은 대왕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연나라 왕이 말했다.
“다행히 그대에게서 가르침을 얻었으니 항산 기슭에 있는 다섯 개 성을 바치면서 진나라를 섬기겠소.”
이로써 연나라 왕은 장의의 뜻을 받아들였다. <다음 호에 계속>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