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송하훈
서예원은 한성에서 태어난 장수였다. 1573년 무과에 급제해 선전관이 되었고, 이어 나주판관, 도총부도사 겸 비변량, 보성군수, 회령도호부의 보을하진첨절제사가 되었는데, 그 때 군사를 많이 잃은 죄로 종성(鍾城)에 유배되기도 한 인물이었다. 적정을 몰래 살피기 위해 여진 땅 깊숙이 들어갔다가 그만 발각된 바람에 군사를 잃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이탕개 난 때 백의종군하면서 공을 세워 곽산 군수가 되었다. 선조 24년 김해부사로 부임하였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적과 공방전을 벌이다가 패주하였는데, 이 일로 삭탈관직을 당했다,
그의 전력은 장수로서의 용맹을 갖지 못했지만 의병장 김면(金沔)과 협력하여 제1차 진주성 싸움에서 김시민을 도와 왜적과 싸운 경험이 있었다. 1593년 진주목사로 부임한 그는 용감무쌍하면서도 유능한 장수였던 황진이 순국하자 그런 서예원이 순성장이 된 것이었다.
역시 서예원은 겁이 많은 것도 많은 것이었지만 벌써부터 병사들로부터 비웃음을 사고 있었다. 명색 장수란 사람의 거동부터가 그러했다. 29일 새벽부터 비가 오는데도 왜적은 맹공격을 해왔는데, 군사들 역시 몇 번의 싸움에서 실전 경험이 있는 탓인지 잘도 싸웠다. 마치 우리 속에 갇혀 있다고 해서 함부로 덤빌 수 없는 맹수처럼 왜적을 물러나게 했다.
한바탕의 싸움이 끝났는데도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렸다. 병사들은 비를 맞으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는데, 전립도 쓰지 않은 채 순성장 서예원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새벽부터 일어난 싸움에 얼굴도 내비치지 않은 그가 잠시 싸움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후줄근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한심하다 못해 도망이나 치는 순성장 서예원을 보다 못한 병사들이 고개를 외로 틀며 탄식을 거듭했다.
“참으로 꼴불견이구려. 모든 병사와 백성들이 첫새벽부터 죽기 살기로 싸우는 동안 순성장은 대체 어딜 갔단 말이오?”
병사들의 사기가 염려된 도절제 최경희가 앞을 가로막고 꾸짖듯 말했다. 어제 순성장에 임명되었는데도 하룻밤을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그는 밤새 어디서 숨어 있다가 간신히 얼굴을 내민 것이었다. 경상우도병마사였던 최경희는 김천일과 함께 진주성에 들어와 도절제를 맡았는데, 황진의 순국으로 말미암아 순성장 자리가 비게 되자 서예원을 임명시킨 것이 결국 그 사단이 일어나고 말았다.
최경희는 칼자루를 붙잡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진다는 것은 필패를 의미하는 일이었다. 적과 싸우는 일은 이기려고 하는 것이지 지려고 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최경희는 더욱 화가 치밀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서예원을 단칼에 베어버릴 수도 있지만 이 마당에서 그를 친다는 것도 군사들의 사기에 그리 좋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의 하룻밤 도망친 사실을 묵과한다는 것은 안 될 일이어서 곧바로 장윤을 순성장으로 임명했다. 황진 다음으로 명망이 있는 장윤은 무인출신이었다. 기대 이상으로 그는 잘 싸워주었고, 군사들 역시 그를 잘 따라서 천만다행이다 싶었는데, 진주성이 끝내 무너지고 마는 전조였을까. 장윤은 앞장서서 왜적과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장윤 순성장이 전사하자 왜적은 강하게 쳐들어왔다. 승기를 잡았다 생각한 왜적은 말 그대로 개미떼였다. 자시에 동문과 잇닿은 옹성을 무너뜨린 왜적은 성벽 한 부분이 무너지자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도 성안으로 들이닥쳤다.
지옥도(地獄道).
싸움의 장면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옥 그대로였다. 이제 활이 필요 없는 백병전이었다. 칼로 베고 창으로 찌르고 발로 걷어차는 백병전은 악에 바친 싸움이었다. 잠시 왜적들이 물러나는가 싶더니 이번엔 김천일이 지키고 있는 북문이 무너졌다. 동문에서 백병전이 일어났듯이 북문에서는 왜적들이 사다리를 타고 기어오르면서 성문을 거대한 목재로 부쉈다. 돌을 내리 던지고 뜨거운 물을 마구 끼얹어도 기어오르는 왜적의 수는 끝이 없었다.
결국 북문이 무너지자 와아, 하는 함성과 함께 왜적들이 물밀 듯이 성안으로 들어왔다. 싸울 전의를 상실한 군사들은 우르르 김천일이 지휘하고 있는 촉석루로 몰렸다. 그 때 촉석루를 잽싸게 빠져나온 진주목사 서예원은 잽싸게 숲 속으로 피했지만 왜적의 칼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칼 한 번 휘두르지 못한 채 처참히 살해당한 것이었다.
한편, 김천일과 그의 아들 상건(象乾), 최경희, 고종후 등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란히 임금 선조가 있는 북쪽을 행해 절을 한 다음 최경희가 먼저 남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우리도 가자꾸나.”
이번엔 김천일이 칼을 붙든 채 남강으로 몸을 던졌고 이어 아들 상건도 뒤를 이었다. 고종후 역시 두 부자가 했던 것처럼 힘껏 발끝을 차고 남강으로 몸을 던졌다.
진주성이 무너지자 성안에 있는 백성들은 때마침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살길을 찾아보았지만 가는 길은 남강뿐이었다. 살아서 치욕을 당하느니 죽어서 영혼이나마 지키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갈팡질팡하던 백성들이 줄을 이어 남강으로 몸을 던지기 시작했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황대중은 결국 진주성이 무너지고 말자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성을 필사적으로 빠져나왔는데, 다행히도 그에게는 애마가 있었기에 탈출할 수가 있었다.
9일간의 혈투 끝에 진주성은 무너진 셈이었다. 왜적도 많이 죽었지만 조선의 군사 역시 전멸하였고, 성안의 백성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무참히 죽어갔다. 왜적들은 이를 갈며 원수를 갚고자 진주성을 공격했고, 그들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었다. 그래서 성안의 살아있는 것, 그리고 보이는 것은 모두 죽였고, 불살라졌다. 잿더미 밖에 남지 않은 진주성이 그 터전조차 아예 깡그리 없애고자 왜적들은 성벽의 돌들을 죄다 허물어뜨렸다.
그러나.
마지막 진주성이 함락했을 때 한 떨기 꽃이 아름답게 피었으니 그것은 논개라는 기생이었다. 7월 2일. 왜적들은 승리를 자축하는 잔치가 벌어졌다. 거기에 논개라는 기생이 참석해서 온갖 아양을 다 부리며 왜적의 장수들에게 술을 권했다. 누구 하나 왜적에게 활 한 방 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승리였으므로 그들은 만취했고 정신이 오락가락 할 만큼 취흥에 젖어 있었다.
논개는 이미 사랑하는 남편 최경희가 왜적의 손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원수들을 위해 춤을 추고 아양을 할 이유는 털끝만큼도 없었다. 남편을 죽인 왜적의 장수 하나만이라도 죽일 수 있다면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논개가 춤을 추자 여러 장수들이 괴성을 지르며 그녀와 함께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었다. 그 중에서 유독 게야무라 로구스케 장수가 논개를 보듬으며 춤을 추자 논개는 그를 촉석루 아래 큰 바위로 유인했다. 게야무라 로구스케 장수가 훌쩍 큰 바위로 뛰어들었다. 큰 바위 밑으로는 남강이 흐르고 있었다. 수많은 조선인을 삼킨 남강이었다.
논개는 반가운 서방이라도 만난 듯 그를 끌어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숱한 전쟁터에서만 지낸 게야무라 로구스케는 예쁜 여인이 자신을 끌어안자 더욱 신이 났다. 다음 순간, 논개는 손이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열 손가락 모두 반지를 낀 두 손을 은근히 힘을 주었다. 그리고 힘껏 게야무라 로구스케를 남강에 밀어붙이며 함께 뛰어내렸다. 눈 깜박할 순간이었다. 두 사람은 한 차례 물 밖으로 솟구치는 것 같더니 이내 조용해져 버렸다. 남강이 두 사람을 삼킨 후에도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유유히 흘렀고, 그 장면을 지켜본 왜적들은 어이없는 상황을 보면서도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황대중은 그렇게 무너진 진주성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고, 그 길로 이순신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진주성에서 죽은 조선인은 6만에 가까웠으나 탈출에 성공한 사람은 황대중을 비롯해서 겨우 수 백에 불과했다.
황대중은 숨어서 이동했고 밤에는 빠르게 말을 몰아 이순신 관아를 향해 내달렸다. 하룻밤을 꼬박 달렸을 때 먼동이 틀 무렵 강 하나가 길을 막았다. 도망치듯 진주성을 빠져나온 자신이 문득 부끄럽고 죽은 김천일 장군이며 여러 조선군사들에 면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장수와 모든 군사와 모든 백성들이 왜적들의 조총과 칼날에 죽고 말았는데도 자신만이 살아서 도망을 가고 있다는 사실이 뼈를 바늘로 쿡쿡 찌르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나를 붙들지 마시오.”
황대중은 말에서 내린 다음 성큼성큼 강 속으로 들어가며 함께 진주성을 빠져나온 정기수(鄭麒壽)에게 말했다.
“황공, 이게 무슨 일이오?”
“요행히 목숨을 구했으나 많은 군사와 백성들이 죽은 마당에 나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는 내가 부끄러워서 목숨을 끊을까 하오.”
“무슨 짓이요, 황공! 아직 황공에게는 검과 말이 있질 않소? 그 검과 말을 다 써보지 못하고 죽는단 말이오? 아무런 공적도 없이 죽는 것 보다는 왜적을 물리치며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 것이 옳은 일 아니겠소?”
“알겠소. 하마터면 어리석게 목숨을 끊을 뻔 했소이다. 내 이 목숨을 왜적을 무찌르다 죽을 것이오.”
“어서 이통제에게 달려갑시다. 가서 이통제와 함께 이번 전투의 원수를 갚읍시다.”
황대중은 강 속에서 다시 나왔다. 그리고 몇몇의 군사와 함께 이순신이 있는 곳을 향해 꼬박 이틀을 달렸다.
“아니, 이게 뉘시오?‘
이순신이 황대중을 보자 덥석 껴안으며 반갑게 맞이했다.
황대중은 관아의 뜰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대성통곡을 했다.
“만나자마자 어찌된 일이요?”
한참동안 눈물을 흘리던 황대중이 그동안 진주성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소상히 말했다.
그러자 이순신은 황대중의 입에서 진주성 함락이라는 말이 나오자 길게 한숨을 쉬고 나더니 북쪽을 향해 내 번 절을 한 다음 하늘을 향해 울부짖듯이 빌었다.
“하늘이시여! 무엇이 부족해서 이토록 고통을 주시나이까? 이 나라 조선의 백성들을 굽어 살피소서.”
이순신은 간신히 이렇게 빌고 나더니 그동안 과로를 한 탓인지 그만 누워버렸다. 열이 펄펄 끓으면서 땀을 비 오듯 흐르는 이순신은 고통이 심한지 신음소리까지 냈다.
“장군, 힘을 내셔야 합니다.”
황대중은 정성을 다해 탕약을 달이는 등 온 정성을 다해 이순신을 치료했다. 하루 종일 바깥을 나오지 않고 이순신이 신음을 하는 동안에도 왜선 3척이 코앞까지 나타나 큰 소리로 외쳐댔다. 이순신이 몹시 아픈 사실을 아는 모양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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