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신문 사회면에 한번 실렸던 이야기 하나를 여기에 밝혀봅니다.
과거 일본에서 도쿄 올림픽이 열리게 됐을 당시 스타디움 확장을 위해 운동장 근처에 사는 집들을 리모델링하게 된 일이 있었답니다. 한분은 집을 지은 지 3년밖에 되지 않았으나 지붕을 개량키 위해 인부들을 동원해 지붕을 헐기 시작하는 중 지붕 난간에 꼬리 쪽에 못이 박힌 채 벽에서 꿈틀거리며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 도마뱀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되었답니다.
집 주인은 인부들을 불러 그 못은 언제 박았느냐고 물어보니 한결같이 집을 짓던 3년 전에 박은 것이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3년 동안이나 못에 박힌 채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 모두들 혀를 내둘렸답니다.
사람들은 이 신기한 전말을 알아보기 위해 공사를 잠시 중단하고 도마뱀을 지켜보기로 했답니다. 그랬더니 다른 도마뱀 한마라가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도마뱀은 3년이란 긴 세월동안 못에 박힌 친구를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먹이를 가져다주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우리 인간도 한 세상을 살아가며 그런 진정한 친구가 당신 곁에 몇이나 있습니까? 저의 선친께서 하신 말씀의 이야기를 아직껏 잊지 않고 있는 내용이 있어 기억해 봅니다.
필자가 고등학교시절 하루 저를 불러 앉혀놓고 “너 가 가장 친하다는 친구가 몇이나 되는가?” 라고 묻기에 한 열 명은 될 것이라고 말했더니 “생사를 나눌 진정한 친구란 이 세상에 한두 명에 불과하단다,”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자기 집안에 애지중지하게 기르는 재산목록 제1호의 돼지 한 마리를 잡아 수례에 싣고 피가 줄줄 흐르는 돼지를 거적을 덮은 채 아들이 친하다는 친구들 중 한 친구 집에 가서 “내가 사람을 죽였는데 좀 숨겨 달라”고 해 보라는 말씀에 순서대로 차분히 친구들에게 딱한 부탁을 했으나 모두 거절당하고 마지막 한 친구 집에 가니 “큰일 저질렀구나 어서 수레를 끌고 안으로 들어오너라. 마루 밑에 숨겨주마. 그리고 너는 당분간 내 집 골방 속에 숨어 있거라. 밥은 내가 넣어주마…” 이 모습을 뒤에 숨어서 본 아버지는 나머지 친하다는 친구들을 다 불러다 말하기를 진정으로 친하다는 친구가 몇이나 되는지? 시험해 보기 위해서였다며 그 돼지 잡은 것으로 잔치 상을 벌렸다는 이야기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친구를 사귀더라도 진실한 친구를 만들라는 말씀이셨습니다.
독일에 어느 한 출판사에서 ‘친구’라는 단어를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말을 공모한다고 했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밤이 깊은 때 조용히 전화하고픈 사람, 나의 아픔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 나의 모든 것을 잘 이해해주는 사람, 등등 많은 내용을 보내왔으나 그 중에 1등한 분의 내용은 “온 세상이 나를 등지고 떠날 때 나를 찾아올 수 있는 사람”이었다지요.
인간들이 아름다움과 기쁨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사람의 아픔과 말 못하는 슬픔을 함께 울어주며 나누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친구 또한 아무나 될 수 있는 일이지만, 흔히 아픔과 슬픔까지 감싸 안을 수 있는 그런 진정한 친구가 아무나 될 수 없는 법이지요. 한 시절 잘 나가던 친구가 사업하다 부도나고 갈 곳 없이 방황하며 노숙생활 한다는 말을 들은 한 친구는 그리 가깝게 지내지도 않았던 친구였지만, 발 벗고 어려움을 대신 헌신해주는 그 모습에 감동했다는 예는 드문 일입니다. 진정한 친구는 어려움에 처해 봐야 안다고 하지요.
필자가 이민 갔다가 7년 전에 무작정 무일푼으로 고국에 살러 나와 주민등록증도 발급받지 못하고, 딱하게 지내던 당시 불알친구였던 한 친구에게 어렵게 몇 십 만원 돈 부탁을 해 본적이 있는데 첫마디가 통장번호를 적어주며 언제까지 입금시켜 줄 것인가? 부터 확인했습니다. 많은 돈이 아니라서 여수 넷째 여동생께 용돈을 얻어 바로 은행에 입금시킨 일이 있는데 10여일쯤 후에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서울 잠실 석천호수에 갔더니 첫 마디가 돈 부쳤냐는 것입니다. 입금 영수증을 보여주며 첫 인사가 넌 그거냐? 자식 너무한다하고 말았지만, 이후 이 친구와는 상종 못할 자라 전화마저 끊고 지냈으나 한편 내 잘못도 있어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 중입니다. 그와 반대로 또 한 고향 불알친구는 넉넉한 살림도 아니면서 자기 집 강원도 홍천에 한번 놀러와 달라기에 갔더니 후한 대접에 한국에 나와 힘들지 않으냐며 몇 십 만원을 손에 잡혀주는 그런 친구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 친구와는 전화 대화의 첫 마디가 “야이 산적아! 잘 사니?”로부터 시작합니다.
인간살이에는 기쁨을 두 배로 하고, 슬픔을 반으로 줄일 줄 아는 넉넉함을 가진 사람, 남은 사람들이 다 떠나간 후 마지막까지 그의 존재를 믿고 지켜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단 한 가슴에라도 그런 진정한 친구가 되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너무 완벽하고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람 곁에는 파리도 미끄러질세라 도망친다고 합니다. 흠 잡을 곳 없이 존경받는 대상일지언정 사랑의 대상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좀 어딘가 어수룩해도 믿음이 가고 진실성이 있고 따뜻한 사람이 더 호감(a good feeling)을 갖기 마련입니다.
어딘가 조금 부족한 사람은 나머지를 채워주는 벗들이 주위에 많지만, 너무 완벽한 사람은 존경의 대상은 될망정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적이 더 많은 이유가 남에게 고개 숙일 줄 모르기 때문이지요. 옛말에 아버지는 보물이요, 형제는 위안이며, 친구는 보물도 되고 위안도 된다고 ‘벤자민 프랠클린’이 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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