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욱의 도사리와 말모이 2
심쌀과 웁쌀
오곡(五穀)은 쌀·보리·콩·조·기장의 다섯 가지다. 그런데 대보름날 지어 먹는 오곡밥은 이 오곡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찹쌀·기장·차조·검정콩·붉은 팥으로 지은 밥이다. 헷갈린다. 또 오곡백과(五穀百果)라는 것이 있는데, 백과, 다시 말해서 백가지 과실은 무엇인가. 아무도 모른다. 백과라는 말이 백과사전에도 안 나온다. 아마도 이 말을 만든 사람은 곡식에 대해서는 환하지만 과실의 종류에 대해서는 생무지였던 것 같다. 그래서 오곡육과나 오곡칠과 하면 사람들이 육과나 칠과가 무엇 무엇이냐고 종주먹을 들이댈 테니까 그냥 두루뭉술하게 많은 과실이라는 뜻에서 백과라고 하고 만 것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오곡의 첫머리에 꼽히는 쌀은 끈기가 많고 적음에 따라 찹쌀과 멥쌀로 나뉘는데, 멥쌀은 다른 잡곡에 비교해 입쌀이라고도 부른다. 입쌀로 지은 밥이 이밥이다. 입쌀과 찹쌀을 아울러 ‘벼에서 나온 쌀’이라는 뜻에서 볍쌀로 부르기도 한다. 벼의 껍질인 겨는 겉겨인 왕겨와 속겨인 쌀겨로 나뉘는데, 벼를 갈아서 왕겨만 벗기고 속겨는 그대로 둔 쌀이 매조미쌀, 즉 현미(玄米)다. 벼를 찧어 속겨를 벗기고 깨끗하게 하는 것은 ‘쓿는다’고 하는데, 쓿어서 곱게 된 쌀을 쓿은쌀이나 아주먹이라고 한다. 한자말로 정백미(精白米)라고 하는 것이다. 뉘는 쓿은쌀 속에 섞인 벼 알갱이를 가리키고, 깨끗이 쓿지 않아서 겨가 많이 섞이고 빛이 깨끗하지 않은 쌀은 궂은쌀, 찹쌀에 섞인 멥쌀 비슷한 나쁜 쌀알을 물계라고 한다. 아주 귀중한 물건을 가리켜 금싸라기라고 하는데 싸라기는 쌀의 부스러기이다. 죽에 넣은 쌀은 심쌀, 잡곡으로 밥을 지을 때 그 위에 조금 얹어 안치는 쌀은 심쌀, 잡곡으로 밥을 지을 때 그 위에 조금 얹어 안치는 쌀은 웁쌀이라고 한다. 반대로 밥을 지을 때 쌀 밑에 놓은 잡곡은 밥밑이라고 한다. 밥밑콩은 밥에 두어 먹을 만한 좋은 콩을 말한다.
곡식의 알이 낟인데, 낟알은 껍질을 벗기지 않은 곡식의 알맹이, 날알은 낟알 하나하나를 가리킨다. 낟알기는 곡기(穀氣)와 같은 말이다. 낟가리는 낟알이 붙은 채인 곡식 단을 쌓은 더미, 볏가리는 볏단을 쌓은 더미, 담불은 높이 쌓은 곡식 무더기를 말한다. 마찬가지로 볏담불은 벼를 쌓은 무더기다. 타작할 때 나오는 벼낟알이 섞인 집북데기는 괴꼴이라고 하고, 벼를 되고 나서 마당에 처진 찌꺼기 곡식은 뒷목이라고 한다. 되질을 한 뒤 조금 남은 곡식은 뒷밑, 마질한 뒤 남은 것은 말밑이다. 이삭은 수확을 마치고 난 뒤에 땅에 처져 흩어진 곡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곡식의 꺼끄라기나 허섭스레기를 떨어지게 하는 일을 ‘뭉글린다’고 하고 뭉글려서 낟알이 깨끗한 것을 그림씨로 ‘몽글다’고 하는데, 잘 몽글리지 않아서 꺼끄러기가 많이 섞여 있는 벼는 껄끄렁벼, 반대로 몽글게 된 벼는 몽근벼라고 한다. 까라기벼는 까끄라기가 유달리 길게 붙은 벼를 말한다. 찧기 위해서 말리는 벼는 우케라고 한다.
보리에는 봄보리와 가을보리가 있는데, 봄보리는 일른 봄에 씨를 뿌려 첫여름에 거두고 가을보리는 가을에 씨를 뿌려 이듬해 첫여름에 거둔다.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 안 한다’는 말은 겉보리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보리, 껍질을 벗긴 보리는 쌀보리다. 보리를 일본말로는 무기라고 한다. 그래서 ‘보리 한가마’는 무기징역을 뜻하는 전중이(징역꾼)들의 은어다. 그런데 일본말 말고 우리 토박이말에도 무기라는 말이 있다. 겨울에 보리 따위를 심지 않고 놀린 밭에 봄에 일찍 심는 조를 무기라고 하는 것이다. 이걸 알면 전중이들이 ‘보리 한 가마’ 대신 ‘조 한가마’하게 될까 싶다.
▖기억에 둘 만한 도사리들
괴꼴: 타작할 때 나오는 벼낟알이 섞인 짚북데기.
뒷목: 벼를 되고 나서 마당에 처진 찌꺼기 곡식.
매조미쌀: 벼를 갈아서 왕겨만 벗기고 속겨는 그대로 둔 쌀, 현미(玄米).
무기: 겨울에 보리 따위를 심지 않고 놀린 밭에 봄에 일찍 심는 조.
우케: 찧기 위해서 말리는 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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