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해봉도예=방진영
흙의 손
도공 3대째 이어져 내려온 해봉도예 방진영(63) 씨
해봉 방진영씨는 옹기분야로 대한명인 제06호--53호이다. 칠량면 봉황에서 태어난 그는 할아버지 방응화씨가 옹기를 하셨고, 아버지 방봉용 씨가 또한 옹기를 하셨으며, 자신이 옹기를 했을 뿐 아니라 분청, 백자를 비롯해서 청자까지 모든 그릇을 만들어내는 그야말로 <흙의 손>이 되었다.
방진영씨가 태어난 곳은 옹기마을로 유명한 봉황마을이다. 60년대 까지만 해도 140여호 사는 봉황마을에 50여호가 옹기를 만들었다. 각지에서 모여든 탓인지 봉황마을은 성씨가 여러 가지다. 여러 성씨가 모여 사는 봉황마을은 옹기를 만들어 생계를 이어갔던 것이다. 화목 가마터 하나에 그 많은 옹기를 구워냈다. 구워낸 옹기는 풍선(風船)을 통해 남해안의 모든 섬과 심지어는 제주도까지 가서 팔았다. 사람이 걸어가도 천정이 닿지 않은 대형 옹기 가마터는, 큰항아리 두 개를 포개 얹어도 물론 천정이 닿지 않았는데, 불을 때기 시작하면 한 사람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2-3일간 지켜보았다. 불빛만 보고도 온도를 직감적으로 알아내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 육감으로 온도를 맞추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무 하나를 더 넣어라, 넣지 마라 하는 할아버지의 가마 불 때는 모습을 지켜보며 방진영씨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옹기와 친숙해졌다.
“옹기가 만들어진 유래를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나도 어렸을 때 들은 얘기다만, 옛날 산 속에 마을 하나가 있었단다. 그런데 어찌나 진흙이 많던지 나막신에 흙이 묻어 제대로 걸어 다닐 수가 없었단다. 그런데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나막신에 묻은 흙덩이를 떼어 손바닥으로 동글동글하게 만든 다음 불 속에 넣으니까 단단한 구슬이 되더란다. 그래 그것을 어린아이들에게 주니까 잘 가지고 놀더란다. 그 후로 무슨 생각을 하였던지 제법 큰 흙덩이의 속을 파서 구워보니까 조그만 항아리가 되더란다. 그 항아리에 곡식 종자도 넣어보고 곡식도 담아보니까 좀도 안 먹고 아무런 이상이 없더란다. 그래저래 하다가 옹기가 만들어졌다는 예기를 내 할아버지한테 들었다. 적어도 그 유래 정도는 너희들이 옹기를 만들든지 만들지 않던지 알아야겠기에 말해 두는 것이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9남매를 모두 앉혀놓고 말했다. 유일하게 방진영씨만 할아버지의 말을 귀담아들었고 9남매 중 홀로 열 여섯살 때부터 배웠다.
청자에의 입문
방진영씨는 줄곧 옹기만 만들던 중 양은플라스틱이 나오면서부터 시련이 찾아왔다.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옹기공장을 그만 두어야만 했다. 그 때 벌교 징광옹기에서 그를 불렀다. 지금도 유명하지만 그렇게 유명하게 된 것은 순전히 방진영씨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배불뚝이 항아리를 새롭게 만들었고, 그것은 곧 널리 알려짐과 동시에 잘 팔렸기 때문이었다. 거기에서 6년을 살았다. 부모님의 연세가 많아지면서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마을 주변의 전답도 벌어야하고 부모님 곁에서 힘도 되어주어야만 했다.
그 때 도강요 윤도현씨가 불렀다. 청자를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도강요에서 7-8년간 청자만을 빚기 시작했다. 하지만 뭔가 더 배워야만 될 것 같았다. 그는 이천에 있는 흥국도자기를 찾아가 1년 남짓 더 배웠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라고 판단될 만큼 자신감이 생겼다. 다시 도강요로 내려왔다. 그런데, 옹기 자체가 크기 때문에 그런지, 옹기만들기에 많은 세월을 보낸 탓인지 청자 역시 항아리만큼 큰 것을 빚었다. 그는 그 때 청자사업소에 발탁되어 기능직 7급으로 발령을 받았다. 마흔살이 되던 해였다.
그는 20여년간 청자사업소에서 정식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매일 3-40개씩의 청자를 만들었다. 오늘은 성형, 내일은 정형작업의 반복이었다. 성형실장으로 일하면서 청자장 이용희씨와는 산 만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한평생 흙과 더불어 보람 있게 살아온 세월이었다.
퇴직 후 고향 봉황에서 작업에만 몰두할 터
지난 해 그는 퇴직하자마자 도자기에만 몰두,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흙과 함께 살아온 마음과 육신이 흙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생리적 필연성인 셈이었다.
청자촌에서 요를 만들 생각을 했지만 풍광 좋은 바닷가, 죽도가 바라다 보이는 아름다운 봉황마을에서 깨끗하고 청결한 마음으로 애오라지 작품만을 만들고자 결심한 것이었다. 당잔 25평의 작업실을 지었다. 30평의 전시실도 지었고, 20평의 가마실도 만들었다. 그리고 화목가마를 만들기 위해 박차를 가했다. 그런 그에게 군청에서도 도움을 주었다. 아까운 재주가 그대로 묻혀서는 안 된다는 게 군 책임자의 말이었다. “이제 청자, 옹기, 분청, 백자 등 흙으로 만들어내는 모든 그릇을 제 손으로 만들어 볼 계획입니다. 이번 13회 청자문화제에 제 작품을 선보이지 못한 것이 미처 준비 못한 탓으로 아쉽지만 이제 준비는 거의 끝난 셈입니다. 9월 1일 오픈 할 계획이니까요.”그가 고향마을 앞바다를 가리키며 말했다.
“옹기를 만들 때 옹기 안쪽에 유약을 바르지 않고 만들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자연유약일지라도 1300도에 이르면 흙까지 익어버리므로 유약을 바르지 않으면 위생에 좋을 것 같아서입니다. 청자는 대형위주로 만들 생각입니다. 옹기를 만들어본 사람만이 큰작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청, 백자도 만들어서 원하는 분에게는 제공할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이제 맘 편한 분위기에서 남기고 싶은 작품을 위해 혼신을 다하는 것이 앞으로 제가 할 일입니다”
그의 표정은 봉황마을 앞바다의 잔잔한 수면처럼 몹시 평화로워보였다. 고향마을을 찍은 흑백사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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