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6시 내고향 프로에 나오자 여고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청춘을 함께 보낸 친구였지만 결혼 후 전화번호가 바뀌면서 연락이 끊어졌던 친구였다. 20대를 네 명이서 끈끈한 우정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다가 그 친구만 연락이 닿지 않아 늘 그리움이 남은 친구였다.
“현숙아 내 목소리 알겠니?”
그녀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내가 나와서 깜짝 놀랐다며 반가웠다고 말했다. 서로 못 본지가 삼십 년이 지났지만 전화목소리에 친구 모습이 그대로 그려졌다. 그녀는 내가 머리숱이 많은 곱슬머리에 눈이 유난히 맑고 복 코였다며, 잊고 있던 나의 옛 모습을 상기시켰다. 그녀의 말을 듣고서야 내가 복 코로 보였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랄까. 그녀는 나보다 4년 앞에 결혼하여 서울에서 살았다. 이후 나는 친구들 중 맨 나중에 결혼하여 고향과는 먼 곳에 와서 살게 되었다. 친한 친구들이 고향 전주와 도시에 정착한 반면, 나는 전남 강진에서 읍도 아닌 신전면에서도 고부고불 한참을 더 들어가는 시골마을로 온 것이다. 그 작은 마을에는 독거할아버지, 독거할머니, 조손가정이 있었는데, 특이점이라면 모두 개를 두 마리 이상 키우고 있어서 사람보다 개가 더 많은 곳이었다.
농부 총각과 결혼하여 따라온 곳이 강진이고 지금은 고향보다 더 찐 고향이 되었다. 도시에서만 자란 나는 농촌을 잘 몰랐었다. 어린모가 자라서 벼가 되고 어떻게 쌀이 되는지는 물론이고 보리밭의 어린 싹이 잔디인줄 알았을 정도로 농업에 까막눈이었다. 내게는 농촌의 모든 것이 신기한 것들이었지만, 농촌으로 간 나를 보는 시선은 우리 부모님부터도 곱지 않았다.
지금은 농촌에서도 여성들이 시간만 내면 다양한 취미를 배울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아졌지만 30년 전만해도 그런 혜택들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여성이 운전을 하지 못하면 농촌생활은 힘들다. 교통수단이 흔하지 않아 혼자서는 면에도 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도 면허를 따기 전까지 남편이 항상 동행을 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엔 남편과 함께 읍에 나왔다. 나는 꽃꽂이를 배웠고 남편은 사우나를 하는 일이 한 주의 힐링시간이었다.
신혼살림은 시골집에서 소박하게 시작했기에 누가 찾아온다고 하면 오지 못하게 했었다. 행여 나의 살림을 측은한 눈길로 볼까봐서 그랬다. 그러다가 6개월 후에야 할 수 없이 친정 부모님을 오시게 했다. 결혼 전 어머니는 “읍에다 방은 얻었냐? 얼마짜리를 얻었냐?” 라며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물었었다. 그렇게 몇 번을 다그치듯 물었을 때 나는 “읍에 집을 준비했으니 걱정 말라.”며 거짓말로 둘러댔다. 친정 부모님이 농촌을 떠나 전주로 온 이유가 시골에서는 아이들도 제대로 못 키우겠다는 두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부모님에게는 내가 알지 못하는 열 살 이상 차이 나는 큰 오빠가 있었다. 아홉 살 어느 날 밤, 갑자기 배가 아팠던 어린 소년은 병원이 너무 멀어서 가지 못했고, 다음날에서야 병원에 갔으나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 어머니는 그 뒤로도 아들을 셋이나 더 낳았지만 모두 잃고 말았다. 그러니 부모님에게 농촌이란 한만 남은 곳이었다.
내가 어머니가 되었어도 아들을 셋씩이나 잃은 친정엄마의 한을 어찌 헤아리겠는가. 아들에 대한 한을 품고 살았던 어머니는 내가 학교도 들어가기 전 어느 날 보따리 든 한 여자를 데리고 왔었다. 장에서 늦게까지 오갈 데가 없다 해서 데리고 왔는데, 어머니의 속마음은 그녀를 통해 아들을 하나 얻고 싶은 욕심뿐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우리 집에서 아버지와 합방을 하며 1년을 살았다. 어머니는 안방을 내주고 불을 지펴주며 오로지 그녀가 아들 하나 떡하니 낳아주기만을 고대하고 고대했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당연하게 받아 들였는지 하여튼 우리 집에는 딸들보다 더 어머니의 시중을 받는 여자가 생겼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그녀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어머니는 그녀를 내쫒아 버렸다. 그 후 어느 날 밖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대성통곡을 하시는 것 아닌가. 그 사유인즉, 내 쫓은 그녀가 어느 집에 가서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내가 조금만 참았더라면, 우리 집에서 아들을 낳았을 것인디, 내가 바보다. 내가 미련한 년이다.”
어머니는 자신을 탓하며 한을 풀어내듯 슬피도 우셨다. 그토록 아들을 원했던 어머니의 한풀이는 이제 늦게나마 얻은 두 딸을 잘 키우는 일이었다. 자식 복이 없는 자신의 팔자에서 행여 딸들마저 잃어버릴까 하는 두려움이 늘 복병이었다. 그런 막내딸이 농촌으로 시집간다니 내가 미웠을 게다. 농촌은 한만 남은 곳, 가난한 곳, 희망이 없는 곳, 어머니이게 농촌이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가시밭길이었다. 그렇게 자식 복이 없다고 한탄하셨던 어머니, 그 옆에 묵묵히 남자의 자존심으로 고달픈 삶을 이겨내신 아버지가 계셨다. 굴곡진 삶에서도 두 분은 서로 측은지심을 갖고서 서로 토닥이며 무척이나 금술이 좋았다.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온 친구의 가장 먼저 묻는 말이 너희 부모님 잘 계시냐는 안부였다. 늦게 딸 둘을 둔 부모님은 딸의 친구들을 자신들의 딸처럼 예뻐하셨다. 친구들이 집에 오기라도 하면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감자나 고구마, 옥수수를 찌게 하셨고, 어머니는 어김없이 마당에 있던 애호박을 따거나 솔을 뜯어와 직접 짠 들기름으로 전을 부쳐주셨다.
부모님의 생각과 달리 나의 농촌생활은 재미있었다. 농촌의 삶이 내겐 마치 소풍 같은 것이랄까. 모두가 일터로 나간 시간 베짱이처럼 혼자 보내는 시간들이 좋았다. 이후 내가 아들을 셋이나 낳자 부모님은 강진에 와서 함께 사시게 됐다. 그래서 나는 평생 친정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열 살 차이셨는데, 금술이 좋아서였는지 아버지도 92세, 어머니도 92세 똑같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그래, 우리부모님, 나 따라 강진에 와서 살다가 강진에 묻히셨다.”
농촌으로 시집가는 딸을 못내 미덥지 못해 하셨던 부모님은 결국 손자 셋을 키워주시며 아들에 대한 한을 푸셨다. 그래서 처녀 때부터 배워둔 플로리스트 자격증으로 강진읍에 꽃가게를 내고 꽃 강의를 다녔으며, 문학공부를 하여 3권의 책을 낸 소설가도 되었고, 지역신문 기자도 하고 있다. 게다가 강진읍 중앙에 4층 건물을 지어 커피숍도 차리며 세도 받는 남들 부러워하는 건물주도 되었다. 그뿐인가 총각 때부터 성실히 농사를 지어온 남편은 유기농 영농을 하는 영동농장영농조합법인의 대표가 되었다. 부모님은 그토록 걱정스럽던 농촌에 와서 성공해 가는 딸의 모습을 지켜보셨고, 나는 두 분의 마지막 임종을 지켜드렸다.
어느 날 6시 내고향 피디가 찾아와 강진읍의 청춘극장통에 위치한 지금의 내 카페베네강진점의 전신 40여 년 전부터 있던 ‘모란다방’ 그리고 내가 만든 ‘모란쌍화차’에 대해서 소개해 달라고 했다. 사실 강진의 모란다방은 강진읍 상가 역사의 중심에 있다. 강진 인근인 해남, 영암, 완도, 장흥에는 없던 유일한 극장, 청춘극장통에 강진극장이 있었던 것이다. 강진사람은 물론 인근 군민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 지나던 길목에 모란다방 있었고 강진읍의 중심통이어서 사람들이 북적거린 곳이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 중에는 모란다방에서 선보고 결혼하신 분들도 많다. 가끔씩 선보고 결혼하신 부부가 찾아오셔서 모란쌍화차를 마시며 그때의 추억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본다. 게다가 강진의 유지들이 모여 역사 문화 정치를 논하던 장소였다. 강진문학인들이 40여 년 전에 문학지 ‘모란촌’을 태동시킨 곳이 모란다방인데, 나도 소설가로서 모란촌 동인이며. 현재 강진문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어쩌면 정해진 곳을 찾아서 그리도 달려왔나 싶다. 몇 해 전 자주 오시는 어르신들이 모란다방 자리를 ‘강진의 돈줄’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자리가 또 강진 최초의 금고 조흥은행이 있던 장소이고, 강진읍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던 자리이니 돈줄이라는 거였다. 그러고보니 내게는 아들이 셋이어서 삼부자이니 역시 이 자리는 강진의 돈줄이라고 내가 맞장구를 쳤고, 옛 모란다방을 스토리텔링 하여 ‘이 자리는 강진의 돈줄’이라고 써서 붙여 놨다. 그리고 모란다방에서 즐겨 마시던 ‘모란쌍화차’도 개발하여 메뉴로 내놓았다.
“모란쌍화차는 여기에만 있는 쌍화차이니 혹여 다른 곳에서 모란쌍화차 달라고 하지 마세요.”
국악인 박애리씨와 앉아서 모란쌍화차를 소개하는 모습이 전국에 방송 되니 여기저기서 전화가 왔다. 강진생활이 참 재밌다. 역시 여성이 행복해야 귀농귀촌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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