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철 농번기의 막바지입니다. 올해는 하늘의 도움으로 겨울 동계작물까지 파종하는데 기후의 걸림돌 없이, 거침없이, 순조롭게 마무리되어 가고 있습니다. 가을 작기 손익을 따져봐야 하는데, 순조로운 2기작 과업으로, 머리로만 주판을 튕기는 와중에 벼 값이 떨어지고 있다는 소문에 맥이 처지기는 합니다. 이 와중에 휴식 없이 이어지는 노동에, 아니나 다를까 몸뚱어리가 탈이 생깁니다. 갑자기 큰형님의 코에서 코피가 쏟아집니다. 그저 잠시 흘리겠지 했지만, 멈출 기세가 없어, 급히 의료원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간호사는 의사가 없다합니다. 코에서 피가 멈추지 않는 상황입니다. 조치도 없습니다. 응급실의사는 점심시간이라고 합니다.
이비인후과 오후진료에 접수하여 진료 받으라 합니다. 어처구니없지만, 한시가 급하다 생각하여 다음을 찾아 동분서주 합니다. 개인의원을 찾아 헤매여 봅니다. 여기저기 급하게 전화를 걸어 봅니다. 한 의원은 점심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한 의원은 의료원 응급실로 가라 합니다. 어느 한 의원은 의사가 진료중이라고 하여, 잠깐이라도 봐주라 사정하였건만, 환자가 밀려서 그렇게 할 수 없다 합니다. 의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화를 받은 이가 완강히 거절을 합니다. 울 동네의 의료 한계를 몸소 체험 하였습니다.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듭니다. 내 주위에서 골든타임을 맞이하는 환자가 생긴다면, 이들은 과연 어찌될 것인가? 의사가 벼슬일까요? 의사가 환자에 대해 의학상의 기준에 따라 진단과 치료를 행할 의무("진료상의 주의의무")와 환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함으로써 진단검사나 치료를 받을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게 하고, 진료과정에서 피할 수 있는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배려할 의무가 있습니다. 역으로 풀이하자면, 환자는 진료를 받을 권한이 있고, 의사는 환자를 돌봐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10여년전, 유럽 4개국 농업현장의 견학을 간 적이 있습니다. 동행인 한 분이 인후통으로 네덜란드에서 의원 진료를 받습니다. 의사는 주사와 약을 처방하지 않습니다. 감기로 인한 인후통이기에 쉬라는 말만 합니다. 내국인이었다면, 휴가진단서가 나온다고 합니다. 혹여, 인후통의 심각성이 발견된다면, 의사는 그 환자와 함께 중병원으로 직접 동행한다고 합니다. 중병원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면, 종합병원으로 환자와 직접 동행한다고 합니다. 참으로 부럽지 않습니까?
미국이란 나라의 국민들은 정말이지 열심히 운동합니다. 꼬옥 시간을 쪼개서라도 하루 일과 중, 틀림없이 운동을 합니다. 그들은 아프면 큰일 납니다. 정말이지 큰일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처럼 국가건강보험이 없습니다. 따라서 민영보험이기에, 아프면, 민영보험이 지정한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근거리의 병원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민영보험이 지정한 병원으로 가야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혹여나 근거리의 병원에서, 보험과의 관계망이 되지 않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진료비용 폭탄을 맞습니다. 예로, 맹장염으로 간단한 수술을 받으면 1억이 넘는 병원비용이 발생합니다. 치과는 사랑니 하나 뽑는데 몇십만원에서 몇백만원까지 쏟아진다 합니다. 국가건강보험이 있는 우리로썬 참 다행이라 생각합니다만, 이게 지속될 런지는 의문이 생깁니다. 비영리에서 영리병원으로 확대한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의료민영화 작업이 물밑에서 거세게 파도친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돈 때문이랍니다. 서민에게 고통이 주어지면 이게 모두 돈으로 둔갑합니다. 얼마를 벌어야 만족을 할는지 모르겠지만, 서민의 몸뚱어리를 빌미로 이러한 만행은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짐작컨대, 우리도 열심히 뛰어야 할 날이 머지않아 도래할 것입니다. 지역자치 시대입니다. 울 동네만큼은 그따구 일들이 발생할 수 없도록 핫한 변수를 하나하나씩 만들어 가야하지 않을까요?
지역사회활동가, 밥상차리는농사꾼 김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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