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이현숙기자의 시선/ 호수

잔잔하던 호수에 돌멩이 하나 던져졌다. 그 돌멩이에 죽은 사람까지 생겼으니 이제 그 호수는 너무도 무서운 곳이 되고 말았다. 호수에 돌멩이를 던진 사람은 92세의 할머니였고,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한 맺힌 삶을 살아오신 분이다. 영화 아이캔스피커의 실제 모델이었던 이용수 할머니. 왜 할머니가 화가 났는지 아직 정확한 것은 밝혀지지 않아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모두가 욕심에서 불거진 것이다. 새 소리 바람소리만 오가던 고요하던 호수는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은 기억하기 싫었던 참혹했던 소녀시절 일본군에 끌려 다니며 위안부로 살아야 했던 아픈 기억들을 쏟아냈다. 아,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들이 있고, 내 아픔을 치유해주겠다고 나서고 그 나쁜 놈들이 반드시 천벌을 받게끔 앞장서겠다고 한다. 그 모든 것들은 호수처럼 잔잔하게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고, 이 세상 그 어떤 일보다 아픈 우리 역사 속 이야기여서 함부로 입에 담기도 힘들었고, 얼마의 돈으로 기부를 한다 해도 위로가 되지 못할 것 같았다. 그 위에 작은 배하나 띄워 좀 더 큰 배를 만들고, 호수를 벗어나 전 세계를 타고 다녀도 끄떡없던 배,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우리 민족에 저지른 강제징용과 위안부들에 대한 배상문제까지도 힘차게 밀고 나갈 수 있는 큰 배가 되었다. 그런데 그 배가 뒤집혀질 위험에 처했으니 성서 속 바벨탑과 별 다르지 않게 되었다. SF작가인 테드 창의 소설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첫 편 ‘바빌론의 탑’에서 바빌론의 탑은 그것을 지상에 눕히고 한 끝에서 한 끝까지 걸어가면 이틀이 걸리는 높이다. 몇 세기 동안 지속된 공사는 중간 기착지에 마을이 생기고 지상의 흙을 퍼 올려 농사도 짓고 결혼도 하고 신전도 있고 판관도 있고 지상의 삶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도 있다. 구약 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을 말하자면 대홍수 이후 노아의 후손들이 하늘에 닿는 탑을 쌓기 시작한 거였다. 신은 인간이 자기들의 영역을 넘는 것이 불편했고 인간은 여호와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다. 그리하여 신은 본래 하나였던 언어를 여럿으로 분리하는 저주를 내렸다. 그때부터 바벨탑 건설은 막이 내리고 인간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인간의 끝없는 욕망으로 인해 서로 다른 언어를 쓰게 됨으로서 이해되지 않는 관계가 되듯 이 할머니와 윤 의원은 서로 다른 언어를 쓰며 고귀한 호수를 더럽히고 있다.

이 소설의 바빌론의 탑도 조상들의 업을 이어받아 시작된다. 광부들은 벽돌을 쌓고 역청 덩어리를 녹여 벽돌을 고정시키며 한층 한층 나아가며 탑 안에 있는 터널을 채굴하며 하늘의 천장을 뚫었고,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하늘 천장을 뚫기 위해 광부로 차출되어 탑에 오른다. 그리고 천장을 뚫는 것을 야훼는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에 대해 논란도 있었다. 모든 게 순수하게 한 행동이었지만 점점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행동이 된다. 그러나 야훼는 인간의 선택에 대해서 옳다 틀리다 말하지 않는다. 결국 인간이 천장을 뚫지만 큰물이 쏟아지면서 주인공 힐라룸과 몇이 터널에 갇히고 만다. 그럼에도 힐라룸은 물속에서 절망적으로 떠오르기를 기대하고 떠오른다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요 야훼의 거처일거라 생각하고 고생 끝에 물과 터널을 뚫고 나오지만 도달한 곳은 사막 한 가운데였다. 기대와는 다르게 새로운 대지가 나왔고 신은 없었고 야훼의 정원도 없었다. 신의 영역에 닿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허망했고 그때서야 왜 야훼가 탑을 무너뜨리지 않았는지 알게 된다. 바빌론의 탑처럼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아래를 쳐다 보는 순간 권력을 갖게 되는 것이고, 권력을 가지면 욕심이 생겨나서 결코 놓지 못해 어떤 것이 두려움인지 분간하기도 힘들어진다. 하지만, 그 탑은 하늘과 연결되지 않고 또 다른 대지와 연결되어 있고, 결국 오랜 여행의 종착지는 출발점과 같은 곳이 되는 것이다.

1990년에 발족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2016년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이 2018년 통합하여 출범한 것이 정의기억연대다. 그에 따른 진상 규명을 위한 연구 및 조사와 교육 장학사업, 기림사업과 국제 연대 사업을 추진해왔으며, 위안부 합의 및 일본 내각 총리대신들의 담화를 비판하는 여론을 조성하고 선전하는 일, 수요집회를 주관해온 단체이다. 특히 기림사업으로 한국을 넘어 세계 속에 평화의 소녀상을 상징화 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세계사의 한 부분이 되게끔 하는 역할도 해냈다. 그런데 그 소녀상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잘 한 것이라고 박수치며 응원했던 사람들에게 이용당했다고 하는 당사자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팔아먹은 윤미향은 벌 받아야 한다”고 폭로하고 있다. 그리고 정의기억연대 피해자 쉼터인 ‘평화의 우리집’ 소장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사회활동으로 시작했던 출발점의 끝이 국회의원이 되는 정치입성의 길이었다는 결말은 결국 바빌론의 탑처럼 이룩한 많은 것들을 무너뜨리고 있다. 호수처럼 잔잔했던 정의기억연대의 사업들이 어쩌다 이지경이 되고 있는지 이병률 시인의 ‘호수’를 감상하면서 그 옛날 부등켜안은 두 사람을 생각해보게 한다.

호수

호수 위 작은 배 하나

마주 앉아 기도를 마치고

부등켜안는 두 사람을 보았습니다

끌어안았던 팔을 풀자

한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배는 흔들리고

다른 한 사람도 놀라 일어나자

위태롭게 다시 배가 휘청였습니다

먼저 일어난 한 사람이 물로 뛰어들더니

헤엄을 쳐서 배로부터 멀어져 갔습니다

멍이 드는 관계가 있습니다

멍이 나가는 관계가 있습니다

저기 보이는 저 첫 별은

잠시 후면 이 호수에 당도해

홀로 남은 채로 멍이 퍼지고 있는 한 사람을 끌어줄 것입니다

호수 위의 작은 배 하나

고요밖에는 아무 일도 없는데

푸드덕 물새가 날아오릅니다

아무 일도 없는데 꽃이 피고 피는 건

꽃도 어쩌지 못해서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