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대학 교복
대학 생활 4년을 생각해 보면 머리에 떠오르는게 대학교복과 가정교사와 공릉동 황량한 시골이다. 미국에서처럼 밤을 세워 공부했던 기억도 없고 젊음과 낭만을 만끽하는 여행이나 취미 생활도 없었다. 그저 생활 전선에서 생존하기에 급급했다. 교복은 카라가 있는 짚은 곤색으로 계급장이 없는 북한 인민군 군복과 유사하다. 겨울용 양복기지로 만들었기 때문에 겨울에는 코트를 걸치지 않고 학교 교복만 입고 다녀도 추위를 막을 수 있었다. 겨울에만 입은 것은 아니었다. 여름을 빼고는 봄 가을 겨울 내내 한 벌뿐인 교복만 걸치고 다녔다. 어떤 친구는 오뉴월까지도 입고 다녔다. 일이 학년 때는 그래도 괜찮았다. 삼사학년 때는 양복기지 색도 바래고 목 카라에는 때와 땀이 묻어 반질반질했다. 드라이 클리닝도 제대로 하지 않아 옆 사람들이 곤혹스러워 했겠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만 어깨에 붙은 금색 실로 만든 열쇠 모양의 서울대 마크만 내보이고 다녔다. 교복이 아니면 막상 입고 다닐 옷이 마땅치 않았다. 옷을 사 입고 다닐 만큼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여학생들과 만남을 가질 때나 입주해서 가정 교사를 하는 동안에는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정교사 할 때는 주인 사모님으로부터 간혹 양복도 얻어 입곤 했다.
l명사십리
대학 입학 후 첫 여름방학이었다. 중학 동창이었던 재상이와 정옥이등 5~6명이 완도 명사십리를 가기로 합의했다. 몇 몇 취사도구와 동네 행사 때 쓰는 큰 텐트를 빌려 여행길에 올랐다. 지금처럼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는 시절이 아니었으므로 버스를 타고 완도까지는 조그마한 연락선을 이용했다. 연락선에 오르자 파라솔을 쓰고 양장을 한 현대 여성이 눈에 띄었다.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우리는 신지도 명사십리에 Camping을 가니 놀러 오라고 제안했고 헤어졌다.
명사십리에 도착하니 십여리가 넘는 모래 사장에는 거의 사람이 없었다. 신지도 명사십리가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완도에서 오려면 정기 여객선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다 장마철이었으므로 여행하기에는 불편한 날씨였다. 마치 장마가 그치고 푸른 바다에는 여름 뭉게 구름이 한없이 피어 오르고 있었다. 대충 텐트를 피고 모래사장으로 나갔다. 모래사장에는 수많은 형형색색 꽃조개가 수없이 널려 있었다. 색깔과 모양이 전부 달랐다. 세상에 이러한 꽂조개 모래사장이 있을까 하고 감탄했다.
그 기나긴 모래사장에는 우리 밖에 없었다. 해수욕장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인파가 북적거려야 맛이 나는 법인데 말이다. 마침 그때 조그마한 배가 명사십리 해변으로 다가왔다. 배에서 4~5명 되는 아가씨들이 내렸다. 아가씨들은 완도 초등학교 교사들이었는데 어제 연락선에서 만난 아가씨의 친구들이었다. 이렇게 해서 그 날은 완도 처녀들과 흥겹게 보냈다. 그 아름다웠던 명사십리와 꽃조개들을 구경하러 다시 가보려고 했는데 거의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가보지를 못했다. 그때처럼 지금도 아름다운 모래사장과 꽃조개가 그대로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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