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관웅 칼럼니스트와 함께하는 인문학으로 본 세상 – 따뜻한 공동체를 키워가는 스토리
HOME 회사소개 이용약관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추가 기자회원신청
로그인 회원가입
기본스킨 오렌지스킨 보라스킨 연두스킨 그레이스킨
2020년 5월 30일 토요일
뉴스홈 > 만평
2020-04-01
글자크기 기사내용 이메일보내기 뉴스프린트하기 뉴스스크랩하기
관웅 칼럼니스트와 함께하는 인문학으로 본 세상 – 따뜻한 공동체를 키워가는 스토리
어느 대학병원 의료진들을 울린 편지 한 장 “그 분은 나의 아버지십니다.”

다른 사람이 불행할 때 뇌에서 느끼는 불편한 기쁨 (불인지심(不忍之心)

사회가 다변화로 가면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가치를 잊어버릴 때가 있다. 사소한 한 말 한마디가 주변을 따뜻하게 때로는 거치는 환경을 만들기도 한다. 따뜻한 마음으로 주는 아름다운 행동은 주변을 행복하게 한다. 그러나 주변을 바라봄이 무시한 생각을 갖고 있거나 상대편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함이 없다면 그것은 같은 인간의 인격체를 버리는 것이 된다. 일상화 되는 고착된 바르지 못한 생각을 그대로 여기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언젠가는 자기가 행한 행동 그대로 타인으로부터 없이 여김을 당하거나 천함을 바라보는 시선을 겪게 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오늘은 감동 스토리텔러 한 가지 그 분은 나의 아버지십니다.”를 옮겨본다.

이 글은 어느 큰 대학병원의 외래환자 진료실에 떨어져 있던 편지의 내용이다. 이 편지를 쓴 이가 누구인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 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진 여러분에게. 오늘 당신들이 진료실 책상위에 올려져있는 수 십장의 진료차트와 초록색 메디케이드(65세 미만의 저소득자, 신체장애자를 위한 의료보장제도) 카드를 훑어보면서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것을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 나는 어제 당신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는 부모님을 모시고 이 병원에 왔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게 될지 무엇을 하게 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당신들의 진료가 필요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지요. ‘저소득층 의료보장 수혜자라는 딱지가 우리에게 붙었던 적도 없었습니다. 어제 나는 나의 아버지라는 인격체가 당신들에 의해서 하나의 진료번호, 하나의 차트, 병명번호,’ ‘보증인 없음딱지가 붙은 의료보장 수혜자 번호로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의료보험이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한 허약한 남자가 다섯 시간이나 줄을 서서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걸 보았습니다. 원무과 직원들은 전혀 참을성이 없었고, 간호사들은 지쳐 있었으며 시설은 예산부족으로 형편없기 짝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모든 위엄과 자존심을 박탈당한 채 그 곳들을 통과해야만 했지요. 당신들 의료진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환자가 신청서를 제대로 써 오지 않는다고 호통을 치고 화를 냈습니다. 당신들 같으면 처음으로 병원에 와서 그것을 정확히 써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점심시간에는 마치 가난뱅이들의 지옥에서 해방이라도 된 듯이 옆에 사람들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진료한 환자에 대해 조심성 없이 떠드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진료 지정 일에 당신들의 책사위에 올려져있는 하나의 초록색카드, 하나의 파일번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기계적으로 말해주는 방향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또다시 물어대는 귀찮은 환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단지 당신들이 그렇게 취급하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지요. 그는 14세 때부터 캐비닛을 만들어온 자영업자이고요, 훌륭한 아내를 가진 남자입니다. 그에게는 네 명의 성장한 자녀들(당신들이 보기엔 너무도 자주병문안을 오는)과 다섯 명의 손주들(곧 두명이 불어날 예정이지만)이 있고, 이들 모두는 그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최고의 존재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로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췄습니다. 도덕적이고, 강인하며, 또한 부드럽지요. 시골에서 자라 세련되진 않았지만 유명한 회사 대표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그분은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온갖 힘든 과정속에서도 나를 키우셨고 나를 신랑에게 인도했으며, 내 아이들이 태어날 때 20달러짜리 종이돈을 내 손에 쥐어주셨으며, 내가 울 때면 나를 달래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얼마 안 가서 암이 그를 우리로부터 영원히 데려가리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이 편지가 사랑하는 이를 곧 잃게 된 슬픔에 젖은 딸이 자신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 퍼붓는 비난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난 그 생각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내가 말하는 것을 절대로 가볍게 여기지 말아 달라고 촉구하는 바입니다. 각각의 진료 차트에 한 사람의 인격체를 대변합니다. 그 인격체에게는 감정이 있고, 살아온 내력이 있으며, 인생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하는 말과 행동은 그에게 영향을 줍니다. 내일이면 당신들이 사랑하는 사람이 그 위치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들의 가족이나 친척이 하나의 차트 번호, 초록색 진료 카드, 노란색 싸인펜으로 체크된 하나의 이름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이 편지를 읽은 뒤에는 당신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다음 사람에게 친절하고 부드럽게 응답해 주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남편이고 아내이며 아들, 딸이기 때문입니다.

또는 그렇지 않더라도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신이 창조한 그리고 신이 사랑하는 한 사람의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으며 감동 스토리텔러 이다. 따뜻한 공동체를 키워가는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한번쯤 나는 어떤 생각을 갖고 행동을 하고 있는지를 자기스스로 자기를 돌아볼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인간은 여러 가지 사회 분야에서 자신의 생활 속의 실천을 통해 서로 매우 다양한 사회관계들을 만들어낸다. 인간은 물질적 재화를 생산하고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서로 관계하며 사회관계를 맺는다.

그럼에도 사회관계는 인간의 실천 활동에 대한 수동적 결과만은 아니다. 사회관계는 인간 활동의 산물이자 동시에 인간 활동의 전제이다. 사회관계는 인간의 실천 활동이 수행되는 틀이므로 인간 활동의 방향·속도·성격 등을 규정한다.

그러므로 사회관계를 인간과 인간의 활동에서 독립해 있는 실재적인 존재로 파악하는 견해도 잘못된 것이지만, 인간을 그 생활과 활동의 터전인 사회관계로부터 독립해 있는 존재로 규정하려는 시도도 그릇된 것이다. 사회관계는 인간의 활동과 인간 상호간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특정한 역사적 조건에서는 사회관계가 자립적이고 물적인 것이 되어 개인과 대립하게 된다. 즉 사회관계가 인간에 의해 적절하게 통제되지 못하고 거꾸로 인간을 지배하여 인간에게 소원한 힘으로 바뀌게 된다.

소외라는 개념을 통해 현실 사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바로 사회관계의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에 주목하고 있다(마르크스·루카치·마르쿠제 등). 자본주의적 상품 생산관계와 관료제 등이 이와 같은 사회관계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사회관계를 크게 물질적 관계와 이데올로기적 관계로 구분한다. 여기서는 주로 물질적 생산과정 및 재생산과정에서 형성된 사회관계가 기초적·근원적·일차적·규정적 관계이고 반면에 이데올로기적 관계는 부차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 물질적 관계와 이데올로기적 관계의 구분을 거부하고 사회관계의 주요한 측면을 권력관계나 의사소통관계 또는 기호들의 연관관계로 파악하려는, 다분히 관념론적인 견해도 있다.

우리는 매일 사람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가지고 사는 사회적 동물이다. 아침 출근길에 버스를 타고 간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아껴주고 바라보아 주는 일들이 필요하다.

숨 쉬는 하늘아래서, 우리가 머무는 세상에서 추억 한줌으로 살 수 있음도 행복이라면 행복이다. 사랑이 부족했다면 더 깊이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길

 동네 외진 곳에 거의 비슷한 시기에 두 채의 집이 지어졌다. 두 집이 거의 완성될 무렵 두 집의 주인은 만나 집 사이의 길을 어떻게 할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의견이 맞지 않아 돌투성이인 집과 집 사이를 그대로 방치해 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점차 흘러갈수록 사람들이 두 집을 왕래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두 집 사이에는 길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길. 사람들이 오가는 그러한 자연스러움으로 인해 길이 생겨난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길 또한 마찬가지다. 누군가 내게 먼저 다가오길 기다리기만 하면 그 길은 열릴 까닭이 없다. 내가 한 발 먼저 내딛는 발걸음은 그 길을 우정이라는 신작로로 만들고, 상대방이 먼저여야 한다는 이기심은 무관심이라는 비포장도로를 만들 것이다. 삶이 나에게 주는 선물중에서

그의 불행에 기쁨을 느끼는 나의

 독일어에는 이런 감정을 표현하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단어가 있다. 손해를 뜻하는 샤덴(Schaden)’과 기쁨이라는 뜻을 담은 프로이데(freude)’를 합성한 이 단어는 타인의 불행에서 느끼는 기쁨을 표현한다. 대체 이런 감정은 왜 생기는 걸까. 일본 교토대 의학대학원 다카하시 히데히코 교수팀은 샤덴프로이데가 생기는 동안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실험을 통해 직접 확인하고 그 결과를 20092사이언스에 발표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다카하시 교수팀은 평균연령 22세의 신체 건강한 남녀 19명에게 가상의 시나리오를 주고 읽으면서 자신을 주인공으로 생각하도록 했다. 주인공은 능력이나 경제력, 사회적 지위 등 모든 면에서 평범한 사람이며 그를 제외한 등장인물은 세 명으로 모두 대학 동창생이다. 시나리오에는 등장인물들의 대학생활과, 사회에 진출한 뒤 동창회에서 다시 만난 이야기가 묘사돼 있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가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 뇌에서 나타나는 반응을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촬영해 분석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강한 질투를 느끼는 사람에게 불행이 닥쳤을 때 우리 뇌는 기쁨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가식으로도 숨길 수 없는 고소함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미나 시카라 교수는 지인이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 평소 그에 대해 느꼈던 부러움이 클수록 기쁨에 해당하는 생리적인 반응이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를 뉴욕과학아카데미연보’ 2013924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불쌍한 노인(연민)과 잘나가는 전문직(부러움), 마약중독자(혐오), 학생(뿌듯함) 등의 사진을 보여주고 그들이 겪는 상황을 묘사했을 때 실험 참가자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물어봤다. 그와 동시에 근전도 측정기를 볼에 부착해 참가자가 미세하게라도 미소를 지을 때 나타나는 전기적인 반응을 측정했다. 생리적인 반응을 포착해 가식으로 속일 수 없는 본심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실험 결과는 다카하시 교수팀의 결과와 일맥상통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자기가 부러움을 느끼는 대상이 ‘5달러를 주웠다는 긍정적인 상황보다 택시가 튄 물에 흠뻑 젖었다는 부정적인 상황에 더 활짝 웃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사람이 불행할 때 뇌에서 느끼는 불편한 기쁨이란 그의 불행에 기쁨을 느끼는 나의 라는 말이다.

남을 바라보는 시선은 내가 남인 그 사람이 되어 지금의 상태 있는 그대로의 마음으로 생각해 보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당신의 뇌는 그렇게 하기를 바라고 있다. 사랑과 배려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길로 가야함이 옳은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정관웅

힐링코칭상담연구소장

시인칼럼니스트

강진고을신문논설주간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뉴스스크랩하기
기자이름없음 
만평섹션 목록으로
독서는 정신의 영양제
<이홍규>황금들녘의 축복
우리는 왜 안전사고 후에 ...
관웅 칼럼니스트와 함께하...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전 ...
다음기사 : “배고파 훔쳤어요.” •••• 나타난 의인 감동 스토리텔러 (2020-04-08)
이전기사 : ‘한 달 살기’가 ‘정착하는 삶’이 될 수도 있는데... (2020-03-28)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정관웅 칼럼니...
조직폭력배 이제 ...
선거와 프로야구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게시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회사소개 개인정보보호정책 이용약관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알립니다 독자투고 기사제보 정기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