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걸어온 길
윤재준 (주)선도소프트 사장 회고록④
산내들
도암면은 산과 들 내와 바다가 잘 어우러져 놀기에는 안성맞춤인 시골이다. 가끔 바다에도 갔지만 여름이면 늘 상 냇가에서 살았다. 비가 온 뒤에는 개천에 물이 불어나면 피래미 낚시 하기가 좋았다. 피래미 낚시는 낚시에 가짜 미끼가 있어 번거롭지 않아서 좋아했다. 물결 따라 이리저리 돌아 다닐 수 있어서 지루하지 않았다. 도암에는 저수지가 여러 군데 있지만 온종일 강태공처럼 조용히 앉아 하는 낚시는 좋아하지 않았다. 바다에서는 금방금방 달라 붙는 놀래미 낚시나 갯벌을 뛰어다니며 짱뚱어 잡는 것을 좋아했다.
물속에 돌 무덤을 쌓은 후 며칠 뒤 가서 돌을 하나 둘씩 치우면 거기에는 틀림없이 장어가 있기 마련이다. 손 가락을 깍지 끼어 잡으려 해도 미끄러져서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장어 찍게를 만들어서 쉽게 장어를 잡곤 했다. 가을이 되면 논 주변에 있는 웅덩이를 막고 물을 품어서 붕어과 메기도 잡았다. 논 주변 도랑에도 물고기가 많았다. 작게 자른 미꾸라지를 미끼로 해서 주나 낚시를 긴 줄에 매 달아 저녁 8~9시경에 도랑을 따라 던져 두고 다음날 아침에 줄을 건져 올리면 거기에는 메기, 장어, 자라 등이 매어 달려 나오곤 했다. 자라는 손가락을 물면 잘린다고 해서 여간 겁을 먹지 않았다. 장어는 구워 먹거나 붕어는 매운탕을 해 먹으면 진미였다.
가을이 되면 학교에서 퇴비 모으기로 풀을 베로 나갔다. 나는 낫질이 서툴러서 친구들의 것을 나누어 갖곤 했다. 어쨌던 망태기에 가득 풀을 베어 나르곤 했다. 지금은 시골에도 보일러가 있고 기름을 사용하지만 그때는 산에 있는 풀을 베어 난방용 땔감으로 사용했다. 그렇지만 나는 나무하러 가지는 않았다. 샛터에 살 때는 항상 소를 키웠다. 내가 싫어했던 일중의 하나가 소에게 꼴을 먹이는 일 이였다. 소를 끌고 들에 나가면 들 파리나 모기가 물어서 싫었지만 소가 풀을 뜯어 먹는 것을 몇 시간씩 지켜보고 있자니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l 전쟁놀이
샛터 마을은 20가구 정도가 모여 사는 동네라 사람 수가 많지 않았다. 내 또래가 되는 아이는 초등학교 동창인 고재식 하나뿐 이였다. 다른 애들은 나보다 나이가 더 많거나 더 적었다. 재식이는 부춘씨 댁 작은 아들인데 그의 집은 우리 집과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대문이 마주하고 있었다. 자연 재식이 와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만났다. 어떤 때는 밤 늦게까지 씩씩거리고 놀았다. 지금은 교회 장로로서 지역사회와 우리 나라 기독교 발전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 그 때는 운동도 잘 하고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나도 고집이 센 편이고 남에게 지기 싫어했다. 둘이 하는 경쟁은 구슬치기, 딱지치기, 재기차기, 막대치기 등 모든 놀이였다. 재기는 재기풀을 뜯어 끝을 묶어 만들었으므로 들에서 재기풀만 보면 욕심이 나서 뜯곤 했다. 재기는 발로 차서 입으로 물고 머리에도 얹으므로 어떤 때는 입에 흙이 자각 자각했다. 구슬을 많이 딸 때는 두 주머니에 가득했다. 대부분의 구슬이 별로 둥글지도 않은 파란 유리알이었다. 재래장 전날에는 뒷집에 사는 이북에서 피난 온 사람이 돼지를 잡곤 했다. 그 때는 틀림없이 돼지 오줌보에 바람을 넣어 축구 시합을 했다.
애들은 순수해서 일까 어른들이 쉽게 알 수 없는 미래감지 능력이 있는 모양이다. 쥐나 원숭이처럼 동물들은 지진이 발생하기 전에 도망가듯이 말이다. 6.25 전후에는 전쟁놀이를 자주하곤 했다. 나보다도 10살 위인 광현이란 분이 항상 분대장을 맡으면서 부대를 이끌곤 했다. 부대라고 해야 어린 우리까지 합하면 분대가 구성될 정도다. 두툼한 판자는 항상 탐이 났다. 왜냐하면 판자를 깎아서 총 개머리 판을 만들기 때문이다. 어디서 파이프를 구하고 판자를 깎아서 틀림없는MI 소총을 만들었다. 어깨총 받들어총 좌로가 우로가 하면서 열심히 군사 훈련을 했다. 그 때는 칼빈과 MI 총알을 쉽게 구했다. 탄알을 장진하고 뇌관을 쇠못으로 적중시키면 총알이 발사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위험한 일이었지만 큰 사고는 없었고 총 개머리 판을 깎느라고 손을 다치곤 했다. 1950년 실제 6.25 전쟁이 터지고 인민군을 장터 길에서 처음 보았다. 하루는 그들이 장터 가게에서 수박을 먹고 있다가 우리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리에게 수박을 권했다.
6.25 때는 동네에서 원한이 있는 사람들이 서로 죽이고 했다고 했다. 항촌 마을에서도 몇 사람 죽었는데 인민군들은 시골 마을에 원한이 없었는지 인민군이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우리가 심하게 전쟁놀이를 한 것은 시대가 어수선해서 였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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