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대양에 떠 있는 일엽편주(一葉片舟, 작은 나뭇잎 같은 배)에 불과하다.” 김재철은 잘난 체하는 것과 분수를 망각하고 나서는 일을 끔찍이 싫어한다. 우선은 그 자신에게 엄격하게 적용하는 원칙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임직원들에게도 권면하는 사항이기도 하다. 김재철이 ‘낮은 자세로 임하소서’를 금과옥조로 지키는 것은 타고난 성품일 수도 있지만 망망대해에서 배운 삶의 교훈 때문이기도 하다.
바다는 그에게 세속적인 지위나 명성이나 부의 크기와 달리 모든 것이 수평임을 가르쳐주었다. 세상에 자랑할 만한 것은 없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 빈자리를 메우면서 수평을 이뤄낸다. 바다는 사람의 지위에 따라 차별하는 일이 없다. 크고 높은 배일수록 더 세찬 바람을 받으므로 보다 강한 복원력을 필요로 한다. (···) 바다는 사람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평가한다. 이따금 거친 파도로 모든 것을 시험하여 강한 자만을 남겨둔다. 이들에겐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자만으로 실수하거나 변명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한번은 부산지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대자연의 힘 앞에서 겸손함과 정직, 그리고 거짓의 헛됨을 깨달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재산이나 권력, 명예는 깨지기 쉬운 것이기에 자신이 가진 것을 자랑해선 안 된다고 여긴다.
여기서 우리는 명(名) 선장이란 어떤 사람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명선장은 지금까지 잘해온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잘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명선장도 매번의 승부에서 자신을 입증해야 한다는 점에서 경기에 처음 출전한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성취한 모든 것들은 과거의 기록일 뿐이다. 그렇다면 뛰어난 사업가는 누구인가? 그 역시 이제까지 잘해왔을 뿐 앞으로도 잘하리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 김재철은 사업이란 항상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그래서 그는 오랫동안 선장 자격증을 갱신해서 유지해왔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면 다시 배를 타서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는 각오로 사업에 임했다. 그런 긴장감은 말과 행동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계속 전해지고 있다.
공사를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
“매사에 철두철미하고 공사 구분이 엄격하다. 그냥 엄격하다고 하기 보다는 엄청나다고 말하는 것이 좋겠다. 흠을 잡히지 않도록 엄격하게 자기 관리를 한다. 오너라면 회사 돈을 주머닛돈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회장님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회사 돈에 대해서도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엄격하게 관리한다.”
필자가 오래전에 회사를 떠난 한 분을 만나 대화를 나누던 중에 들었던 말이다.
이따금 신문지상에서 자기 돈과 회사 돈을 구분하지 못해 비난받는 기업가들을 볼 수 있다. 공사 구분이란 면에서 한국은 여전히 개선할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공사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일은 김재철에게 선택사항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였다. 평전 작업 중에 경험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 가지 소개하고 싶다. 김재철은 평전 준비하는 일을 철두철미하게 사적인 일로 간주한다. 그래서 필자로서 자료를 구하는 작업은 대부분 가족과 한정된 인력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회장의 평전은 넓게 보면 결국 회사를 알리는 일이고 이렇게까지 엄격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오랫동안 그와 일했던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김재철이 회사의 것과 사적인 것을 철저히 구분해왔다고 말한다. 이런 원칙도 선상 생활에서 체득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젊은 날부터 자신을 철두철미하게 관리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아버지 연배의 선원들과 선상에서 지낼 때 한 치의 허점도 보여서는 안 되었다. 그는 천성적으로 자기 관리에 빈틈이 없는 지사형 인간에 가깝다. 지사형 인간에게 상황으로 인한 자기관리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관리하는 일에 미학적인 아름다움과 고결함이라는 가치를 둔다. 그들은 공사 구분에 따르는 불편함을 당연히 여길 뿐만 아니라 가치 있는 일, 마땅히 해야 하는 일로 받아들인다.
그는 윗사람들이 회사 돈을 사용하는지 아닌지를 부하들이 다 일고 있다는 점을 직시한다. 한번은 경영조정실에 일하는 임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과장이 밥을 살 때 그 돈이 회사 돈인지 개인 돈인지 밑에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의 비용지출에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엄중함을 기한다. 이 같은 원칙은 회사의 모든 부분에 세세하게 배어 있다. 한 때 회사 일에 관여했던 친인척들도 자리에 부합하는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면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많은 여타의 회사들처럼 고위직에 친인척이 자리 잡은 경우가 거의 없다. 압도적인 성과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 보인 사람만 한두 명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무엇이든 아껴서 사용해야 한다
“바다에서 고생하는 직원들을 생각하라!” 근검절약도 천성이다. 가난한 시절을 보냈기에 절약할 수도 있지만 가치 있는 일이고 마땅한 일이라는 생각에 검소한 이들도 있다. 이들은 모든 것을 아낀다. 자신이나 가족에 대한 씀씀이, 회사와 관련한 씀씀이 가운데 굳이 돈을 들이지 않아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쓰지 않는다. 오랫동안 지근거리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회장님이 돈을 쓸 때는 저희들은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회장님이 주시는 돈은 영을 하나 더 붙여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는 말한다. “우리가 누구보다 가난하지 않았나요? 1960년대에는 10달러나 20달러를 쓰는 것도 큰 지출이었지요. 저에게는 그런 기억들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가난한 시절에 서러운 일들이 너무 많았어요. 나도 그렇고 나라도 분수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고 걱정도 하지요.” 어려운 시대를 지나온 이들에게 근검절약은 신조와도 같다. 사치나 낭비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김재철이 경영에서 이런 원칙을 견지해온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의 사업은 처음부터 육지에서 넥타이를 매고 하는 일이 아니었다. 해상에서 위험을 무릅쓴 이들의 헌신이 사업의 근거였다. 그들을 생각하면 함부로 돈을 쓸 수가 없었다.
“부족함이 인간을 키운다. 자식을 키우면서도 일부러 고생을 많이 시킨 편이다. 어린 시절부터 돈을 아껴 쓰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쓰는 것부터 먼저 배우면 망한다.”
사업 초창기에 직원들 중에는 “사장님은 선원들만 생각한다”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말에 김재철은 답한다.
“선원들 생각을 해봐라. 24시간 동안 흔들리는 배에서 자고 휴일도 없이 일한다. 현장감을 잊으면 안 된다. 우리 사업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를 늘 기억해야 한다. 사장일 때는 부산에 내려가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항구에 있는 배들을 다 돌아보고 난 다음에 밥을 먹었다. 선장·기관장과 먼저 식사를 한 뒤에 다른 일을 봤다. 이렇게 하는 것은 현장 밀착형 경영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처음 시작할 때를 잊지 않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가 바다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반복해서 말하는 이유는 척 마음을 잊어버리는 데서 모든 어려움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고생하는 선원을 기억해서 검소하게 생활했고, 절약은 그 자신을 넘어서 기업의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예를 들어, 2003년의 김재철의 고희연은 그의 소탈한 성품을 잘 보여주는 일화이다. 사회적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둔 인물이라면 성대한 자리를 열 만한 날이다. 하지만 그의 가족은 이를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비서와 컴퓨터와 A/V 기기 작동을 맡았던 IT 분야 직원 2명과 가족관계의 사람들이 참석자의 전부였고 보통 가정집의 생일축하 행사 정도로 그날을 기념했다. 자신에 대해 검소한 것이 원칙이었고, 이는 회사의 구성원들에게도 요구되는 원칙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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