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향월촌 28> 샘터 / 시와 산문 / 박부민 시인
샘터
달구리 어스름 속에서
물동이를 인 흰 겨드랑이를 처음 보았다
지푸라기 똬리가 어머니의 머리칼과 엉켜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일순 안개 물러나는 샘터에
산수유 연황빛 자욱하고
정갈한 물 한 그릇 말없이 들이켜는
흙 묻은 손, 아버지의 아침이 보였다
그 검은 옆구리에 기대고 선 삽은
녹슨 목울대를 드러내며 번쩍
웃었다 서늘한 어머니의 얼굴이
햇살로 거푸 젖어드는 봄
우리 집 마당에 영영 샘터 한 곳 들이고 싶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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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샘터로 나간 어머니는 지푸라기 똬리를 머리에 얹고 그 위에 어렵사리 물동이를 올렸다. 눈물처럼 떨어지는 물방울이 얼굴을 적시는데 어머니는 그 힘든 비탈길을 위태롭게 내려오곤 했다. 남편 생각, 자식들 생각, 밥 지을 생각에 그렇게 오랜 날들을 새벽 샘터에 꿋꿋이 드나들었던 것이다.
종종 새벽 밭일을 하고 샘터에 들른 아버지는 물 길러 나온 어머니에게서 생수 한 그릇 얻어 마시고는 먼 곳에 시집 와 고생하는 고운 아내가 애틋하여 한참을 바라보고 멋쩍게 미소 짓곤 했다. 그 얼굴이 사랑이었다. 서럽고 서늘한 마음을 녹여주는 봄 햇살 같은 사랑이었다.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는 그렇게 서로 다독이는 사랑의 힘으로 우리를 뒷바라지 한 것이다.
힘들었던 시절, 어버이의 애틋한 모습은 자녀들에게 깊은 행복감을 주었다. 요란한 행사나 미사여구의 고백은 없어도 고단한 삶을 함께 헤쳐 나가며 그분들 나름대로 봄빛 같은 따뜻한 사랑을 조용히 나누었던 것이다. 그런 기억과 감사함을 지닌 자녀라면 이제 어버이의 노년이 더욱 따뜻하여 서러운 그늘이 없게 해야 한다. 더 깊은 부부사랑으로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자녀의 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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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부민 시인 / 1996년 계간 <시와산문> 신인상 당선 (조병화 시인 選) 2005년 한국크리스챤문학상 수상. 시집『등불이 있는 마을』(시와문화 2010) 현 남도햇빛교회 담임목사 nasaret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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