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영랑시문학상 우수상
■ 수상소감
남도 서정의 계승을 위하여
김선태(시인)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김영랑 시인이 내게 드리운 ‘그늘’이었다. 그 ‘그늘’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크고 넓게 드리워져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따라서 그 분의 이름으로 내리는 이 상은 나로선 전율에 가까운 영광이며, 동시에 무섭고도 서늘한 채찍이 아닐 수 없다.
돌아보건대, 오늘날 내가 시를 쓰게 된 근원에는 김영랑 시인의 시가 자리하고 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읽은 시집은 김영랑 시집이다. 중학교 1학년 시절, 겨울방학 숙제로 독후감을 쓰기 위해 시골집을 뒤지다가 우연히 발견한 그의 시집은 그때까지 문학에 관심조차 없었던 사춘기 시골소년에게 커다란 정서적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토록 아름다운 시를 쓴 분이 나와 같은 강진 출신이라는 점이 더욱 놀라운 사실로 다가왔다. 그리하여 겨울방학 내내 시집을 반복해서 읽어 줄줄 외우다시피 하게 될 무렵 나는 처음으로 시 100여 편을 습작하여 독후감 대신 제출하게 되었다. 당시 시인이셨던 국어선생님은 그 습작노트를 수업시간마다 전교생에게 읽히셨다. 지금 생각하면 치졸하기 짝이 없는 시들이지만, 그때부터 나는 학교에서 어린 시인으로 불리게 되었고 장차 시인이 되기로 마음을 굳혔던 것 같다. 그리고 시를 쓴다면 김영랑 시인처럼 유려하고 섬세한 서정시를 쓰리라 생각했다. 그러므로 비록 생면부지이지만 김영랑 시인은 내게 처음으로 시가 뭔지를 가르쳐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영향 또한 크게 미친 문학적 스승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또한 그의 존재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껏 나의 문학적 우상이자 넘어서야 할 큰 산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사람의 모든 것은 고향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제 탯줄인 고향을 망각하고서야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어낼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껏 나는 나의 문학이나 학문의 출발점이 고향임을 철저하게 확인하며 살아왔다. 고향을 노래한 시는 물론이거니와 석사학위논문으로 김영랑의 시를, 박사학위논문으로 동향의 시문학파였던 김현구의 시를 김영랑의 시와 비교․연구하였다. 고향에 대한 빚진 마음 때문에 강진의 이곳저곳을 샅샅이 답사한 다음 강진문화기행도 펴냈다. 영랑기념사업회와 모란촌문학동인회에 참여하는 등 문학과 관련한 고향의 일이라면 미력이나마 힘을 보태왔고 또한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한마디로 어린 시절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고향이 지금은 가장 돌아가고 싶은 곳이 되었다.
나는 지금껏 김영랑 시인이 그러했듯이 주로 남도의 서정을 바탕으로 한 시들을 써왔다. 특히 고려청자와 모란꽃처럼 찬란한 그늘을 드리운 그의 ‘촉기의 시학’을 현대적으로 변용․계승하는 것을 숙제로 삼아왔다. 그가 한평생 고향의 산하에 묻혀 남도의 찬란한 서정을 유려한 가락으로 풀어냈듯이 나 또한 결코 문명의 아수라장으로 나아가거나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나의 뿌리인 남도 땅에 남아 그 유순한 자연과 함께 스스로 중심이 되어 살아갈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번 수상을 나의 문학적 우상이었던 대선배 시인이 고향의 까마득한 후배시인에게 내리는 격려의 뜻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또한 그의 대를 이어 남도의 시학을 더욱 계승․발전시키라는 엄한 채찍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앞으로 이에 부응하고자 더욱 각고면려할 것을 다짐한다. 끝으로, 심사위원 선생님을 비롯한 시와시학사, 강진군에 감사드린다.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