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81회)
병영면 지로리
최인순(83)할머니
“저 남자는 시아부지 아니요?”
“나하고 열다섯살 차이나.”
병영면 이웃 마을에서 시집온 최할머니는 열일곱살이었다.
“먹을 것이 없응게 풀 캐다가 죽 쑤어 묵었제, 쌀은 구더기 하나씩 있는 것 맹기로 보여.”
일제시대였다. 세계2차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일본의 공출은 더욱 극심해졌다. 어떤 사람은 놋쇠밥그릇에 밥을 먹다가 밥그릇을 빼앗기자 <내 밥그릇 주야>하면서 밖으로 따라 나와 소리를 치면서 울부짖는일도 생겼다. 최할머니 마을에도 젊은 여자들을 데려가기 위해 차가 드나들었다. 어느 날 차 한 대가 와서 마을 처녀들을 싣고 가면서 2차로 다시 오겠다고 했다.
“어른들이 그러더만, 여자들을 군인들 밥 해준디로 데려간다고.”
그래서 최할머니는 <이제 우리 차례인갑다>라고 생각했다. 겨우 14살 15살이 되면 혼인을 시키던 때여서 열일곱살이던 최할머니는 노큰애기라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두 번째 차가 오기 전에 해방이 되었다.
“그런게 그때 장가못간 사람들 대나깨나 장가갔지. 없는 사람 장가 못 간사람 좋아 부렀지.”
홀어머니에 가난한 시집은 입에 풀칠조차 하기 힘든 살림살이였다. 남편이 남의집살이를 하면, 쌀 한 되나 보리 한 되를 가져왔다. 그것도 사흘을 일해주어야 얻는 소득이었는데, 쌀은 깎아서 한 되였고, 보리면 고봉으로 한 되였다.
“그것 묵음서 죽겄다고 일허지.”
6.25전쟁이 지나고 나서도 가난은 여전했다. 일자리라고 해야 저수지 막을 때 흙과 돌을 나르는 일이었다. 그 일마저도 서로 하기 위해 줄을 섰다. 발천마을 둑 막을 때와 야동마을 산 뒤 큰 둑을 막는 일등 저수지 막는 공사장에서 흙과 돌을 머리에 이어 나르는 일로 지금도 최할머니 머리 정수리부분에는 자국이 남아있다.
“아침에 네 번, 저녁에 서너 번 날르먼 자기 일 헌대로 표 딱지를 주어. 그것을 ‘만보뛰기’라고혔어.”
자신이 날라다 놓은 흙이나 돌의 양에 따라서 그날 표를 받는다. 그 표를 모아서 나중 면사무소에서 밀가루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표시를 잘 해두지 않으면 없어지기도 한다. 누가 가져가도 모르기 때문에 탓 할 수도 없고 헛일을 하기도 한다.
“한 번은 내 밴또가 없어졌등만, 다 있는디 내것만 없어. 옆에서 째까씩 줘서 얻어 묵고 일 했는디·····참말로 나 살은 일 생각허먼 어떻게 살었는지 몰라.”
아이들을 어떻게 먹이고 가르쳤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다는 최할머니는 옛날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면서도 애써 즐겁게 애기하신다.
“치매 동냥을 해도 너희 눈 하나는 띄어주마. 하는 맘으로 초등학교는 띄어 주었어.”
최할머니는 당신이 못 배웠기 때문에 어쩌던지 자식들을 눈이라도 띄게 하고 싶었다. 땅에 욕지거리를 써도 알지 못하는 설움은 결코 받게 하고 싶지 않은 결심이었다. 나이차이가 많았던 남편은 많이 늙어보였는지, 어떤 사람들은 <시압씨허고 사요?>라고 묻기도 했다. 그러나 최할머니는 남편이 잘해주었는지 나빴는지 그런 일 자체를 생각할 틈도 없이 힘든 생활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러다가 시름시름 병으로 앓아누웠고, 그러다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얼굴이 고왔기 때문이었을까 치근덕거리는 남자들이 있어 때로는 괴로웠다. 늘 시렁 위에 올려놓았던 쥐약을 먹으려고 일어났다가 줄줄이 누워 잠자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가슴이 미어져서 눈물만 흘리다 다시 올려놓고 했다.
“내일 아침 ‘엄마’하고 뛰어올 애들이 눈에 뵈어서 손에 든 쥐약을 내려놨어.”
한 번은 물에 빠져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에 저녁 밥을 먹은 후 밖으로 나와 두 발을 저수지물에 담그고 앉았다가 그림자가 보여 깜짝 놀라 발을 쑥 빼고 돌아오기도 했다. 어느 날 저녁밥을 먹은 후 방에서 간난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을 때 이웃 남자가 쑥 들어왔다. 이웃남자는 <사정 조께 하러왔소>라고 낮은 소리로 말했으나 너무 놀란 나머지 애기를 보듬고 캄캄한 밤길을 한참이나 내달렸다.
“바람피는 것도 여자 맘 먹기에 매였제. 왜 말 걸어온 사람이 없겄소.”
아직 머리도 검고 피부도 곱고 귀도 밝은 최할머니다. 평생 고생으로 점쳐진 삶을 살아왔다지만, 표정은 너무도 밝으시다. 5남매중 아들 하나를 일찌감치 사고로 보낼 때는 가슴을 쥐어 안고 살기도 했으며, 집을 나갔던 아들 때문에 줄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이웃집 염소 한 마리를 키워주기로 하고 새끼를 나면 한 마리씩 나누어 갖기로 한 적이 있었다. 마침 두 마리를 낳아서 새끼 한 마리가 생겼다. 그런 어느 날 아들이 집을 나가겠다고 했을 때, 그러면 저 염소라도 팔아서 가거라라고 말했다. 그 다음날 아들이 염소를 갖고 나가서 소식이 없었다. 아들이 나간 뒤 걱정이 되어 애태우다가 밭에서 나는 잎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 이웃집 할머니에게 봉초를 빌렸다. <누구헌테 말 못허고 혼자 죽겄소. 봉초 한봉만 비려주쇼>
“나중 한 봉 갚을텐 반봉 빌려달라고 혔제. 나중 한봉 갖다주었더니 뭘 가져왔다냐고 허더만.”
작년에 보름동안을 누워서 지내면서 막내며느리가 똥오줌을 받아내는 생활을 했다는 최할머니는 그때 죽을 줄 알았더니 명이 길긴 긴 모양이라고 말한다.
“우리 막둥이 며느리가 딸 만이로 참 잘허요.”
아들 황기환씨부부와 함께 사는 최할머니에게 옆에서 놀던 손주들이 다가와 안겼다.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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