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남자의 여름
이윤(광주북부경찰서장)
9월의 문턱에 섰다. 여름옷을 입고도 가을을 느끼는 것은 9월이 주는 의미 때문일 것이다. 8월의 달력을 위로 넘기면서 여름을 접는다. 24절기의 하나인 백로가 7일이고 밤의 길이가 똑같아지는 추분이 23일이기 때문에 숫자를 보는 시각으로 가을을 느꼈다. 문턱을 넘어선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을 듯 하지만, 살갗에 닿는 옷감의 감촉이 다르게 느껴질 것이며, 갈바람에 속마음이 조금은 싱숭생숭 해질지도 모르겠다. 달력을 넘기는 때가 되면 언제나 지난달을 되짚어 보는 습관이 있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는 몇 달을 한꺼번에 짚어보게 된다. 지나온 시간들이 보람될 때 문턱 넘어 발을 디딜 그곳이 더욱더 신나게 기다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여름 내가 발 디뎠던 그 곳을 더듬어 본다. 2009년 여름, 비가 많이 내려 약간 후텁지근한 날이 많았다. 에어컨을 싫어하는 나의 여름은 언제나 극기훈련을 하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올 여름 극기훈련은 좀더 가혹했던 것 같다. 이러한 여름을 정리하자니 빨간넥타이가 떠오른다. 그날 아침 빨간넥타이를 매었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된 것은 북부경찰서 홈페이지에 올려진 빨간넥타이 모습을 보면서였다. 사실 그때 빨간넥타이의 내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그 사진은 지구대원들과 조찬을 하는 모습이었다. 지구대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직원들의 아침 교대시간이었다. 교대를 마친 직원들과의 시간이 가장 적절하다 싶어 갖게 된 자리였다. 그 자리가 매우 뜻 깊었던 것은 내부고객인 우리 직원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갖고 함께 애로점을 나누고자 맘먹고 시작한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무의식적으로 매었던 나의 빨간넥타이가 매우 의욕적이고 정열적으로 보여 졌다. 내가 여름에 시작한 하나의 일은 빨간넥타이를 매고 내부고객을 찾는 일이었다는 것을 찾아냈다. 여름 이전 나는 북부서에 부임하면서 바로 북구 전체 26개 주민 센터(동사무소)를 직접 찾아다니며 주민들과 대화를 나눴다. 말로만하는 맞춤형 치안서비스가 아니라 실천으로 옮겨보고 싶어서 내본 욕심이었다. 그만큼의 시간과 체력이 따라주어야 하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좋은 반응을 보여준 북구 주민들의 경찰서에 대한 바람이나 의견을 접하면서 더욱더 주민들에게 치안이 얼마나 중요한가도 피부로 느꼈다. 이러한 주민과의 대화를 마친 때가 6월 여름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일이 무척 한가롭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긴급하고 다방면으로 요구되는 북구의 치안을 생각하지 않고 엉뚱한 일을 사서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 일이 중요한 목적과 가치를 안고 있었기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 이유의 한 가지는 서장으로서 의자에 앉아 북구의 치안을 모두 파악할 수는 없는 까닭이다. 한 사람 한사람 모두가 북구의 질서와 치안에 소중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오십만 가까운 인구가 살고 있는 북부에서 우발적인 사건사고가 전혀 없을 수는 없다. 주민센터를 돌며 나눈 대화는 그러한 우발적인 사건사고와 더불어 더 큰 사건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기초적인 준비라고 생각된다. 주민들이 좀더 경찰서와 친밀한 관계를 가질 때 스스로 범죄를 멀리하고 치안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갖는다는 생각이다. 그러한 결실을 나는 여름에 맛보았다. 강력사건이 잘 해결되어 쿠웨이트에서 돌아온 아들과 완도 수목원으로 2일간의 휴가도 다녀올 수 있었다. 요즘은 주민들의 건의 및 의견에 답변하고 있다. 주민과의 대화에 참여했던 분들을 경찰서로 초청하여 주민들의 건의사항에 대한 조치결과를 과장들과 함께 보여주고 들려주는 일로 땀 흘리고 있다. 경찰의 입장에서 주민들을 위한 치안을 한다고 최선을 다하지만, 주민들이 바라고 있는 방향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기도 한다. 최선을 다하고도 원하는 일이 아니라면 소용이 없는 일이기에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맞춤형치안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계절의 문턱에서 생각하니 후덥지근했던 2009년 여름이지만 여러 가지 극기훈련을 잘 했구나 싶다. 그 중 새롭게 시작한 빨간넥타이의 조찬시간이 매우 즐거워서 이제는 내부고객을 위해 남은 땀을 흘려볼까 생각한다.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