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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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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 수필 '투사와 신사 안창호 평전"을 읽고' ①

역사의 깊이를 잘 꿰뚫어 보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이 한몸 다 바친 선생의 구국 열정

 

김삼웅 저 '투사와 신사 안창호 평전'은 도산 선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알기 쉽고 간결하고 쓴 책으로 안창호 선생의 삶과 그 위대한 업적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국민들에게 한번쯤 읽어보도록 권하고 싶어 독후감을 쓰기로 했다.

 

또한, 서울특별시 강남 '도산 공원'에 세워진 안창호 선생 기념비에 그 위대한 업적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새겨 놓은 안병욱 교수가 쓴 글을 소상히 소개해 주었다.

도산은 일제의 침략에서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60평생을 구국운동에 바친 위대한 애국자, 한국 민족을 인류의 모범이 되는 최고 민족으로 완성하기 위하여 부단한 자아 혁신과 국민의 품격 향상을 힘쓴 민중 교화와 교육자, 무실역행과 인격 혁명, 대공주의의 사상으로 민족의 지표와 역사의 진로를 밝힌 탁월한 사상가, 이상촌 건립과 사회 개혁, 산업 진흥과 교육 건설로 백년대계의 경륜을 보여준 훌륭한 선각자, 진실과 사랑의 실천으로 위대한 인격을 갈고 닦아 국민의 사표가 된 뛰어난 지도자, 그는 겨레의 등불이요 나라의 자랑이다.라며 그 비문을 소개 했다.

 

선생은 '신민회를 설립'하였다. 1906년 미국에서 돌아와 전덕기·양기탁· 안태국·이동녕·조성환·신채호·노백린 등 당대의 민족지사들과 함께 설립한 비밀결사 신민회는 봉건 군주체제의 '신민' 질서를 근대 민주체제의 '신민' 질서로 바꾸는 최초의 시민단체였다. 신민회의 목표는국권 회복과 공화제, 실력양성과 해외 무관학교 설립 등을 제시하고 실제로 이후 구권회복운동의 인적·정신적 원류가 되었다.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미국에서 3·1운동 소식을 듣고 교포들이 모아준 6천 달러를 가지고 상해로 뛰어와 각지에 산재한 지사들을 불러 모아 임시정부의 울타리를 짠것을 도산이었다. 그리고 국무총리서리와 내무총장으로서 초기 임시정부의 조직과 운영을 맡았다. 당시 국무위원급 이상의 정부요인 중에 상해 현장에 있었던 사람은 도산 뿐이었다. 국내와 연결하는 연통제를 만들고, '독립신문'을 창간하는 등 대일항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국무총리에 추대된 이승만은 1년 반 뒤에 부임했다가 탄핵을 당하고 말았다.

 

선생은 '한국유일독립당 운동'을 했다. 1920년대 임시정부와 독립운동 진영은 사분오열 상태였다. 이를 통합하여 대일 무장투쟁을 벌이는자는 신념에서였다. 이를 위해 중국 관내는 물론 해외 각지의 한인 사회를 두루 순방하면서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비록 성공은 못했으나 통합 연대론은 독립운동 진영에 공통적인 과제로 인식되었다.

 

선생은 '흥사단을 조직'했다. 191351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8도 대표를 모아 시작한 흥사단은 무실역행을 생명으로 삼는 충의남녀를 단합하여 정의를 돈수하며 덕··지 삼육을 동맹수련하여 건전한 인격을 지으며 신성한 단결을 이루어 우리 민족전도 대업의 기초를 준비 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수양단체가 아닌 독립운동 단체였다. 여기에는 독립과 해방 이후까지를 대비한 비전이 담긴 흥사단이다.

선생은 '한국독립당을창당'했다.1930년 초에 결성한 한국당은 '당의'에서 국토와 주권을 완전히 광복하며,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기초로 하는 신민주국을 건설하고, ()는 국민 각계의 균등을 확보하고, ()는 민족과 국가와의 평등을 실현하며, 나아가세계 일가의 진로를 향한다는 내용을제시했다.

 

선생은 '대공주의 정치사상과 철학'을 가졌다. 도산은 1928년 상해 망명지에서 대공주의를 창안, 발전시키면서 독립운동의 방략으로 삼았다.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도산의 대공주의는 조소앙의 삼균주의와 쌍벽을 이룰 만큼 체계적이면서 진보적인 내용을 담고있다. 경제적으로본 대공주의는 이상사회 건설의 설계도니 도산은 침략주의에 대한 민족해방 사상, 정치적 민주주의사상, 경제적 착취에 반항하는 사회혁명 사상, 링컨의 민유·민치·민권·민생 내지 종족 상호부조에 근거한 자유연합사회 사상 등을 종합하여 그 모든 장치를 취하고 단점을 거한 조화적 건설 이념을 세우려 한 것이다. 그리하여 선생은 당면의 정책으로 민족평등·정치평등·경제평등· 교육펑등 등의 네 가지 등을 주장하였다.

 

선생의 비서실장 이였으며, 한국독립당 조직위원을 지낸 독립운동가 '구익규' 선생은 조소양의 삼균주의는 도산의 대공주의를 발전시킨것이라고 증언하였다. 구익균은 또 '백범 김구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도산뿐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2013310일은 도산 안창호 선생 서거 75주기이고, 513일은 흥사단 창립100주년이었다.

스물네 살에 태평양을 항해하면서 하와이를 지켜보며 '도산'이라 자호한 뒤, 도산은 백범 김구 등과 함께 우리 독립운동사의 대명사일 뿐 아니라 민족 정신사의 태산북두(泰山北斗)이자 호칭이 되었다.

선생은 도산(島山)이라는 아호를 지으면서 '반도강산' 의 뜻보다, 망망대해의 가운데 홀로 서 있는 작은 섬의 기개에 감동을 받아 지었다고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4대강 사업을 합리화하기 위해 '안창호 씨의 국토개조의 실현' 운운하며 도산을 욕보이고, 세간에서는 무실역행의 참뜻보다는 일제와 그 아류들이 붙인 자치론자, 개량주의자, 준비론자, 점진주의자,실력양성론자, 문치파(文治派), 평안도파, 독립불가론자, 도덕군자의 수준으로 도산을 왜곡하여, 도산 선생이 그야말로 심각하게 왜소화되고 있는 형편이라고 지적하고 있어 이에 놀람을 금할 수 없으며, 정치적으로 애국자의 구국일념을 펜끝으로 하루아침에 무너뜨리 다는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통한을 금할 수 없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도산은 교육자, 교양인, 웅변가, 종교지도자 등 '박제된 독립운동가'로 인식되거나, 좀 더 관심을갖는 사람들에겐 훌륭한 인격자, 흥사단 설립자, 애국가 작사자로 알려져 있다.

모두 맞는 말이지만 실체의 절반도 되지 않고, 본질에서 절반의 절반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니 교육과 홍보를 통해서 사실이 왜곡 되어서는 절대 안된다고 생각을 한다.

우리 현대사에서 독립운동의 '정통성'을 두려위해온 세력은 무장독립 운동가들의 과격파 또는 좌파로 치부하면서, 도산을 '온건한 독립운동가' 또는 '도덕주의자'로 분장시켰다고 하여 도산 정신과 도산 사상의 본질에서 한참 벗어 나게 한 것은 참으로 분통 터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밖에도 도산의 진면목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까닭은 이광수·주요한 등 친일파들이 도산의 전기를 집필했기 때문이라고 하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고, 여기에 군사독재 세력을 비롯해 역대 보수 세력의 이념적 성향에 도산을 욱여 넣으려 한 일부 석공들의 '연구 성과'도 한 몫을 하게 되었다고 하니 놀라지 읺을 수 없다.

도산 선생에게는 억울하기 그지없고, 독립운동사에서는 분통 터지는 일이 이닐수 없는 일이다.

 

도산은 누구인가? 19세 때 대한제국의 국정개혁을 위해 만민공동회 주최로 열린 쾌재정의 연설로 명성을 날리면서 역사 현장에 뛰어든 그는, 독립회에 가입하고, 애국개몽 운동에 이어 1913년 센프란시스코에서 청년하우회를 계승하는 흥사단을 창립했다.

파쟁과 분열, 단명이 심한 이 나라 풍토에서 100년의 역사를 가진 단체는 흥사단이 유일하다고 한다. 도산 선생은 1929년에 힘주어 말했다. '흥사단은 수양 단체가 이니라 한국의 혁명을 중심으로하여 투사의 자격을 양성코자 하는 혁명 훈련 단체이다.

 

도산 선생의 흥사단 정신이 깃든 무사 정신, 즉 무장투쟁론에는 깊은 사력이 따른다. 신민회를 조직하면서 '독립전쟁론'을 최고의 구국방략으로 채택하면서 국외 독립군 기지 개척과 무관학교 설립을 결정 했고, 그의 주도로 열리게 된 '청도회담'에서는 만주 길림성 밀산현에사관학교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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