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얼 기자의 현 사회의 이슈
역사를 재조명하다- ‘서울의 봄’
영화 ‘서울의 봄’
12.12 군사반란을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11월 22일 개봉한 이후, 지난 24일 누적 관객수 1000만을 돌파했다. 이는 영화 개봉 이후 33일 만으로써 5월에 개봉한 ‘범죄도시3’에 이어 올해 2번째 1000만 영화다. 이로써 ‘서울의 봄’은 역대 개봉작 전체에서는 31번째, 한국 영화 중에서는 22번째 천만 영화의 영예를 얻게 됐다.
‘서울의 봄’은 영화 개봉 전에는 예매율이 적은 편이었다. 개봉 후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의 극찬에 가까운 후기들이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에 퍼지면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영화의 대사들이 여러 ‘밈’으로써 넷에서 활용되기 시작했고, 이는 젊은 층으로부터 영화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갖게했다. 극우 성향의 단체에서는 이 현상이 보기 좋지 않았는지 ‘서울의 봄’을 좌파성향의 영화라며 비판했다. 중·고등학교 단체 관람을 문제되어 해당 학교장이 고소당하는 일도 있었다.
영화 산업 관계자들에 ‘서울의 봄’에 대해서 “이미 결말이 정해져있고, 정치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 영화가 이토록 주목받는 경우가 드물었다. ‘도가니’에 이은 상업적이면서도 관객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새로운 무비 저널리즘의 역사를 써내려고 있다”고 평가했다.
‘서울의 봄’은 어떤 영화인가?
‘서울의 봄’은 실제 사건 12.12 군사반란을 모티브로 하는 영화다. 영화는 1979년 12월12일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전두광(황정민)을 주축으로 하는 군내 사조직 하나회의 군사반란에 맞서서 군인으로써 본분을 지키려는 이태신(정우성)을 비롯한 군인들의 분전분투를 긴박하게 그려냈다. 다큐멘터리처럼 지루할 수 있다는 인식과 다르게, 실제 사건을 재해석하고 각색하여 재미를 부여했고, 유명 배우들의 열연이 마치 실제인물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훌륭하여 관객들에게 높은 몰입감을 느끼게 했다. 반란군과 진압군측은 선과 악의 구도를 떠나 서로 희노애락을 들어내며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조금의 잘못된 착오를 내리면 모든게 무너질 수 있다는 긴장감이 관객들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했다. 영화는 역사를 따라 반란군이 승리한다는 이미 정해진 역사적 결말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로 하여금 큰 기대와 분노를 일으켰다. 이러한 감정의 기류를 감지한 일부 영화관에서는 두더지잡기 오락기기를 무료로 플레이할 수 있게 하여 ‘과몰입 스트레스 무료로 잡고가세요!’라는 행사를 진행했다.
12.12 군사반란
‘서울의 봄’의 모티브가 된 12.12 군사반란의 배경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암살당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하룻밤 사이에 정보기관장에 의해 암살당한 이 초유의 사태에 대해 각 군 수뇌부들은 국가의 보위와 안녕을 위해 일치단결하기로 결의했다. 당시 계엄사령관을 맡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구심점으로 군내 세력이 재편됐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은 박 대통령 암살 사건의 본격적인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문제는 전두환이 합동수사본부장에 취임하면서 단순히 조사만 진행하지 않고, 중앙정보부 직무대리, 검찰총장, 치안본부장등 중요 정보 치안 기관의 수장들을 불러 협박과 회유를 병행하여 자신의 편을 들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전두환은 여러 월권을 행사하며 중앙정보부, 검찰 경찰, 헌병, 군검찰을 장악한 실력자로 부상했다. 심지어 정부 각 부처 차관들을 불러들이며 사실상 스스로 대통령인 듯 권한을 행사하기도 했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은 전두환과 직접 대면하여 “당신은 군인이지 정치인이 아니다.”며 비판했다. 그리고 전두환이 수사를 통해 얻은 자금을 제멋대로 박정희의 딸 박근혜에게 6억원, 국방장관 노재현에게 5천만원의 뇌물을 전달한 사실에 놀라며 크게 화를 냈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은 전두환이 군의 기강을 완전히 망가트리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노재현 국방장관과 상의하여 전두환을 동해안경비사령관으로 보직 이동시키려했다. 그리고 전두환 뿐만 아닌, 전두환의 사조직이나 다름없는 하나회 까지 척결하고자 했다.
전두환은 육사 11기 출신을 주축으로 구성된 ‘하나회’라는 군내 사조직을 조직했다. 하나회는 자신들의 상관보다도 조직원들에게 복종하거나 협력하도록 이미 여러 기반을 마련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것은 군의 기강을 망가트리는 명백한 교란 행위였다. 정승화 총장이 군의 기강을 잡기 위해서는 하나회로 인식되는 인사들을 군 핵심부 요직해서 밀어내야 했다. 그래서 당시 청렴하면서도 군인정신에 충실하다고 평가받던 장태완을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임명하여 하나회 측의 불온한 움직임을 원천봉쇄하기 위한 조치들을 실시했다.
문제는 이 계획이 전두환에게 유출됬다는 것이다. 김용휴 국방차관은 노재현 국방장관으로부터 이 정부를 입수했는데, 곧장 전두환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전두환은 자신이 하마터면 동부로 쫒겨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전두환은 정승화의 움직임에 주목하며 선제적으로 대응하기로 결정했다. 전두환의 보안사는 하나회를 주축으로 이미 정보력과 개인적인 인맥으로 군내부에 거대한 정보망을 구축한 상태였다. 전두환은 정승화의 움직임을 시시각각 보고받으며 감시했다. 전두환은 정보를 종합하여 이대로 가면 자신이 군부의 중심에서 밀려난다고 판단, 자신의 상관인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체포한다는 학극상이자 반란이나 다름없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전두환은 하나회 일원들에게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박정희를 암살한 김재규와 한패였다고 주장하며 정승화 총장을 체포할 구실을 만들도록 설득한다.
1979년 12월 12일 저녁, 전두환은 참모총장 공관을 급습하여 정승화 총장을 납치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시한다. 그리고 이를 시행함과 동시에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정승화 총장 체포의 정당성을 확보하여 이것이 반란으로 규정받지 않도록 대비하려한다.
그러나 최규하 대통령은 정승화 총장 체포수사에 대한 재가를 단호히 거부한다. 본래대로라면 대통령 재가를 받고, 참모총장을 체포하려던 것인데 이 계획이 실패했다. 그래서 공관에 진입한 보안사령부 인원들은 대통령 재가가 실패했음을 알게되자 대통령의 정승화측 인원들에게 총격을 가하고 참모총장을 납치한다. 그들은 자신의 상관인 정승화 참모총장의 미간에 권총으로 겨누며 승용차에 태워 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로 납치했다. 이는 명백한 하극상이자 초법적 만행이었다.
이후, 총리공관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여 사태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한다. 해병대와 반란군 측간에 총격전이 발생하기도 하여 부상자와 중상자가 발생했다. 이후 곳곳에서 무력충돌이 발발했다. 초창기에 육군본부 수뇌부는 북한 교란과 남침을 의심하며 섣부른 판단을 하지 못했으나 곧 전두환과 하나회가 저지른 행위에 대한 전말을 파악하기 시작한다. 전두환이 정승화 참모총장을 무단으로 납치했다. 이는 사실상 반란행위나 다름없었다.
전두환은 대통령 최규하를 총리공관에 구금하다시피 조치하고, 정승화 총장 체포에 대한 사후 재가를 요구했다. 그러나 최규하는 노재현 국방장관의 동의없이는 체포를 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래서 전두환과 하나회측은 최규하의 재가를 받기 위해서는 국방장관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미 진압군은 전두환과 하나회를 반란군으로 규정 진압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전두환은 이미 무력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여, 선제적으로 1공수, 3공수, 5공수여단과 전방 사단인 노태우의 9사단까지 동원하여 진압군 수뇌부를 제압하려 했다. 그러나, 진압군 측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진압군 측은 9공수 여단을 동원하여 반란군의 수뇌부를 제압하려 시도했다. 당시 9공수 여단은 다른 부대들 보다 서울에 가장 먼저 도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이는 반란군 측에게 재앙이나 다름었다. 당시 노태우는 9공수가 자신들이 있는 곳에 들이닥치면 권총으로 자결할 결심을 할 정도로 반란군 측이 느낀 위기감은 매우 컸다.
여기서 전두환은 사태가 불리하다고 판단하여 블러핑을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전두환은 육군본부 수뇌부들이 유혈사태에 두려움을 느낄 것이라고 판단, 육군본부에 전화를 걸어 서로 군대를 철수하여 서울에서 피를 보지 말자는 제안을 한다. 육군본부 수뇌부들은 아무리 반란 진압을 위해서라지만, 서울에 유혈사태가 일어나면 피해가 커질 것을 우려했는데 때마침 전두환이 그러한 제안을 한 것이다. 내부에서 옥신각신 논란이 있었으나 결국 신사협정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결정됐다. 진압군 측은 반란군을 진압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9공수 여단을 철수시켰다.
여기서 전두환은 동원한 군대를 철수시키지 않고 그대로 밀고 들어가 육군본부 특전사령부등을 비롯한 대부분의 군 시설을 장악하여 진압군 수뇌부를 제압해버린다.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은 끝까지 저항하며 반란군과 맞서 싸우려 했다. 그러나, 노재현 국방장관이 더 이상의 유혈사태가 일어나서는 안된다며 저항을 그만두라는 허탈한 명령을 함으로써 모든 진압 시도가 무위로 돌아갔다. 이로써 하나회를 주축으로 하는 신군부가 구군부를 완전히 제압했다. 전두환은 구군부 인사들을 숙청하고 구금하고 보복하거나 회유했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경우 계급이 강등당하여 이등병으로 불명예 제대하고 말았다. 장태완은 아버지와 아들이 행방불명되어 사망하는 등 온갖 불행을 겪었다. 반면 전두환에게 굴복한 노재현 국방장관을 비롯한 구군부 인물들은 여러 특혜를 받고 호의호식 하며 살아간다.
전두환은 이후 5.17 비상사태 선언하고, 5.18 민주화 운동을 통해 시민들을 학살하여 국민들의 저항의지를 거세한다. 그리고 9월 체육관 선거를 통해 직접 대통령 자리에 올라 대한민국을 완전히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군인으로서의 두 인물
‘서울의 봄’에서 반란군 수장 전두광(황정민)은 인간적이고, 개성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적극적으로 화를 내며 웃으며 자신의 반란에 적극적이지 못하거나 동의하지 못한 하나회 인원들을 설득하고 다독인다. 그리고 그들의 불안을 일소시키기 위해 필요에 따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며 실패할지도 모를 반란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다. 반면 이태신(정우성)은 평면적이고 군인정신에 충실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군인으로서 상관에게 복종하고 충성하며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으며 끝까지 저항한다. 마지막에 자신의 휘하에 병력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도 가장 앞장서서 나아가 전두광(황정민)과 대치한다.
영화를 보면서 전두광(황정민)에게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전두광(황정민)의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라는 명대사는 하나의 유행어로써 곳곳에서 패러디되고 있다.순수하게 욕망을 드러내는 인간 군상 자체에 친밀감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카리스마있게 휘어잡으며 모든 불안을 종식시킨다. 그러나 야심을 가지며 욕망을 순수하게 추구하는 모습은 개인이자 인간으로서는 매력적일지 몰라도, 집단으로써 나라를 지키는 군인으로서는 절대 가져야할 덕목일지 의문이다.
반면 이태신(정우성)은 단호박 같은 인물이다. 친밀하지 않고, 딱딱하고, 개성이 없다. 그는 자신을 회유하려는 전두광(황정민)에게 “대한민국 국군은 모두 같은 편입니다.”라고 단호하게 대답한다. 그는 하극상과 지휘계통을 무시하며 군인으로서의 모습을 저버린 전두광(황정민)에게 분노한다. 그는 전두광(황정민)에게 “너는 군인으로써 인간으로써 자격이 없다”고 일갈한다. 평생을 국방의 의무와 군인정신에 따라 나라에 충성하고 복종해온 그에게 전두광(황정민)의 행위는 군인에 대한 신뢰와 가치를 완전히 박살내는 배신이자 불명예였다.
마치며
‘서울의 봄’ 흥행은 당시 그 시대를 겪은 세대가 아닌 20 30대를 비롯한 젊은 세대가 적극적으로 이끌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그동안 12.12 군사반란을 역사적 한줄기로 인식했을 뿐, 해당 사건에 대한 평가와 판단을 함부로 내리지 못했다. 특히 ‘일베’를 비롯한 극우단체에서 12.12를 구국의 결단 혹은 혁명이라고 칭송하며 나쁘지 않다고 주장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적지 않은 혼란을 겪기도 했다. 게다가 이미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난지 4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시점이라 관심 역시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서울의 봄’을 통해 정의가 패배하고, 하극상과 욕망이 적나라하게 승리하는 모습을 눈과 귀로 직접 확인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영화가 긴장감과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각색이 가미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고, 흐름이 크게 다르지 않는다는 점이 영화를 시청하는 것이 곧 과거의 충격적인 역사를 과거로 돌아가 되돌아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단순하게 역사나 공부로서 배우고 듣는 것과 달리 직접 보고 듣는 것은 체험의 깊이가 다르다.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한 어둡고 불행한 역사는 청년들로 하여금 현실을 부정하게 하고 싶은 충격을 유발했다. 특히 군대에서 병역 의무를 마치거나 복무하고 있는 청년들은 엔딩 크레딧에 군가가 구슬프게 울려퍼지는 순간 극심한 허탈감을 느꼈다고 한다. 군인 복무신조를 통해 명령에 복종하며 충성심을 가질 것을 요구받고, 명예와 진정한 용기, 임전무퇴와 기상과 죽음을 무릅쓰고 책임을 완수하는 군인정신이 패배하는 결말은 그들이 지금까지 믿어왔고 지켜온 가치관들이 송두리째 부정되는 감각을 선사했다.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눈 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
젊은 넋 숨져간 그 때 그 자리
상처 입은 노송(老松)은 말을 잊었네
전우여 들리는가 그 성난 목소리
전우여 보이는가 한 맺힌 눈동자
- 군가 <전선을 간다> 中
영화에서는 중요 인물들을 제외하고도 나라에서 부여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다 죽어간 청년들의 모습을 나타낸다. 초병으로써 수칙을 지키다가 반란군에게 사살된 청년, 반란군 소속 부대에 소속되어 상관의 명령에 따라 전진하다 날아온 총탄에 비명횡사한 청년, 자신의 상관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자리를 지키다가 함께 싸우다 죽어간 청년들의 모습은 오늘 날 젊은 세대들이 겪는 불행과 고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들은 그저 ‘공정’과 ‘정의’와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바랄 뿐이다. 그러한 가치관들이 존중받고 지켜지지 못한 세상이 계속해서 이어져오고 ‘불의’가 계속해서 방치되어 심판받지 못한다면 과연 이 나라의 청년들이 다시는 나라를 위해 무기를 들고, 충성할 날이 올지 의문이다. ‘서울의 봄’은 오늘 날 이 사회가 과연 제대로 심판받고 올바르게 흘러가고 있는가 의문을 던진다.
(김한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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