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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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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최정애(강진문인협회 회원) '어머니는 솔 할머니'

어머니는 솔 할머니

 

밥상에 오른 청자 찬기들을 보니 지난날 시어머니와의 추억이 진하게 떠오른다.

 몇 해 전 강진 청자축제가 한창이던 날이었다. 그날도 청자촌은 뜨거운 열기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비취색으로 물든 청자. 도공의 섬세한 손길에 빚어진 작품을 기다리며 가마터의 불은 타오르고 있었다스피커를 통해 노래자랑을 하는지 쿵짝쿵짝 떠들썩한 소리가 경쾌했다. 축제를 즐기는 사람 또는 맞이하는 사람들의 분주한 모습들로 축제장이 인파로 가득 찼다. 한여름 축제여서 그야말로 더위를 어떻게 잘 식히며 즐기느냐가 청자가 200도씨에서 잘 구워져 나오는 것과 같을 것이다. 더위에 부채를 부치며 시원한 얼음 음료수를 들이키며 사람들 틈으로 체험부스도 다양해서 잠깐씩 멈춰 섰다. 도자기체험, 물레체험, 종이로 도형 만들기, 파편으로 꾸미기 등등. 코너 마다 나를 유혹했다. 그날은 시어머니 공연으로 축제장에 간 날이니 체험은 다음날을 기약했었다. 그 날부터 나는 매일 축제장에 갔다.

둥둥둥! 덩 덩 더 쿵덕! 징징징! 북소리 장구소리 꽹과리소리 지축을 흔든다. 강진 노인대학생들의 사물놀이 공연이 시작된 것이다. 최고령자로 참여 중인 89세 울 어머니. 8남매의 시름을 북소리에 날리고 있다. 막내며느리는 맨 앞자리에 앉아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신들린 듯 온 정성을 쏟는 북쟁이 할머니. 아무래도 연세가 드셔서 북을 치신 것 같다. 북 치시는 분들을 보니 다른 악기보다 연세가 있어 보인다. 가끔 고수의 한마디에 맞장구치며 즐기고 있었다. 지나온 세월, 여인의 구슬픈 설움을 날려 보내는 북소리다

좋다. 잘한다.”

나는 연신 장단에 맞춰 추임새를 했다. 유명한 가수들의 공연은 아니지만 최고령 젊은 언니 오빠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가족들이 손주까지 데리고 와 응원하는 모습이 보이고, 관광객들도 싱글벙글이다. 그중에 외국인들도 몇몇 눈에 들어오는데 신기한 듯 공연을 내내 지켜보면서 카메라에 이리저리 담고 있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의 우렁찬 기립박수에 그동안의 노고가 씻긴 듯 노인들의 얼굴이 어느새 젊은이가 되어 있다. 이마에 송알송알 맺힌 땀방울이 마치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이 났다노인대학교 학생들의 공연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을까 싶어 순간 뭉클한 마음으로 무한박수를 보냈다.

40여년을 새벽시장에서 부추 솔 할머니로 불려 진 시어머니다. 공연 있던 그날도 새벽시장에 다녀오셨다. 추운겨울을 제외하고 이른 봄부터 찬바람 서리 내리기 전까지 솔을 가지고 매일 새벽시장으로 달려가셨다. 솔에 대해서는 어머니를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솔 농사를 잘 지으셨다. 시골에서 소를 키우시면서 나름 소 거름을 퇴비로 사용하시면서 정성스럽게 키운 어머니의 솔은 참으로 맛있었다. 그래서일까 어머니의 솔은 맛있다고 인정을 받았고 어머니를 찾는 단골도 많았다. ‘싸고 좋은 것은 없다는 말도 있지만 어머니 솔은 달랐다. 물건이 좋고 싸니까 금방 팔고 오시곤 했다. 그 돈으로 생선, 콩나물, 조개 등 집에 반찬거리를 사 오셨다. 그렇게 용돈을 벌어 노년까지 행복하신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연세가 드시고 건강이 걱정되어 시장에 그만 다니시라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어머니는 시장으로 달려가셨다.

너희들이 걱정하는 것은 알겠다만, 내가 지금까지 건강하게 산 것은 다 솔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신 어머니는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나는 시장에 갈 거다.” 라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

나이 들어 뒷방 늙은이 취급받는 것보다 일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지금은 돈보다도 운동 삼아 다니는 것이니 걱정마라.”

어머니의 솔 장사는 그야말로 건강의 비결이었다.

어머니 고집을 누가 꺾겠습니까. 우리 어머니 정말 장하십니다.”

어머니는 노인학교에서도 인정을 받으셨다. ‘나이 들수록 지갑을 열라는 말을 먼저 실천하셨기 때문이다. 최고령자로 대접 받기보다 대접하려는 마음이 몸에 배신분이셨다. 행사가 있을 때마다 기부금도 잘 내셨다. 자식들이 용돈이나 간식을 사드리면 혼자 드시지 않으시고 노인학교에 가져가서 나누셨다.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일이다. 시장바구니 끌고 걸어가는 어머니 바로 앞으로 빨간 불덩어리가 큰 굉음을 내며 떨어졌다.

!!”

벼락이었다. 어머니는 그 순간 너무 놀라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몇 걸음만 더 일찍 갔더라면 큰 변을 당했을 터인데, 그런 놀람 가운데서도 어머니의 발길은 시장으로 다시 향하셨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놀라셨을까.’ 하여 가족모두 소름이 끼쳤다. 보통 사람 같으면 집으로 돌아왔을 텐데. 어머니는 자신의 솔을 기다리는 사람들 생각에 돌아설 수 없었다고 하셨다. 그날 동네 사람들도 벼락소리에 다들 깜짝 놀라 자다가 일어났단다. 소리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된다. 그 뒤 우리는 농으로 어머니는 벼락도 비켜가는 여인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 어머니에게도 치매가 왔다. 치매가 오면서 어머니는 반평생 다니셨던 새벽시장을 모두 잊어버리셨다. 치매라는 병은 그렇게 어머니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청자축제에서 공연이 있는 날 아침. 어머니께 꽃단장을 해드렸었다. 일주일이면 두 번 학교에 가실 때 화장을 해드렸지만, 공연이 있는 특별한 날에는 무대 화장을 해드렸다. 그날 어머니는 너무 진한 것 아니냐며 쑥스러워 하셨다.

어머니 공연할 때는 이렇게 화장해야 해요. 울 어머니 이쁘시네.” 

막내며느리 곰살 맞은 행동과 말에 은근 만족하신 듯 거울을 들여다보셨다

우리 막내며느리는 내 눈이다” 

어머니와 나는 가끔씩 강진아트홀에 가서 공연도 즐겼다영화상영이나 클래식공연이 아닌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공연 때는 어머니와 팔짱끼고 손잡고 아트홀에 갔다. 시어머니와의 추억은 많은데 우리 친정엄마하고는 이런 추억이 없어서 아쉽긴 하다. 내가 시어머니께 잘하면 우리 친정엄마도 누군가에게 친절을 받으실 것 같아 어머니와 어르신들께 더 살뜰히 하고 싶었다.

올해도 청자축제장에 다녀왔다. 이제 강진청자축제는 여름축제에서 겨울축제로 바뀌었다. 겨울 끝자락인 2월말에 즐기는 청자축제는 색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우리지역 대표인 청자를 중심으로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가 있어서 좋다. 올해도 행사 때 구입한 청자찬기가 행복한 밥상을 장식하고 있다. 텃밭에 부추 꽃이 활짝 피었다. 평생 솔을 사랑하신 우리 시어머니 꽃이다. 천국여행 중이신 어머니가 함박웃음 짓고 있는 모습이다. 청자찬기에 부추무침을 한 접시 담아 놓으니 이런 행복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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