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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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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 소개 볼프 슈나이더의 ‘위대한 패배자’
한 권으로 읽는 인간 패배의 역사

이달의 책 소개

  

볼프 슈나이더의 위대한 패배자

-한 권으로 읽는 인간 패배의 역사-

 

-승리자의 기준-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모두 패배자다. 자연의 섭리를 벗어나 지구의 최고 지배이된 인간은 무수한 굴곡을 넘어온 고독한 승자이지만, 인간으로서 개인은 모두 실패하고 좌절한 사람들에 가깝다. 물론 이를 벗어난 승리자들도 있다.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따지면 그 비율은 극히 미미하다. 그마저도 지난 세기 들어 급격히 줄어들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오히려 자신을 승리자로 여기는 비율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가령 선진국에서의 성공과 후진국에서의 성공은 다르게 여겨진다. 그들은 각자 사는 곳에서 나름대로 노력하며 살아왔으나, 그 성과의 인정은 그들이 사는 환경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강대국 중 하나인 미국과 최빈국으로 알려진 부룬디에서의 성공을 예로 들어보자. 미국에서의 성공은 아메리칸 드림으로까지 칭송되며 성공의 영향력이 남다르다. 미국에서 특정상을 받거나 인정받는 것은 최고의 극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 만큼 미국이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권위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빈국 부룬디에서의 성공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거나 미미한 수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국가가 존재하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 알게 되더라도 세계 최빈국으로서 기억에 남아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살아남기 위해 농업에 종사하며 그 농사지을 농기구와 기계조차 제대로 없어 땅을 파먹고 사는 수준의 국가로서 말이다. 이런 국가에서 성공하여 최상위층에 올라도 세계의 기준에서는 보잘 것 없는 수준으로 폄하되고 만다.

 

-한 사람의 승리자 한 사람의 패배자-

세상에는 한 사람의 승리자와 한 사람의 패배자만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권투, 체스, 바둑, 대통령 선거와 같이 두 사람 간에 승부를 펼치는 경기가 그러하다. 이럴 경우 패자와 승자의 운명은 극명하게 갈린다. 승리자는 달콤한 과실을, 패배자는 그동안 쌓아온 성과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쓰라린 패배와 상실을 겪는다. 이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이고 질서다. 물론 이 좌절의 고통은 무척이나 쓰라리다.

그리스로마신화의 사건 중 하나인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의 목을 찔러 죽인 다음, 그의 두 발에 구멍을 뚫고 황소 가죽 끈으로 꿰어 전차 뒤에 매달았다. 그러고는 말에 채찍을 가해 헥토르를 질질 끌고 다니며 패배자를 능욕했다. 고대 그리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작가 호메로스는 승리자의 이런 행동을 수치스럽고 잔인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오늘날의 패배자-

그러나, 오늘 날에는 이처럼 두 사람이 승리의 환호와 패배의 수치를 나누는 것이 예외적인 형상이 되고 말았다. 사실 이는 오래전부터 예외적인 현상이었다. 산술적인 측면에서 예나 지금이나 올림픽 경기에는 세 개의 메달만 걸려있다.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개최된 제 1회 근대 올림픽대회에서는 13개 국가에서 311명의 선수가 참가하였고, 경기 종목도 10개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늘 날에는 당시보다 무려 50배 이상이나 더 많은 선수들이 참여하고, 종목이 늘어난 것은 물론, 하계만 열렸던 과거와는 달리 2년마다 하계와 동계로 번갈아 개최되고 있다.

과거보다 전 세계의 인구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각 국가의 인구는 19세기 보다 평균 다섯 배 이상으로 늘었고, 수명 또한 두배 이상 늘었다. 나라를 다스릴 능력이 있는 고학력층은 교육제도와 환경에 따라 100배 이상 불어났다. 그러나 어디서도 대통령을 다섯이나 백 명을 뽑지는 않는다. 성공의 문턱은 과거보다 늘어났으나, 결과적으로 사람의 총량이 늘어남에 따라 성공으로 가는 문은 더 좁아졌다. 경쟁은 과거보다 더욱 심화되고 극단화되었다. 경쟁이 노동 시장 뿐 아니라 우리의 사고와 욕망을 지배하고 더 나은 세계에 관한 만병통치약처럼 찬양되면서부터 자신이 승리자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수십 배로 늘어났다.

과거에는 이러지 않았다. 과거의 사람들은 가난과 굴종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는 하늘이 내려준 이치처럼 여겨졌다. 그들에게 가난은 일상이자 주어진 운명이었다. 이는 종교의 영향도 있지만, 과거의 열약한 환경은 사람들이 상황에 순응할만한 위안을 가져다주었다. 그 시절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말로 가난했다는 것도 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오늘날 부의 총량은 과거보다 현저히 늘었다. 과거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중산층이라는 계층이 사회를 이루기 시작했고, 과거에는 왕족과 귀족, 양반, 사무라이와 같은 다양한 계층들에게만 허용됐던 권력과 권한들이 대중들에게 분산되기 시작했다. 그들이 누리던 문화와 문물도 오늘 날에는 기회만 있다면 충분히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다양한 정보화 매체를 통해 세상의 모든 상황과 소식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는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성공을 동경하며 나아가며 스스로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오늘 날 세계는 모든 사람이 돈과 권력, 명예, 명성을 향해 끊임없이 경쟁을 벌이는 체제로 바뀌었다. 그로 인해 다수가 낙오하고 패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경쟁에 뒤쳐진 사람들은 운명을 탓하거나 자신을 패배자로 여기며 무릎 끓는다. 또한 미워하던 동료가 사람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고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며 괴로워한다. 잘 나가던 기업체 사장이 하루아침에 도산을 하여 알거지가 되고, 회사원은 기업 구조 조정의 여파로 실직자가 되어 집에서 아내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할지 고민하며 어깨를 힘없이 늘어트리며 집으로 돌아간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고전적인 위안이 하나 있다. 이는 과거 혁명과 공산주의가 발흥했을 때처럼 즉,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고 실패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이 세상 구조와 썩은 사회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사실 과거에 이 생각은 정확했다. 당시에는 오늘 날보다 훨씬 더 불평등한 구조와 착취가 당연하다는 듯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괜히 혁명이 일어나고 공산주의가 발흥하여 세계를 뒤집었던 것이 아닐 정도로 불공정이 일상이었다. 산업혁명 시기의 노동착취는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했다.

오늘 날 대부분의 국가는 모든 이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한다. 오늘날의 사회는 능력에 따라 최고의 재능과 노력을 하는 인재들을 선발하여 그들을 승리자로 성장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사회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기회의 균등이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심어준다. “당신이 진정 능력이 있고, 출세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언제나 문이 열려있는데 결국 당신이 덜 노력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던져준다. 이로써 열등감과 자책감이 생겨나고 예전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어떤 가난한 사람도 느끼지 않았던 감정이 나타난다.

상대적 박탈감이라 불리우는 이 감정은 절망과 질투을 불러일으키고, 사람을 부정적으로 몰아넣는다. 내가 최고의 자리에 있지 않는 한, 이는 결코 해소할 수 없다. 누군가는 이를 오히려 원동력으로 삼아 성공하는 발판으로 삼기도 하지만, 결국 이들조차 총량에 비교하자면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사회에 순응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위대한 패배자-

볼프 슈나이더의 위대한 패배자는 책 제목처럼 패배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 책에서는 주어진 기회를 포착해서 결연하게 밀고 나갔지만 결국 패배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승리를 원했다. 분명 조금만 더 행운이 따랐다면 승리를 거둘 수 있었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따라 결국 세상 사람들로부터 수모를 당했거나 좀 더 강한 자에게 가로막혀 꿈을 접어야 했거나, 아니면 운명의 장난에 만신창이가 되었거나 지나친 강요와 요구를 스스로 감당하지 못해 몰락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비극적이거나 극적이거나 창피한 방식으로 굴욕을 당한 패배자들이다.

다윗에게 패배한 골리앗, 타이타닉호의 선장 스미스, 멕시코의 마지막 황제 막시밀리안, 독일의 마지막 황제 빌헬름 2, 사막의 여우 롬멜, 20세기에 신화를 남긴 혁명가 체게바라, 소련의 마지막 수장 고르바초프, 부시에게 투표수로 앞섰지만 패배한 미국 대통령 후보 엘 고어, 같은 문학적 재능을 지녔지만 동생의 그늘에 가려 불행한 죽음을 맞이한 하인리히 만, 암호를 해독하여 조국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명예를 박탈당한 엘런 튜링,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해 토끼사냥 하듯 내몰린 리처드 닉슨, 뛰어난 예술 감각을 가졌지만 생전에 인정받지 못한 반 고흐등 다양한 분야의 역사적 패배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과거 로마시대의 공화주의자 카토는 독재자 카이사르와의 싸움에서 패한 뒤 승리는 신들의 것이고, 패배는 카토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어진 여건에서 공화국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결국 패배했다. 그렇기에 깨끗하게 자신의 패배에 승복했다. 작가는 이러한 인물들을 위대한 패배자들이라 말한다. 충분히 노력했고, 최선을 다했고, 능력을 지녔음에도 패배한 이들. 그들은 결코 부끄러운 패배자들이 아니다. 자신의 운명에 따라 패배를 인정하고 승복한 이들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례들에 비교하면 이 책에서의 패배자들은 승리자나 다름없을지 모른다. 실제로 이들 중 대부분은 최고의 권력을 얻거나 사후에라도 주목받는 인물들이다. 소수민족, 장애인, 빈민등 소외계층들이야 말로 작가가 한권의 책으로도 담을 수 없는 진정한 패배자들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를 분명히 인지하며 지구상의 대부분의 패배자들을 담지 못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그들의 고통을 언급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말한다.

 

승리자들로만 가득찬 세상보다 끔찍한 것은 없다. 그나마 삶을 참을 만하게 만드는 것은 패배자들이다.“

 

 

-청년세대의 패배의식-

오늘 날 전 세계의 젊은 세대는 패배를 자처하고 있다. 한국, 일본,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삼국은 물론 세계 경제 1위의 미국에서 조차 청년층들이 일하기를 포기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전 세계 공통적으로 청년층들에 한해서 정치적 무관심도 늘어나고 있다. 이는 누가 지도자가 되던 간에 결국 내 삶의 방향에 도움이 되거나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에서 비롯된다.

중국과 같은 사회에서 이는 더욱 극단적이다. 탕핑족(躺平)이라 불리우는 청년들은 누울 당()에 평평할 평()이라는 의미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길바닥에 드러누워 버릴 기세로 노동을 거부한다. 사회를 변혁할 의지가 없는 중국 공산당을 위해 일하느니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특히 중국의 경우는 관시를 비롯한 연줄이 제대로 없으면 공부를 열심히 한 지식인 계층 또한 출세를 할 수 없어 오히려 이런 패배의식이 그 어떤 국가보다도 더욱 심화된다. 국가가 이들을 패배자들로 폄하하고 무시할 수도 있지만, 그 패배자들이 그 사회의 미래나 다름없는 청년층들의 사회적 현상이 되어버린다면 국가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곤란에 처할 수밖에 없다. 청년들이 스스로 패배자를 자처하는 사회는 그 어떤 발전 동력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Defeat doesn't finish a man, quitting does. A man is not finished when he's defeated. He's finished when he quits.”

인간은 패배하였을 때 끝나는 것이 아니다. 포기 했을 때 끝나는 것이다.”

-미국의 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

 

-마치며-

역사적으로 보면 수많은 패배자들이 있기에 오늘 날의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왕정의 부패를 대학 동아리 모임처럼 모여 술을 축내며 한탄을 일삼던 한량들이 혁명을 일으켜 왕을 단두대에 몰아넣었다. 독선적이고 이기적이어서 남들에게 배척받았던 사상가는 공산주의와 같이 세상을 피로 물든 사상을 탄생시켰다. 유럽의 한 국가는 세계 1차 대전에서 패했지만, 훗날 미술대학에 불합격하여 꿈을 못 이룬 패배자를 중심으로 뭉쳐 세계 2차대전을 일으켰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모두 패배했으나 그들이 남긴 흔적들은 결코 잊히지 않는다. 승리자로 향하는 관문은 좁다고 해서, 패배자들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는다. 관문이 너무 좁다면 그들은 순응하기를 거부하고 관문 자체를 파괴해버리기도 한다.

역사는 말해준다. 사회가 계속해서 패배자들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한다면 패배자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의 방식대로 세상을 뒤집어버리려 한다. 기득권들이 아무리 이들을 억압하려고 해도 그들은 김영수의 시 처럼 누워있기를 거부하고 먼저 일어나고 먼저 웃으며 저항한다.

그렇기에 승리자에 위치한 기득권자들은 승리를 자축하기 이전에 이 점을 잊지 말아야한다. 대부분의 경우 패배자들은 단지 순응하며 참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패배한 것뿐이지 포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침묵하며 순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패배자들을 무시했다가는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는 역사가 항상 말해주고 있다.

 

(김한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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