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로 가는 장삿배
미산포에 정박한 김 촌장의 장삿배는 컸다. 길이는 정 족장의 토기가마처럼 길었고, 넓이는 대여섯 걸음이나 되었다. 탐라에서 남당포를 오가는 장삿배와 달리 돛이 두 개나 되었다. 신라와 당을 오가는 장삿배라서 그런지 선원의 수도 많았다. 배의 운항을 지휘하는 선장인 해사(海師), 배를 지키는 활잡이 궁사(弓士), 선미에서 키를 잡은 키잡이 타공(舵工), 돛을 다루는 돛잡이 요수(繞手), 선수에서 닻을 전담하는 닻잡이 정수(碇手), 노를 젓는 노잡이 방인(榜人), 배를 수리하는 목수 선공(船工) 등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바다에 제사를 지내고 점을 치는 점쟁이 복인(卜人)은 장삿배가 나아가는 방향을 향해서 두 손을 모은 채 빌고 있는 중이었다.
사시(巳時, 오전 10시)가 되자, 장삿배는 가리포를 향해 나아갔다. 미산포까지 나와 손을 흔들었던 대구소 향리와 정 족장의 모습이 가물가물해지자 김 촌장이 선원들을 배의 고물로 불러 미산포에서 합류한 두 청년을 소개했다.
“오늘부터 우리와 함께 당으로 가는 궁사들이데이. 모두 탐진현 사람으로 뛰어난 궁사덜인기라. 우리 궁사덜은 항해허는 동안 이 두 사람의 지시를 받아야 한데이. 이 사람은 장보고이고, 또 한 사람은 정년이데이.”
이때부터 궁복은 선원들에게 장보고로 불려졌다. 특히 노잡이 겸 궁사로 일하는 선원들은 ‘장 무사님’이라고 높여 예우했다. 김 촌장의 지시로 서열이 정해졌다기보다는 장보고의 활솜씨를 보고 나서였다.
장삿배가 장보고의 고향인 가리포 옆구리를 지나칠 무렵이었다. 계절풍인 마파람을 탄 장삿배는 노잡이들의 수고를 덜어주었다. 장삿배는 돛에 한가득 마파람을 안고 흑수바다로 접어들고 있었다.
장보고가 고향 가리포를 향해 활을 들었다. 마침 장삿배 뒤를 따라오다가 가리포 바다 쪽에서 멈칫거리던 돌고래를 겨냥해 시위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화살을 맞은 돌고래가 한 자쯤 솟구쳤다가 바다로 맥없이 떨어졌다. 장보고의 활솜씨를 본 노잡이와 궁사들이 탄성을 질렀다.
“와아 와아!”
이에 정년도 지지 않았다. 장삿배 주변을 너울너울 선회하는 갈매기 한 마리를 겨냥하더니 화살을 날려 떨어뜨렸다. 움직이는 물체를 명중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늙은 우두머리 노잡이가 장보고 앞으로 와서는 머리를 조아렸다.
“지는 흑산에 살았던 흑두(黑頭)지라. 첨에는 조운선을 탔는디 지금은 당을 오가는 배를 타고 있지라. 근디 장 무사님 활솜씨는 참말로 대단허그만이라.”
“흑산이라믄 금갑포를 지나믄 보이는 쬐간헌 섬이 아닌게라우?”
“긍께 이름이 흑두그만요.”
“그게 아니지라. 얼굴이 숯뎅이멩키로 꺼먼께 흑두라고 허지라.”
늙은 우두머리 노잡이는 선장 해사와 친했다. 황수바다 뱃길에 익숙한 선장은 흑수바다 뱃길에서는 늙은 우두머리 노잡이에게 의지했다. 금갑포 앞바다가 가까워지자, 선장이 늙은 우두머리 노잡이에게 다가와 물었다.
“으디로 뱃머리를 돌리는 것이 좋겄십니꺼?”
“들물 땐께 금갑포 쪽으로 돌지 말고 바로 울돌목으로 올라가부러야지라.”
“키잡이는 우두머리 노잽이 말을 잘 들어야 헌데이.”
밀물로 바뀐 울돌목의 조류는 오시(12시)부터 유시(오후 6시)까지 가리포 남동쪽에서 북서쪽 목포바다로 올라갔다. 마파람과 밀물이 장삿배를 뒤에서 밀어주는 형국이었다. 장삿배는 화살이 날아가듯 빠르게 울돌목 너머로 빠져나갔다. 이런 계절풍과 조류에는 노를 젓지 않아도 되는 노잡이들이 가장 편했다. 정년이 이물 갑판에 선 장보고를 따라와서 말했다.
“성님, 아까 참에 일부러 돌고래헌테 화살을 쐈지라?”
“궁사덜헌테 내 솜씨를 자랑헐라고 쏘지는 않았네.”
“지는 선원덜에게 쪼깐 자랑헐라고 갈매기를 잡았는디 성님은 뭣 땜시 쏴분게라우?”
“시방 썰물 때가 아닌가. 내 화살을 맞은 돌고래가 가리포 해안에 얹혀지겄제잉. 고향 사람에게 뭣이라도 주고 잪아서 그랬네.”
“아따, 성님은 여그를 떠남시로도 고향 사람을 생각허요잉.”
“우리가 당으로 간다고 허지만 고향을 어처케 잊어불겄는가.”
“성님 말이 맞그만요. 지도 미산포를 잊지 못헐 거그만요.”
그때 활잡이 한 명이 와서 말했다.
“선실에서 촌장님이 부르시그만요.”
선실은 뚫린 갑판에서 빛이 들어오기 때문에 어둡지 않았다. 선실 창고에는 정 족장의 토기가마에서 구운 최상품 토기들이 각 칸마다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술병과 사발, 그릇, 화로, 약탕관, 촛병, 항아리들이 짚더미 속에 가지런히 포개져 선실 창고마다 가득했다. 침실은 선실 한 가운데와 고물 쪽에 있었다. 침실 모서리에 허리를 구부리고 앉아 있던 김 촌장이 말했다.
“흑수바다에는 당구덜이 읎데이. 여기 신라 땅이 가차운 해상에서는 안심해도 될끼라.”
“예, 촌장님.”
“두 사람은 배가 어디에서 마지막으로 정박허는지 궁금헐끼다.”
“촌장님, 당나라로 가는 배가 아닌게라우?”
정년이 말하자 김 촌장이 웃으며 말했다.
“당은 신라와 다르데이. 평생을 돌아도 다 갈 수 읎는 곳이 당나라 땅인기라. 우리가 가는 곳은 등주(登州), 적산포(赤山浦), 일조, 양주, 명주(현 영파), 월주데이.”
장삿배는 산동반도 등주로 갔다가 남쪽으로 선수를 돌려 적산포, 일조를 거쳐 절동(浙東)의 명주, 월주까지 내려간다는 말이었다.
“촌장님께서는 일조까지 간다고 말씸허셨지라우.”
“명주, 월주까지 갔다가 일조로 다시 돌아온데이. 헌데 산동반도 연안의 황수바다 못지않게 암초가 많고 명주 앞 백수바다도 당구덜이 많아가꼬 위험한기라.”
절동 앞바다를 백수바다라고 불렀다. 장보고는 김 촌장이 왜 자신을 불렀는지 알아챘다. 장삿배가 황수바다, 백수바다를 거쳐 명주와 월주까지 가는데 당구들로부터 장삿배를 안전하게 지켜달라는 당부 때문이었다. 장보고는 흔쾌하게 대답했다.
“지덜은 촌장님 말씸대로 빈틈읎이 경계헐랑께 당에만 델다가 주시씨요.”
“등주나 명주, 월주에는 신라방이 있데이. 일조에는 신라촌이 있고.”
장보고가 물었다.
“신라방은 뭣이고 신라촌은 뭣인게라우?”
김 촌장이 장보고와 정년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다. 등주, 명주, 월주 등의 포구에 있는 신라방은 주로 장삿배로 장사하는 신라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그리고 해안 부근 산자락의 신라촌에는 농사짓거나 고기를 잡고 소금을 만드는 신라인들이 많았다. 또한 신라채(新羅寨), 신라보(新羅堡)라는 곳도 있었는데 모두 작은 성이 있는 신라인 마을이었다.
그런데 당나라에 정착한 신라인들은 당인에게 땅을 빌려 농사짓기보다는 바로 돈이 되는 소금 만들기, 숯 굽기, 배 만들기를 하고 김 촌장처럼 장사를 크게 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었다. 김 촌장이 데리고 있는 선원들처럼 항해기술을 가진 신라인도 있었다. 심지어는 신라에서 온 바둑기사가 신라방이나 신라촌을 돌아다녔다. 이처럼 신라인들이 많이 거주하게 되자 관리가 상주하는 신라소(新羅所), 그리고 스님이 염불하고 기도하는 신라원(新羅院)까지 생겨났다.
“촌장님은 어처케 당으로 들어가셨는게라우?”
“당에 사는 우리 신라인덜은 굶어 죽지 않을라고 온 사람들인기라. 당은 땅이 넓다 아이가. 부지런히 일만 하믄 얼마든지 묵고 살 수 있는기라. 당구덜에게 붙잡혀 노예로 팔려온 신라노비덜도 굶어죽은 사람은 읎데이.”
“촌장님도 묵고 살라고 당에 겨신게라우?”
“나는 원래 사신을 따라 당에 갔다가 남은기라. 얘기허자믄 밤을 새와도 부족헐끼다.”
그러나 김 촌장은 자신의 과거를 조곤조곤 말했다. 그는 자신이 원성왕의 큰아들 김인겸의 아들인 김언승과 이복형제이며 이름은 김시방이라고 털어놓았다. 원성왕 6년(790) 김언승은 견당사 일행을 이끄는 대사(大使)였고, 김시방은 우두머리 궁사(窮士)였다. 김시방은 이복형제라는 인연으로 김언승을 따라서 당나라에 갔던 것이다. 그런데 김시방은 신분이 미천한 서자였으므로 실수 없이 귀국했지만 벼슬을 받지 못했다. 이복동생인 김언승이 대아찬 관등을 받은 것과 크게 비교되었다. 적자와 서자의 차별이었다. 김언승은 17관등 중에 세 번째인 잡찬(迊飡)이 되었다. 잡찬은 진골만 오를 수 있는 관등이었고, 붉은 공복을 입을 수 있었다. 이후 집사성의 우두머리인 시중(侍中)에 이어 김제공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움으로써 군부의 우두머리인 병부령(兵部令)을 제수 받았다. 김시방은 김제공의 난을 길게 이야기했다.
“김제공은 원래 원성왕 편이 아닌기라. 아들이 없는 선덕왕이 돌아가시자 왕위를 놓고 갈등이 있었다 아이가. 김제공은 원성왕이 된 김경신 상대등보다는 자신이 은혜를 입었던 김주원 편에 줄을 섰던 사람이었데이.”
김주원은 태종 무열왕 차남인 김인문의 손자였고, 김경신은 태종 무열왕 사위 김의관의 증손이었다. 부계로만 보면 김주원이 왕위에 더 가까웠다. 그러나 내물왕 12세손인 김경신은 선덕왕을 옹립한 공신으로서 상대등(上大等), 즉 최고의 지위에 있어 유리했던 것이다.
“내 할아버지 원성왕께서 등극하시자 김주원은 벼슬을 버리고 강릉으로 피신해버린기라. 이때부터 김제공은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고 기회를 엿본기라. 제공은 자신의 거처를 왕경 숲 근처로 옮긴 뒤 스스로 궁술을 익히고 무인들과 벼슬아치들을 포섭한기라. 할아버지 왕께 거짓으로 충성하여 각간(角干)까지 올라갔데이.”
각간 김제공은 원성왕 8년에 왕이 야간사냥을 나갔을 때를 이용하여 왕과 태자 김인겸을 죽이기로 모의했다. 그러나 사냥감을 쫓던 태자만 함정인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고, 왕은 충신의 희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아무도 눈치를 못 챈 역모였다. 누가 봐도 사냥 중에 자연스러운 사고로 보았던 것이다. 원성왕은 큰 슬픔에 빠졌지만 곧 둘째아들 김의영을 태자로 책봉했다. 첫째아들의 아들인 손자 김준옹에게도 벼슬을 주어 왕궁 가까이 두었다.
김제공은 두 번째 반란을 시도했다. 원성왕이 ‘즉위 10년 축하연’을 왕궁에서 조촐하게 열었을 때였다. 축하연이 끝나고 나서였다. 동궁으로 돌아가던 태자의 말이 피를 흘리며 넘어졌다. 화살을 쏘았던 김제공의 무사는 곧바로 달려가 태자의 목에 비수를 꽂았다. 그러나 원성왕을 시해하러 침전으로 들어가려던 김제공은 왕의 호위군사에게 포위되어 이찬((伊飡) 김언승의 칼을 맞고 죽었다. 이찬은 각간 바로 밑으로 17관등 중 두 번째 관등이었다. 이후 김언승은 반란을 진압한 공으로 군권을 쥔 병부령을 제수 받았다.
원성왕은 즉위 14년에 두 아들을 김제공 무리에게 잃은 슬픔을 극복하지 못한 채 손자 김준옹에게 왕위를 넘겨주고는 눈을 감았다. 손자 김준옹이 바로 소성왕이 되었다. 김시방은 김제공의 반란을 이야기하면서 치를 떨었다. 김제공 무리가 아버지 김인겸을 낭떠러지로 떨어뜨려 죽였고, 할아버지 원성왕을 화병이 나 죽게 한 역적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복동생인 지금의 왕께서 반역자 김제공을 포박할 때 호위군사 무장으로 있었데이. 헌데 동생은 변했데이. 군권을 쥐고는 막 휘두른기라. 2년 만에 돌아가신 이복형님인 소성왕 때도 그랬고, 형님 아들인 청명이 13살로 왕위에 오르자 기다렸다는 듯 섭정을 했데이. 그때부터 나는 이복동생인 지금의 왕이 두려버서 견당사 우두머리 궁사로 따라갔다가 당나라에 남아버렸데이.”
지금의 왕인 헌덕왕에게 원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두려움이 들어 도피해버렸다는 고백이었다. 소성왕 즉위년(799) 7월에 견당사가 꾸려질 때 김시방은 또 다시 우두머리 궁사를 자원하여 떠났던 것이다. 김시방은 당시를 정확하게 기억했다.
“사신 일행은 원성왕께서 돌아가셨다는 것과 소성왕께서 즉위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떠난기라. 그때 9척이나 된 인삼을 당 황제께 바쳤는데 인삼이 아니라고 받지 않으신기 생각난데이. 그라고 진감이라는 승려가 당으로 가겠다꼬 사정사정해서 우리가 노잡이로 델꼬 갔던기라.”
당 황제는 덕종이었고, 진감은 금마(김제) 사람인데 출가 전 한때 뱃사공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김시방의 예감대로 김언승은 애장왕 2년(801)에 어룡성(御龍省)의 장관인 사신(私臣)이 되었다. 어룡성 장관은 왕만 보필하는 특별한 신하이니 왕은 그의 손아귀 안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김언승은 곧 스스로 상대등에 올랐다.
애장왕 9년(808)의 일이었다. 신라의 사신이 당에 갔을 때, 당 황제는 김언승과 김중공(金仲恭)에게 문극(門戟)을 하사했다. 문극이란 공신이나 고관의 집 앞에 세워놓는 의전용 긴 창이었다. 이는 당시 세도가 김언승의 이름이 당 조정에까지 알려졌다는 것을 뜻했다. 결국 김언승은 애장왕 10년에 그의 동생인 시중 김수종과 이찬 김제옹과 함께 난을 일으켜 조카인 왕을 시해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라 헌덕왕이 되었다.
초저녁이 되어서야 김시방은 장보고와 정년을 놔주었다. 두 사람은 고물 쪽 선실로 들어갔다. 고물 쪽에도 침실이 있었다. 침실 널빤지에 드러누운 채 정년이 말했다.
“성님, 촌장님 얘기를 들어본께 참말로 서라벌로 가지 않기를 잘했그만요.”
“오즉허문 촌장님이 당에서 살겄는가? 정 족장님허고 뭔 얘기를 하다가 말씸했당께. 왕의 아들인께 촌장님 조카뻘이겄그만. 왕경에서 살지 않고 출가해부렀다고 허대. 법명이 심지라든가? 심 머시기라고 허드그만.”
장보고의 말은 옳았다. 진표율사 가풍을 이은 심지(心智)는 헌덕왕의 아들이었다. 그 역시도 김시방과 같은 심정이었을 터였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동생들이 조카 애장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사실을 알고 괴로워하다가 출가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자, 연이 동상. 잠을 쪼깐 자야겄네. 어저께 한숨도 못했거든.”
“지도 마찬가지그만요.”
장보고와 정년은 곧 코를 골며 잠에 떨어졌다. 배가 파도에 흔들릴 때마다 토기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두 사람의 잠을 깨우지는 못했다. 김시방의 장삿배는 검은 파도에 웅크리고 있는 듯한 위도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선장은 우두머리 노잡이와 우스갯소리를 하면서도 북극성을 눈에서 놓치지 않았다. 마파람도 잦아들고 조류가 썰물로 바뀌어 배는 먹물 같은 흑수바다를 느릿느릿 북진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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